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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워커비 Mar 09. 2020

지고는 못사는 성격이라면, 이겨라.

퇴사를 막는 일곱번째 이야기

"안타깝게도 예선 탈락하셨습니다"


 1년전 호기롭게 도전했던 항공사 공모전에서의 실패를 안고 한동안 공모전에 눈을 돌리지도 않았다. 또 다시 도전했을 때 실패를 거듭하고 싶지 않아서. 아니 좀더 디테일하게 나의 감정을 말해보자면, 재도전을 했는데 실패한다면 그저 기술이 부족했거나, 경험이 부족했다고 위로할 수 없었다. 경험의 미숙함이나 성실함같은 정량적인 능력을 높인상태에서 정성적인 능력 즉, 크리에이티브함의 부족함을 인정해야했기 때문이다.


 미숙함은 실수를 딛고 보완하면 된다. 성실함은 꾸준한 단련을 통해 완성된다. 그러나 크리에이티브는 타고난다. 여기서 나의 재능이 부족한 것을 느낀다면 너무 자괴감이 올 것같아 1년만에 발견한 그 공모전의 포스터를 거의 3주째 외면했다. 중간고사가 끝날즈음, 1년을 함께해온 동아리 친구가 내게 물었다.


 "형, 나 아시아나 공모전 나갈건데 형 같이할래?"

 "응 안해. 그런거 나갔다가 떨어지면 괜히 쪽팔리기만하고 안할래~"

 "에헤이~ 형님! 왜 또 자신감이 없어지셨을까~? 나와 함께 하는데 뭐가 무섭지?"

 "아이디어 있음? ㅋㅋ"

 "그건 이제부터 푸하하"


중국인바운드 마케팅이 주제였다.


 마케팅전략 부문에 나가면서,  그리고 동아리방에 들어와서 이틀을 고민했다. 그리고 답을 내지 못했다. 누가 봐도 항공사 관심도 없고, 나는 원래 유통사를 가고 싶었기 때문에 소비재 마케팅에 관심이 있었지, 이렇게 해외 고객을 인바운드하는 마케팅을 어떻게 세우란 말인가? 동아리에서 매번 하듯 항공사의 재무제표를 분석한다거나, 전사전략을 만든다라는 것도 시간이 오래 걸릴 일이었다. 그리고 그날 집에 가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 슈퍼차이나 재방송을 봤다.


 언젠가 슈퍼차이나, 미국의 부활과 같은 KBS스페셜을 정리해서 보겠지만, KBS에서 돈을 많이 들여서 만든 다큐라 그런지 정말 잘 만들었다. 그리고 나도 이때부터 마윈, 손정의,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같은 단어에 뽕이 쉽게 차기 시작했는데, 각설하고, 이날 누워서 보던 슈퍼차이나에 등장한 마윈회장의 알리바바 생태계와 중국에서의 QR코드 확산에 대해 매우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날 학교에서 친구를 만나 제안했다.

 

"QR코드 이걸로 가자"


 사실 따지고 보면 이친구는 해당 공모전이 있던 2015년 이후로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도 큐알코드가 뭔지 제대로 모른다. 아니 그닥 쓸일이 없었으니까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이걸 제안했던 나도 아직까지 큐알코드로 지불해 본 경험이 다섯손가락을 꼽는 다는 것이다. 당시엔 더더욱 생소했던 개념이라 이걸로 어떻게 풀지 고민되었다. 하지만, 핫하니까, 그리고 중국에서 이게 잘나간다니까 한 번 도전해보기로 했다.


 중국인들이 한국에와서 돈을쓰고 나가기까지 최대한 환전을 적게 해주자는 취지였다. 기내 면세품도 큐알코드로 인식하여 구매하고, 한국에 들어와서도 곳곳에서 제휴된 주요점포에 큐알코드를 깔고 환전을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리텐션을 높이고자, 일부 항공사 마일리지를 함께 적립, 사용이 가능하도록 제안했다.


 항공사 공모전이 재미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공항, 격납고 등을 방문해볼 수 있는 것이었다. 일종의 공모전 보상이기도 했고, 항공사 산업 자체에 대한 이해를 돕는 과정이었다. 물론, 취준기간에 항공사들을 많이 썼지만 떨어졌다는 뼈아픈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하자.


 우리는 2차에 걸친 발표를 통해 결선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었다. 그것도 1위의 성적이었다. 이 글의 처음 써있던 것 처럼 같이 했던 친구가 제안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또, 1년전으로 돌아가 그런 최악의 결과물로 “심사위원이 우릴 잘 알아주지 않았다”라고 치부해버리고 내적 역량을 개선하는데 집중하지 않게 되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1등을 하고도 뒷맛이 씁쓸했던것은 공모전의 수상이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당시 나이가 27살이었다. 이미 취업할 나이기도 했고, 학교에서도 고학번 대우를 받는 나이인데 이제야 깨달은게 있다는 것이다. 바로 ‘실패, 그리고 공포와 맞서는 것’이다. 내게 이 공모전은 큰의미가 되었다. 단한번도 실패에 맞서서 살아와본적이 없었다.


 유년기 덩치가 큰 친구들과 시비가 붙으면 내가 억울하지만 피했다. 사춘기가 되어서도 겁이 많아 불의에 참고, 내 주변 부당한 일들에 대해 눈감아온 건 당연했다. 이뿐인가, 도망을 쳐왔다. 중학교 때는 기말고사를 도저히 잘 볼 자신이 없어서 아파버렸다. 감기몸살이라도 걸려 실수, 실패에 댈 수 있는 핑계라도 있기를 바랬다. 대학 입시에서도 가고 싶었던 대학을 도전조차해보지 못하고 될 만한 대학에 도전했다. 실패로부터 계속 도망쳐왔다. 군대에서도 무서운 선임이 있으면 눈도 못마주치고 사무실로, 화장실로 도망쳐왔다. 실패, 공포로부터 맞서는 것이 얼마나 무서울지 체감조차 하지 못하고 도망쳐왔다.


 그래서 친구가 공모전을 하자고 제안했을 때 마저도 실패 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지배하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내가 강해졌다고 느꼈다. 1년간의 트레이닝이 날 강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사실 실력보다 자신감이었다. 오히려 실패를 경험한 나보다 실패해본 적 없는 친구의 자신감이 내게도 전염되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선발, 입상이 아니라 1등을 한다. 그게 우리 자존심이다.’ 라는 생각을 계속 심어주었다.


지고는 못사는 성격


 우리는 살아가면서 ‘저는 지고는 못사는 성격이어서요’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물론 나이를 들어갈수록 주변에 그런사람들이 줄고 있다. 당연하다. 나는 그 때이후로 더 궤도 안쪽의 삶을 지향해오며 살아왔기때문에 둥글게 살아가는사람이 살아남는 환경에 남았고, 주변에는 이제 더이상 공격적인 사람들이 많지 않다. 그렇지만, 어느 누가 지고 나서 좋은사람이 있을까.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 지고나서 못사는 성격은 모두의 가슴 한켠에 고이모셔두고 간직하고 있는 그런 것 아닌가.


   다음으로도 크고 작은 실패를 다루겠지만, 우리는 지고 못사는 성격이 맞다. 그렇지만 매번 질때마다 못살수 없으니 버티는거지. , 매번 지기싫어 실패와 공포를 마주하지 못하기에  기회조차 점차 사라지는 것이지. 실패와 마주하자. 지고 못사는 성격이라면 결국 이겨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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