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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워커비 Mar 05. 2020

무역회사에서의 아르바이트

퇴사를 막는 사연들 두 번째 이야기

 2011년 10월 26일.


 나는 군 전역할 날을 잊을 수 없다. 내가 기다리던 소중한 전역날이기도 했고, 마침 서울시장 선거가 있던 참이라 기억에서 쉽게 잊히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말년휴가를 나왔을 때 면접을 본 회사에서 전역일 다음날부터 일을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기대에 가득 찼다. 월 10만 원씩 받던 병장 월급으로는 돈이 모일 리 없고, 말년휴가를 나와 한 달을 꼬박 일하면 130만 원을 준다고 하여 어찌나 설렜는지. 지나고 보면 파견업체에서 수수료를 떼고 남은 돈은 105만 원가량이었지만 그 당시엔 정말 큰돈이었다. 한 달을 일하고 백만 원이나 벌 수 있다니.


 회사에 출근을 하고 맡은 일은 글로벌포럼 행사 오퍼레이션이었다. 사실 이게 주 업무는 아니었고, 주로 팀원들의 모든 업무 중 잔업무를 돕는 일들이었다. 누군가는 포럼 개최 가능한 호텔을 알아봐야 하고, 누군가는 입국하는 해외바이어들의 숙소를 알아봐야 하고, VIP들이 먹을 음식들을 골라야 한다. 또, 이들이 한국에 방문하여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관광지도 찾아봐야 하고. 이 포럼에 참여할 국내사들도 섭외해야 한다.

 

 아, 먼저 이 팀으로 말할 것 같으면 10명 남짓의 직원 중 정직원 4명, 계약직 6명, 파견진 1명(나)의 아주 괴랄한 조직이었다. 6명의 계약직은 모두 청년인턴이라는 미명 하에 전환도 아니고, 정직원 시험 응시에 약간의 가점을 주는 의미 없는 메리트로 6개월~1년간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가장 어리기도 했고, 인턴들이 형누나들이어서 나를 제일 잘 챙겨줬다. 정직원들하고는 별로 할 얘기가 없긴 했는데, 내가 어리다고 일단 반말하고 다들 남직원이다 보니 군제대하고 왜 힘든 일 안 하고 사무직 하냐고 타박하기도 했다.


 자, 돌아와서 한 달간 2개의 글로벌 포럼을 준비하는데, 과장이 나한테 200여 개 사 리스트를 주더니 그쪽 제휴 부서랑 연락해서 참여사 모집한다고 돌려라 라고 하는 거다. 황당한 건, 모두 대표번호만 쓰여있어서 그냥 일일이 대표번호로 전화해서 부서를 물어물어 전화했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희 00공사 주최로 글로벌 포럼을 열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중동 재건사업 관련하여 참여의사가 있으신지 여쭙고자 전화드렸는데요"

"네, 근데 누구시라고요? 저희가 참여하게 되면 연락드릴게요"

"아 네 저는 00공사 000입니다"

"직급이 어떻게 되세요?"

"아 저는 그냥 사원입니다"

"윗사람 바꿔주세요"

"아 네? 어 의사표시를 하시면 저희가 행사 개요랑 문서 모두 같이 메일로 드릴게요!"

"아 그냥 위에 대리든 과장이든 바꾸라고요"

"아 네...ㅜㅜ"


 사실 내가 이 행사를 개최하는 이유도 잘 모르거니와 자기들 회사에 어떻게 좋은지도 모르고 전화만 돌려댔으니 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짜증은 낫겠다만, 이런 일이 생겨 윗사람을 바꾸게 되어도 문제였다


 "저기요 00씨 왜 저한테 자꾸 전화를 돌리는 거예요?"

 "아.. 대리님 그건... 고객님이 윗사람한테 전화 바꾸라고 해서..."

 "그런 거 일일이 나한테 모두 넘기면 내 본업을 할 수가 없어요. 그런 거 대처하라고 뽑은 건데 죄다 나한테 넘기면 어떡합니까"

 "아... 앗.. 넵. 죄송합니다."


