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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워커비 Mar 06. 2020

1평짜리 고시원 살아보셨나요?

퇴사를 막는 사연들 세 번째 이야기

 "아 또 망했다 기말고사~~~!!!!"


 4학기째 망했다. 남들은 군대 다녀와서 정신 차리고 공부 열심히 해서 학점이 오른다지만, 나의 학점은 그렇지 않았다. 이미 가정 자체가 틀렸다. 여전히 나는 정신을 못 차렸고, 하루 종일 페이스북, 네이버 뉴스를 오가며 정치뉴스만 탐독했다. 게다가 갓 복학했던 2012년은 국내 정치사 최대 이벤트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의 뜨거운 경쟁이 있었기 때문에 쉴 틈 없이 재미있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재미있게 보낸 만큼 결과는 참담했다. 친구는 즐겁다는 듯이 내게 물었다.


 "4학기까지 망했는데 이제 어쩔 거냐? ㅋㅋ"

 "아오~ 몰라 그냥 난 회계사 할 거야~ CPA 따기만 하면 4대 회계법인 입사 가능함!"

 "거긴 학점 안 본대냐?"

 "여긴 자격증 있고 어리면 일단 입사 가능하다더라 ㅋㅋ"


 뭘 하든 믿는 구석이 있는 사람, 간절하지 않은 사람은 현재에 충실할 수 없다. 학교 시험을 망쳐도 CPA시험 한 번만 잘 보면 된다는 생각에 한가하게 한해를 또 허송세월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기어코 기말고사가 마치고 나서야 회계원리 책을 폈다. 얼마나 재밌었는지 모른다. 지루한 교수님들 수업보다 재밌는 인터넷 강사의 수업이 훨씬 재밌었다. 초단기 합격 수험 사례들을 모아보며 나는 1년 반 만에 1,2차 시험을 패스하겠다고 호기롭게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그리고, 회계사 시험공부에 집중하고자 회계사 학원이 가까이 있는 종로구 창신동의 1평 고시원으로 들어갔다.


 무보증금에 월 23만 원. 최저가다. 창문도 없고, 문을 활짝 열수도 없고, 다리를 올릴 수 도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겨울이었기 때문에 문을 닫고 지이-잉 냉장고 팬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서서히 방 안의 온도가 올라간다. 수험생이었으니 빨래라고 해봐야 수건과 속옷 몇 가지, 그리고 트레이닝복이었으니 방안 천장에 널어놓고 잠들면 가습기도 되고 살만했다. 


다만, 워낙 공간이 좁다 보니 정말 잠만 잘 수밖에 없는 방이었고, 침대로 딱딱하지 않고 물컹물컹 스프링이 다 나가버린 프레임 없는 매트리스였으니 자고 일어날 때마다 근육통이 나는 건 일상다반사였다. 좁은 방에서 공기 순환도 잘 안되니 아래 사진에서처럼 침대에 누워 문을 살짝 열어 놓으면 겨울의 한기가 문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아침마다 칼칼한 목을 푸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학원 앞에 고시원을 얻어놓은 덕에 항상 일찍 학원에 도착하여 맨 앞자리에서 졸음을 참아가며 성실하게 수업을 들었다.


사진의 형태가 1평 고시원 전국 스탠다드다. 


 문제는 봄이 지나고 여름 초입이 되면서 시작되었다. 학원에서 자습을 마치고 들어오는 시간이 10시. 이제 잠들어야 했지만 도저히 잠들 수가 없었다. 여름 낮에 달궈진 건물의 열기는 그대로 방안을 덥혀놓고 있었다. 그러나 월세 23만 원짜리 방에 에어컨이 웬 말이냐. 더위를 참지 못하고 있을 때 10시 넘어 아주 조금씩 환풍구로 미세한 냉기가 흘러 들어왔다. 냉기의 원천을 찾아가 보니 복도에 있는 에어컨에서 시작되었다. 


 고시원은 2개 층이고 각층마다 15개 내외의 방으로 개조되어있었는데, 복도의 에어컨을 반쯤 어떤 비닐로 막아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비닐을 타고 환풍구로 주입되고 있었는데, 이 환풍구를 통해서 우리 층의 15개 방으로 냉기가 스멀스멀 기어들어간 것이다. 정말 참을 수 없는 더위에 문을 열어놓으면, 복도에서 합쳐지는 에어컨 바람이 들어왔지만, 여전히 잠들기 전 문밖에서 나는 사람들의 계단 내려가는 소리, 복도에서 물건 나르는 소리 등은 잠을 설치게 하기 충분했다. 


 이런 불편함의 기억을 모두 안고 있는 것은 돌이켜보면 또 다른 핑계를 만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겨울의 다짐은 온데간데없이 여름 더위에 지치며 페이스가 떨어졌다. 공부가 잘 안되는 이유를 자꾸 외부에서 찾으려고 했다. 그랬기 때문에 내가 지금 처한 환경이 왜 안 좋은지, 그래서 나의 공부에 어떤 불편함을 초래하는지 끊임없이 핑계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한 나는 불안감에 휩싸여 짐을 싸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2013년 여름-



(예고) 앞으로 나올 이야기(랜덤)


간간히 나오는 군대 이야기, 무역회사에서 일한 이야기, CPA공부 1년, 경영전략 학회 1년, 항공사 마케팅 공모전, 게임사 면접, 코딩 공부, 금융사 공모전. 금융사 대외활동, 항공사 대외활동, 핀테크 공모전, 호텔 면접, 유통사 면접, 정당 공모전, 금융사 인턴, 금융사 면접, 회사 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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