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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중년 마크 Jan 18. 2024

일 년에 단 한 번, 일생에 단 한 번

사용하지 않지만 소지하는 것

집에 아직도 크리스마스트리 (사실은 트리라기보다는 벽에 걸도록 된 장식품이긴 하지만)가 걸려있다.

벌써 1월도 중순이 넘어가고 있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12월에만 사용하는 이 물건을 걷어낸다.


벽에서 트리 본체를 떼어내고 

불빛을 내는 소형전구줄도 따로 걷어서 잘 정리한다.

나무에 달려있던 별과 솜뭉치와 작은 장식품들도 떼어낸 후

작은 봉투에 이들을 담고 보다 큰 상자에 구성품들을 조심스럽게 간수한다.

이 상자는 다시금 베란다의 창고 속에 자리 잡게 될 것이고

아마도 돌아오는 12월의 어느 날 내가 다시 꺼내기 전까지

오랜 휴식을 갖게 될 것이다.


이처럼 일 년에 단 한 번을 위해 간직하는 것들이 있다.


제사를 지낼 때만 상 위에 올려놓는 아버지의 영정사진 액자가 그러하고

스키장을 갈 때에만 꺼내어 입는 스키복도 그러하다.

사실은 재작년부터 이제 더 이상은 제사상을 차리지 않기로 했고

마지막으로 스키를 타러 간 것이 벌써 사오 년은 족히 지나버렸으므로

이 물건들은 이미 몇 년이 넘도록 같은 자리에 놓여있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고 

올 한 해 동안도 이들을 다시 꺼낼 일이 없어 보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버릴 수는 없다. 


꼭 일 년에 한 번씩이 아닌 것도 있다.

망치로 못을 박은 적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 집 도구함에는 여전히 망치가 들어있고

언제 구경했는지, 어디에 있는지 그 소재지조차 떠오르지 않는 웨딩사진 액자도 분명히 집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

일 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는 옷은 버리라는 말도 있던데

자주 사용하지 않지만 소지하는 것들,

이들의 존재 의미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벽에 못을 박을 일이 몇 년간 한 번도 없었다고 해서

망치를 버리는 것이 온당할까.

살다 보면 어느 날 어느 순간에 꼭 못을 박아야 할 때가 올 수 있다.

그 순간이 단 한 번이거나 혹은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 한 번을 위해서 망치는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존재의 이유는 횟수나 사용빈도와는 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지겹도록 오랫동안 같은 곳에 머물러야 하는 그들은

닫힌 문을 열고 자신을 집어들 언젠가의 그 순간을 고대하며

인고의 시간을 감내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어딘가에 고이 감춰져 있을 결혼사진액자에게

왠지모를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쉬이 버릴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삶에서 우리의 말과 행동도

매일 반복하는 것도 있고

일 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한 것이 있고

평생 살면서 딱 한번 있을까 말까 하는 것도 있다.

마찬가지로

같이 살면서 매일 만나는 사람이 있고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사람이 있고

평생 동안 딱 한 번 만나는 사람도 있겠지.

그들이 나에게는 모두 다른 의미의 인물들이겠지만

나라는 사람의 쓰임새는 달라지지 말아야겠다

망치는 오래 두어도 그저 녹이 좀 슬뿐 없어지지 않지만

사람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수 없다. 

매일 또는 가끔, 혹은 아주 드물 게일지언정

그 한 번 한 번의 순간들을 위해서

온전한 하나의 인간으로 쓰이기 위해

준비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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