 그 뒤로는 그냥 전화 돌릴 때 내가 대리고, 내가 책임자라고 말하면서 둘러댔고, 일주일간 내가 할당받은 200개의 업체에서 6개 회사만 참여하겠다고 하였다. 참여사가 최소 50여 개 사가 필요한데 턱없이 부족했다. 그리고는 신기하게도 회사 내에 퇴직 후 고문 역할을 하는 직원들만 모인 조직이 있었는데 그쪽에 의뢰를 하니 50여 개 사가 하루 만에 다모였다. (아니.. 그럼 진작에 이렇게 넘기지..?)


 고객사를 모았으니, 이제는 해외바이어를 데려와 묵을 숙소와 행사를 개최할 호텔을 찾을 차례다. 이것도 역시 기존 인턴들이 서치하면 내가 같이 전화를 돌리면서 각 홀, 룸 수 파악하고 식사들이 어떻게 제공되는지 정리하는 일이었다. 문제는 3주 뒤에 열어야 할 포럼 호텔을 이제야 서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려 3일짜리 행사인데 말이다. 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중동 바이어들이 오기 때문에 할랄 인증이 된 할랄푸드를 제공하는 호텔들을 찾았다. 말도 안 되게 해당 일정에 가능하면서 룸도 여유 있고, 홀도 여러 개 쓸 수 있는 호텔이 딱 하나 있었고 그곳에서 행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나의 근무 3주는 이런 행정 사무업무들을 하는 게 다였고, 마지막 2주는 행사 진행보조와 바이어 의전을 하는 것이었다. 마지막 2주 중 첫 주가 중동포럼이었고, 두 번째 주가 아프리카 포럼이었다. 첫 중동포럼의 경우 중동 바이어가 30여 명 입국한다. 드라마나 영화에 보면 입국장에서 무슨 스케치북 같은 거 펼쳐놓고 맞이하는 거 있지 않은가. 그걸 했다. 과장님이 똘똘하게 일 잘하니까 나보고 위에 차장님이랑 다른 인턴 데리고 인천공항 가서 바이어들을 데려오란다. 아무래도 팀에 차장님은 정년퇴직나이가 되셔서 팀에서 팀장님보다도 나이도 많으시고 업무도 거의 받지 못하시는데 이런 일이 있으면 항상 먼저 차출된다고나 할까. 그래서 셋이 가서 이들을 맞이했다.

 

 문제는 리무진 버스의 문제였는데 버스는 2대이고 공항 도착장 쪽에 버스를 오랜 시간 대고 있을 수가 없어서 계속 공항직원이 버스를 내보낸다. 바이어 출국하는 시간에 맞춰서 버스를 호출하고 바이어들이 기다리지 않고 바로 버스를 탈 수 있게 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버스 2대에 차장님과 인턴을 나눠 태우고 공항 주차장을 빙빙 돌다가 바이어 입국하는 시점에 맞춰서 호출하고, 바이어들 이름 확인 빠르게 하고 인원수 확인되면 태우러 가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이게 어려웠던 건 중동에서 온 바이어들의 이름이 대부분 비슷하다. 우리나라 KIM, LEE가 대부분이듯 이 사람들도 어찌 된 게 대부분이 모하메드였다. 그래서 이름을 확인하고 순차적으로 오는 버스에 나눠 태워 호텔로 보냈다. 나는? 아직 오지 않은 바이어들을 더 기다리고 있었다.


 4시간쯤 지나 이전 비행기에 미처못타서 뒤늦게 온 바이어들을 리무진에 태워 호텔로 갔다. 이미 호텔도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숙소 문제는 해결되었으니 행사를 해야 하는데 여전히 포럼을 진행할 홀들이 정비가 안되어있어 호텔 내부 홀 꾸미고, 안내서 배부하고 빠르게 시간이 지나갔다. 어느새 11시가 지나 자정을 향하고 있었다. 다행히 택시를 타고 집에가라고 하였는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출근하란다. 끔찍하지만, 다음날 다시 본 행사를 치러야 하느라 뭐 시간 가릴 처지는 아니었다.


