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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워커비 Mar 04. 2020

학사경고를 받았습니다

퇴사를 막는 사연들 첫 번째 이야기

 "하... 회사 가기 싫다..."


 청년실업률이 치솟고, 서류통과, 면접 한 번이라도 간절한 청년들이 넘쳐나는 요즘 철없는 한소리 뿜어내는 한심한 인간이 있다. 바로 나다. 매일 잠들기 전 아무도 듣지 않는 곳에서 공허한 외침만 해대고 있는 한심한 인간이 바로 나다. 그냥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다. 똑같은 일들, 변하지 않는 환경, 4년 차 직장인이 되며 안정화된 업무 루틴이 만들어낸 지루함은 나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다. 그리고 지난 설, 엄마와 동네 하천 옆을 1시간 넘게 산책하다 엄마의 입에서 무서운 말이 나왔다


"그래도 그때 네가 취업 안 했으면 정말 어찌할 뻔했어. 너 그때 CPA시험 마치고 나서 취업할 생각 하니까 얼마나 까마득했니. 그래도 이렇게 좋은 대기업에 취업도 하고 4년째 잘 다니니 얼마나 좋니. 동생도 잘 풀렸고."


 하긴, 잊고 있었다. 군 제대하고 5년을 불안정한 상황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부족한 스펙으로 어떻게 취업을 하겠냐고 뛰어들었던 CPA공부를 말아먹고 다시 취준 현장으로 돌아왔을 때는 막막했다. 간절한 만큼 좌절은 컸고, 거의 종교에 의지하다시피 복학 후 학교생활은 정말 빠르고 지독하게 지나왔다. 아니, 어쩌면 지독하고  불운한 운명의 수레바퀴는 대학을 입학하고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삐-빅! 제적 경고입니다


 아니 학생처 직원 양반! 그게 무슨 말이오? 제적 경고라니?! 내가 아무리 공부를 안 했기로서니 제적 경고라니? 어이가 없어서 눈을 씻고 성적표를 보니 GPA 0.01이 모자랐다. 하나만 성적 올랐어도 학사경고받을 수 있었는데 ㅜㅜ 공부도 안 한 놈이 억울하단다. 정말 억울한 건 부모님일 텐데. 


학교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학사경고, 제적경고 기준


 뒤늦게 성적이 오르기 시작해 너무 아쉬워 부모님을 졸라 재수를 결심하여 1년을 공부한 끝에 생각보다 수능이 잘 나와 목표했던 언저리의 학교까지 오게 되었다. 그리고 첫 학기부터 D와 C를 적절히 골라 받으며 영광스러운 제적 경고를 받았다. 뭔가 한번 받아보고 싶은 성적이기도 했다. 태생이 어그로꾼이라 대학 입학하고 나서 학사경고 한번쯤은 받아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기말고사마다 누구보다 빠르게 답안지를 제출하며 호기롭게 시험을 망쳤지만, 당장 다음 학기부터 문제였다. 


부모님을 모셔오셔야 합니다.


 학교 별명이 아무리 고등학교라고 알려져 있다고는 하나, 이런 거지 같은 경우가 다 있나? 그래. 쉬는 시간마다 종 치고, 지정 좌석 있어서 대출도 안되고, 결석 자주 하면 자동 F 발급되는, 학교도 쥐콩만 해서 쉬는 시간 동안 모든 캠퍼스 이동할 수 있다는 그 유명한 고등학교 같은 대학에 입학했다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성적을 낮게 받았으니 부모님을 모셔와 담임교수님과 면담하고, 서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님께서 2학기에는 이 친구가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면학분위기를 조성해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님을 모셔와야만, 2학기 등록 고지서를 발급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조건부 등록이 허용되는 빡센 학사


 이런 사실을 우리 엄마가 알면 쓰러지셨을지도 모른다. 이 사실은 내가 취업을 하고 나서 한참 뒤에야 알게 되셨다. 당시에 엄마한테 차마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아 아빠한테 고백했는데 아빠는 엄마에게는 비밀로 하자며 혼자 오셨다. 그리고 교수님과 아빠, 그리고 나 셋이 옹기종기 교수님 방에 모여 사이좋게 2학기 학업계획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그리고는 2학기는 정말 열심히 다녔을까? 아니. 물론 1학기보다는 나았다. 그런데 그래봤자 이미 습관이 풀렸다. 군대 가기 전까지 학점은 내 것이 아니라고. 군대 다녀와서 다 올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며 또 2학기를 망쳐버렸다. 그래도 1학기보다 출석은 열심히 했고, 2학기에는 제적 경고는 면했다. 그리고 '학사경고'를 받았다. 엄청난 발전 아닌가? 그리고 군입대 신청을 해버렸다. 과동기(우리 학교는 섹션이 더 편한데 다른 데에서는 과라고 부르니까)들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무턱대고 군입대해버렸다. 다들 카투사니 공군이니 알아서들 준비 잘했는데 나는 그동안 뭐한 건지 토익점수도 제대로 못 받아놓고 신청도 못해서 알 수 없는 열등감에 휩싸여 "아 그냥 군대를 빨리 다녀와버리자"라는 생각에 입대를 신청했고, 신청 2주 만에 입대를 해버렸다. 


 지금으로부터 10년전 나의 군입대는 도피였다. 멋지게 살고 싶었던 스물하나 재수신입생의 호기가 1년만에 꺾인 날은 103년만에 가장 많은 폭설이 내린 1월의 어느날 이었다 - 2010.1.5-


(예고) 앞으로 나올 이야기(랜덤)


간간히 나오는 군대 이야기, 무역회사에서 일한 이야기, CPA공부 1년, 경영전략 학회 1년, 항공사 마케팅 공모전, 게임사 면접, 코딩 공부, 금융사 공모전. 금융사 대외활동, 항공사 대외활동, 핀테크 공모전, 호텔 면접, 유통사 면접, 정당 공모전, 금융사 인턴, 금융사 면접, 회사 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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