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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워커비 Mar 07. 2020

공모전을 실패하는 아주 쉬운 방법

퇴사를 막는 사연들 다섯 번째 이야기

 "야 우리 이거 공모전이나 해볼래?"


 "이게 뭔데? 이거 막 디자이너나 하는 거 아니냐"

 "아니 일반 대학생들도 이런 거 할 수 있어"

 "이거 하면 뭐 주는데?"

 "상 타면 해외 보내줄걸?"


 공모전이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설렌다. 회계사 시험에 실패하고 다시 우울하게 학교로 복학 시동을 걸 때 즈음 연락이 뜸했던 오랜 친구와 오래간만에 만나게 되었다. 카톡으로 연락을 주고받다가 집에 가는 길에 친구보고 왕십리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냥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오랜만에 이야기나 하자고 하려는 것이었다. 요즘 뭐하고 사냐고 묻길래 뭐라도 바쁜 것처럼 보여야 할 것 같아 스펙 쌓느라 바쁘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친구도 내 처지를 알았는지 더 묻지 않았고, 공모전이나 나가보자고 제안을 했다.

 

 아시아나항공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인데, 자기의 꿈 이야기를 잘 풀어내 왜 해외로 가야 하는지 설명하면 해외여행을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꽤 솔깃한 것은 나의 능력에 대한 과신과 해외여행이라는 로망이 겹쳤기 때문이다. 언젠가 퇴막사시리즈중에서 다룰지도 모르는 군대 이야기지만, 군대에서 교육병, 작전병으로 일했었다. 당연히 한글 프로그램이나 PPT는 잘 다룰 줄 았았다. 2년 가까이를 PPT 했으니 당연히 내 능력은 대단하고, 우리가 가야 할 해외만 잘 찾아서 스토리를 붙이면 되는 것이었다.


 먼저 우리의 꿈 이야기를 해야 했다. 사실 나도 그렇고 친구도 그렇고 딱히 꿈이라는 게 없었다. 학교 졸업하고 적당한 직장 잡아서 안정적으로 잘 사는 일반적이고도 매우 어려운 것이 우리의 목표였으니까. 그러다 보니 어떤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이나 그런 게 없었다. 나는 역사학과였고, 친구는 수학과였으니 그러면 문과 직업 중에 멋있는 게 언론인이니까 나는 언론인이라는 꿈을 만들기로 하고 친구는 수학과를 나왔으니 수학자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떠올린 게 프랑스의 유명한 물리학자이자, 수학자면서 철학자인 데카르트를 우리 여행의 테마로 잡게 되었다. 사실 주제로 데카르트를 설정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미안합니다 데카르트..


 1. 이과면서 문과인 롤모델일 것

   - 데카르트는 철학도 했고 물리학, 수학도 했기 때문에 우리의 교집합 후보군에 당연히 들었다.

 2. 유럽 사람일 것

  - 유럽 중에서도 꼭 프랑스였으면 했다. 그래야 파리 가서 에펠탑 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으니까.

 3. 명언을 갖고 있을 것

  - 인물 + 명언 검색을 했을 때 그럴싸하게 나오는 위인이어야 했다


 공교롭게도 이 셋을 모두 충족시키는 사람이 데카르트였다. 그리고 우리는 데카르트를 중심으로 우리가 왜 프랑스를 가야 하는지 아주 허접하게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 공모전이 있고 나서 1년을 학교의 경영전략 학회에서 PPT공장 찍어내듯이 PPT를 다루게 되고 스킬을 익혔고, 훗날 돌이켜보면 어떻게 이렇게 형편없는 수준임에도 우리끼리 서로 자화자찬하면서 이거 무조건 선발된다고 서로 신나서 좋아했는지 모른다.


이정도면 양심이 없는 수준이다.


 공모전 준비는 3일 만에 끝났다. 인물 선정하는데 첫날 오후 3시간을 썼고, 다음날 저녁에는 프랑스를 어떻게 여행을 다닐지 계획과 예산을 정리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군대에서 배우고 익힌 나름의 현란하고 촌스러운 나의 PPT스킬을 총동원해 걸작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제출했고, 발표 한 달이 지나도록 우리는 유럽여행을 어떻게 가야 할지, 유심이나 로밍은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리고 발표가 나자, 우리의 카톡방은 조용해졌다. 그리고 한동안 친구와는 연락이 뜸해졌다.


 나의 첫 공모전이 망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1. 주제 선정부터 실패했다.

  - 당시 선발된 사례들을 보면 전문적으로 예체능계열이던가 원래부터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어서 포트폴리오가 많았다. 자신들이 왜 해외를 가야 하는지. 그동안 국내외 활동을 어떻게 이어왔고, 그 과정에서 해외여행이 왜 꼭 필요한지에 대한 개연성이 잘 드러났었다. 흔히 말하는 스토리 텔링에 대한 자연스러움이 나의 제작물에는 없었다.


 2. 기술적으로 부족했다

  - 한없이 핑계 같지만 유튜브를 할 때도 마찬가지로, 콘텐츠, 인물이 좋아도 편집 기술력이 떨어지면 고강도로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힘들다. 어쭙잖게 군대에서 배웠다는 PPT 제작했던 경험에 크게 의존했다. 주요 수상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지 않았다. 내 눈에만 이쁜 자식이라고 아동 모델 콘테스트에 어떻게 당선되나. 인스타에서 아동모델들 인스타 팔로우해놓고 어떻게 인스타를 구성하는지 레퍼런스 삼고 하나하나 컨셉을 잡아가야 하는 거지. 


 3. 열심히 하지 않았다

 -  이후에 공모전을 준비하면 최소 일주일에서 최대 한 달까지 준비했고, 모여서 같이 기획회의나 합숙을 2,3번씩 했다. 그 정도는 되어야 입상할까 말까인데, 하굣길에 지하철에서 논의하고 그날부터 3일 동안 카톡으로 끄적대며 대충 만들었으니 얼마나 부실했겠는가


 굴욕적인 공모전에서 첫 패배 후 나는 학교의 전략 컨설팅 학회로 들어갔고, 1년간 PPT로 기업 분석하고, 전략 장표를 만들었다. 그리고, 1년 뒤 다시 그 항공사의 공모전 공고가 다시 떴다.


1년간의 갈고닦은 경영전략 학회 실력을 보여줄 때였다.




(예고) 앞으로 나올 이야기(랜덤)


간간히 나오는 군대 이야기, 무역회사에서 일한 이야기, CPA공부 1년, 경영전략 학회 1년, 항공사 마케팅 공모전A, 항공사 마케팅 공모전B, 게임사 면접, 코딩 공부, 금융사 공모전. 금융사 대외활동, 항공사 대외활동, 핀테크 공모전, 호텔 면접, 유통사 면접, 정당 공모전, 금융사 인턴, 금융사 면접, 회사 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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