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한양대학교에서 시험을 쳤다. 시험이 너무 쉬웠다. 그러면 안되는데 너무 쉬웠다. 모의고사를 칠 때만해도 쉬운 적이 없었는데 시험때 갑자기 쉽다? 그런데 예감이 안좋았다. 시험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이 내게 불안함을 호소할 때 내가 자주 해주는 말이 있는데
"시험을 잘 못 볼까봐 불안한 건 지극히 정상이야. 시험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열심히 안나올까봐 걱정하는 거니까. 지금 너가 갖고 있는 불안감은 그동안 준비를 잘해왔다는 증거야 "
그런데 나는 하나도 불안하지 않았다. 시험을 보기전 얼추 감이 왔다. 긴장이 안된다는 걸, 불안하지 않다는 것은 나의 지난 1년이 성실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그리고, 1교시 2교시 시험을 치면서 너무 쉬운문제들을 보면서 속에서 울컥했다.
"진짜 열심히 좀 할걸.. 내가 이렇게 쉬운문제를 이렇게 차근차근푸는동안 다른사람들은 얼마나 쉽게 풀고 다른 어려운 문제들을 풀고 있을까..."
체감이 되었다. 시험은 전반적으로 쉬워보였고, 나는 쉬운문제는 쉬운대로 풀어봤자 다른 중상급 난이도의 문제에 손도 못댈 때 다른 수험생들은 모두 그 문제들로 당락을 결정지을 것이니까. 아쉽지만, 예상하고 있었다.
지난 여름 1평의 고시원에서 탈출하여 집으로 짐을 싸고 돌아왔을때 나의 나태함은 극에 치달았다. 다시 스스로를 자극해보고자 단기합격수기들을 읽고 자극이 차오르면 잠깐 휴식하고 인강들으며 또 헛돌고있는 공부시간 타임워치를 보며 안도하였다. 시간을 채우고 있는 내모습이 진짜라고 생각했다. 인터넷강의를 마치고 본격적인 자습을 할 때 들어오는 유혹들을 이겨내지 못했다. 인강은 선생님이 문제를 풀어주니 쉽게 쉽게 풀렸지만, 혼자 풀려고보니 너무 어렵고 막막했다.
위로를 받자고 수험생카페에 들어가보면 수험생들은 이미 저만치 멀리 떠나가 있고, 남아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위로를 하다 사회이야기를 하며 또 다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고승덕 책을 보면서 집중이 잘되는 밤에 공부하겠다고 4시, 5시까지 공부하고 12시쯤 늦게나마 일어나 밥해먹고 독서실가서 인강듣다보면 어느새 오후 5시, 밥을 먹고 다시 공부하다 졸고 다시 저녁부터 공부를 시작하지만, 반복되는 피곤함에 계속 잠들어 집에 와 보충공부를 하는 식이었으니 제대로 된 정신으로 공부했을리가 없다.
공부하는 자세가 틀려먹었다.
시험을 보기 3주전부터 마음은 이미 복학에 가있었다. 그래서 복학 준비를 하고, 방정리를 하면서 시험을 치지 않으려했다. 시험을 친다는것은 나의 실력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1년을 그렇게 허송세월해버렸다는 내스스로가 창피했다. 하지만 시험이라도 치지 않고 복학을 해버리면 부끄러움은 차치하고, 나의 1년이 그대로 삭제되버리는 것이다. 차라리 공부를 했고 실패를 했다는 결과라도 만들어내는게 낫지, 결코 1년간의 공부 결과가 두려워 시험조차 치지못했다고 도망치는건 더 내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사장에 들어서 1교시, 2교시를 마치고 걸어나왔다. 이미 중도에 나가는 것은 실격처리였기 때문에 시험을 안본것과 다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냥 시험보러가지 말까? 라고 고민했던 순간의 감정보다는 훨씬 상쾌했다. 그렇게 나의 1년은 말끔하게 정리되었다. 다시는 돌아보지 않았다. - 2014년 2월-
그 뒤로 회계사시험으로 눈길을 돌린적이 없다.
(예고) 앞으로 나올 이야기(랜덤)
간간히 나오는 군대 이야기, 무역회사에서 일한 이야기, CPA공부 1년, 경영전략 학회 1년, 항공사 마케팅 공모전, 게임사 면접, 코딩 공부, 금융사 공모전. 금융사 대외활동, 항공사 대외활동, 핀테크 공모전, 호텔 면접, 유통사 면접, 정당 공모전, 금융사 인턴, 금융사 면접, 회사 입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