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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중년 마크 Mar 30. 2023

1987, 이토록 강렬한 숫자로 남다

최루가스의 알싸한 맛, 그리고 유재하


1987년, 나는 여전히 즐거운 중학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사춘기의 혼란스러움도 질풍노도의 반항심도 없이 그냥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 마냥 재밌었던 때였다. 

요즘에도 추억의 산물로 가끔 볼 수 있는 롤러 스케이트장에 자주 갔고

처음 생긴 패스트 푸드점 '롯데리아'에서 햄버거와 밀크세이크 하나를 먹으며 종일 수다를 떨기도 했다. 

빵집이 아닌 카페에서 여학생을 만나 미팅을 하는 일도 생겼다.

그러면서 같은 동네에 살던 여학생과 러브레터를 주고 받는 낭만도 만들게 되었고..

편지속 내용에서 공통으로 언급되었던 것들은 역시 당시 유행했던 노래에 대한 얘기들이었던 같다. 

가사의 한 소절을 적는다거나 좋아하는 가수 얘기, 또는 며칠전 들은 라디오 공개방송 속 재미났던 에피소드등..


역시 당시 최고의 라디오 방송은 별이 빛나는 밤에 였는데,,

별밤지기 이문세 아저씨의 4집 테이프는 아마도 많은 학생들이 늘어질 때 까지 들었던 대표적인 앨범이 아니었나 싶다. 

 

이문세4집. 킹레코드 발매.


그덕에 이문세 3집부터 5집까지의 모든 노래 가사는 그냥 좌르르 외울 수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통기타가 아닌

'일렉기타'의 소리를 인상깊게 듣게 되었다. 

바로 이 곡의 전주 때문인데,

이 노래의 이 전주는 나에게 일렉기타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을 가져온 계기가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GBtuIOXvww



하지만 1987년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나처럼 즐겁고 낭만적인 때가 아니었다. 


바로 그 유명한 6월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해였고

우리집은 서울이 아니고 인천이었지만

부평 대우자동차 공장이 가까이에 있던 동네였기에 노동자들의 대규모 시위와 행진이 이어졌다.   

덕분에 방과후 하교하는 길에서 6월 동안은 거의 매일 온 동네를 메운 최루탄 가스 냄새를 맡고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당시에는 이 매운 가스가 '데모'라는 나쁜 행동을 하는 대학생들 때문에 경찰이 뿌리는 것 정도로만 알고 있었기에 

나와 친구들은 소매로 눈물을 닦으면서 데모라는 것을 하는 형 누나들을 속으로 욕했다. 

그때의 무지에 대한 대가를 치른 것은

그 후 수년이 지나서 군대에 가서 화생방 훈련을 하면서 제대로 맛 본 최루가스 속에서 또다시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였다. 


아무튼 당시 대학생이었던 큰누나는 

내 기억으론 부모님이 학교에 가지 못하게 해서  며칠간 집에서 갇혀 지냈던 것 같다. 



나중에 알게 된 당시의 상황은 무척 가슴 아픈 이야기였고, 그리고 감동적인 승리의 시기였다. 


그렇게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채 1987년을 보내던 무렵

늦은 가을이었다. 


역시 라디오에서

유재하라는, 이미 세상을 떠난 가수의 노래를 들었다. 

불의의 사고로 젊은 나이에 갑작스레 사망한 천재 싱어송라이터에 대한 안타까움에서인지

그의 노래는 그가 사고를 당한 이후에 급격하게 라디오에서 많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유일한 유작앨범인 그의 테이프를 들으면서 

모든 노래가 다 마음에 드는 가수가 이문세 말고도 또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그리고 그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무척 서운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4irsbkSmI

TV에서 유재하를 본 기억은 없는데 유튜브를 보니 이런 영상이..



그렇게 감미로왔던 가요의 멜로디들과 함께

그렇게 매캐했던 최루가스의 아찔한 맛들과 함께

1987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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