 행사 중간에 한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중동바이어가 시내에 잠시 나갔다오면서 택시에 아이패드를 놓고 왔다고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사람이 외국인이니 그 택시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것이다. 기록된 게 없으니 어떻게 택시를 부르게 된것이냐고 물었고 택시는 호텔에서 불러주었단다. 호텔에 물어보니 고정적으로 부르는 콜이 있고, 택시회사에 전화해 중요한 계약문서가 담긴 아이패드라서 꼭 찾았으면 한다고 해서 강남에 있는 무슨 주차장까지 가서 받아왔다. 가져다 주니 바이어가 너무 기뻐하면서 200불을 주는데 그자리에서 괜찮다고 멋있게 거절했다. 지금까지도 후회하지만, 그때는 그게 멋있다고 생각했다 ㅎㅎ


 이후 행사는 무사히 잘 치러내었고, 힘든 3일간의 포럼 일정을 마치고 집에 가려는데 과장님이 붙잡았다. 그리고 제안했다.


 "야. 너 내일 뭐하냐?"

 "저요? 뭐.. 딱히 하는 거 없이 집에서 시간 보낼 거 같은데..."

 "내일 용돈 줄테니까 중동 바이어들 데리고 관광 좀 시켜줘라"

 "아 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받은 돈이 5만 원이었는데, 주말출근이기도 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서울 구경시켜주는 값 생각해보면 별로 큰돈 아니지만, 당시엔 한 푼이라도 더 준다고 하면 신나서 했었으니 지금 이렇게 큰돈 받으면서 퇴사 노래를 부르는 것과 비교하면 참 아이러니다. 월급 10만 원 받던 병장이 하루만 일하면 5만 원을 준다고 하니 눈이 안 돌아가겠는가 ㅎㅎ


 사실 이들을 데리고 어딜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일단 버스에 태웠다. 개별 관광을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버스에 탔다. 어디를 가야 하나 싶었는데 외국인들한테 서울이라고 하면 갈 곳은 정해져 있었다. 오전에는 인사동으로 낮에는 이태원으로 오후에는 테크노 마트로 갔다. 뜻하지 않게 관광가이드가 된 셈인데, 짧은 영어로 어찌 하루를 잘 보낸 것 같다. 재밌는 것은 인사동으로 가서 쌈지길을 구경하는 것은 익숙한 모습이지만, 관광을 하러 와서 이태원이라니? 싶었는데, 이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모스크를 점심에 꼭 가야 한다고 해서 서울 최대 모스크가 있는 곳으로 가다 보니 이태원을 가게 되었고, 인근에 먹거리, 구경거리도 많으니 마침 시간을 잘 보낼 곳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테크노 마트로 갔는데, 중동에서 온 사람들이 왜 그리 테크노마트로 가나 궁금해 물으니 플스 2 때문이란다. 대단했던 건 30명가량이 양손에 플스 2를 3~4박스씩 사갔으니 그 가게는 그날 완전 계 탔을 거다.


 마지막으로 중동 바이어들을 보내고, 다음 주에 있었던 아프리카 포럼에서는 별다를게 없이 순조롭게 비슷한 일들을 했고, 조용히 끝났다. 다만 좀 이색적인 사연은 아프리카 포럼 중에 그 팀의 대리가 나한테 신용카드를 주면서 몇십만 원 돈을 빼오라고 했다. 그러면서 비밀번호를 알려줬는데 약간 의아한 게 체크카드가 아니고 신용카드였다.


 "현금서비스 알죠? 이거 줄테니까 돈 좀 뽑아와요"

 "네? 그게 뭐예요? 그냥 인출하면 되나요?"

 "현금서비스 안 해봤어요? 하... 됐어요 내가 다녀올 테니까"


 후에 금융회사에 다니면서 현금서비스에 대해 알게 되고, 당시 대리 나이가 26살이었으니까, 얼마나 당시에 현금서비스에 대한 개념이 없었으면 저렇게 쉽게 현금서비스들을 받았을까 싶어 안타깝다. 지금은 안 그러겠지. 두 번째 포럼을 마지막으로 나는 계약 만료 퇴사하였다. 대리가 퇴사일 전날 내게 물으며 한 달 더할 수 있냐고 물었지만, 나도 딱 100만 원이 필요했기 때문에(운전면허 학원비) 미련 없이 그만두었다. 지나오면 전역하자마자 사무직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때 경험했던 정규직/비정규직 간 처우 차이를 몸소 느끼면서 급하더라도 좀 더 고생해서 정규직 직장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2011.11.30-



(예고) 앞으로 나올 이야기(랜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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