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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워커비 Mar 14. 2020

식전 기도를 하고 밥 먹는 회사

퇴사를 막는 아홉 번째 이야기

https://brunch.co.kr/@finsight/29


 앞의 글에서 밝혔던 그 회사 1차 면접에서의 곤욕을 치르고 2차 면접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2차 면접을 진행하기 전, 이 회사에서 만의 특별한 면접 이전 특별과제가 있었는데 이게 참 골 때리는 문제였다. 1차 면접자들을 각 지점으로 나누어 서로 협업하면서 지점 활성화 전략을 짜는 것을 과제로 내주었는데, 문제는 출퇴근 시간에 맞춰서 같이 다녀야 했고, 그 사이 멘토들이 멘토링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면을 관찰한다는 것이 매우 부담스러웠다.


조원들은 패션 담당, 가구 담당, 일반 소비재 담당, 마트 담당이 복수로 모였고 나는 마트 담당으로 종합 유통 건물의 지하 1층에 입점한 마트를 들어가게 된다. 1차 면접 이후 조원들과 연락처를 받고 나서 조장형이 주말에 모이자고 제안하여 다 같이 모였지만, 모여서 그냥 얼굴만 익히는 수준이었다. 재밌던 점은 앞으로 짧은 근로기간 동안 과제, 사회생활, 일을 하는 것을 모두 해내야 한 다는 것이었다. 짧지만, 이곳에서 겨우 2차 면접하나 받아보겠다고 해냈던 썰들을 풀어본다.


1. 과제


 지점 활성화 전략을 짜고 발표하는 과정이었는데, 다양한 아이데이션은 다 같이 했지만 실제 피피티 작업은 혼자서 다 해냈다. 조장은 따로 있었지만, 조장이라고 해서 리더십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연장자라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 사무능력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우리 조장은 학군장교 출신이라고 리더십을 강조하긴 했으나 별로 무슨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ROTC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갓 군대를 전역한 사람들은 모든 사회생활의 세계가 군 조직에서 사병들을 대상을 지시 명령 하달하는 것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협업이 쉽지 않다. 


리더십은 포지션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사람들 리서치, 현장 관찰, 설문 등 각자들의 역할을 나누어 줬다. 다른 유통회사들의 몰링 전략은 어떤 방식으로 수행되고 있는지 리서치를 했고, 맡은 지점 내에서 빈 공간을 활용해 미니숍을 어떻게 활용할지 공간 조사를 했고, 실제 방문 고객들을 대상으로 VOC를 수행했다.


2. 사회생활


 사회생활은 참 재미있었는데, 이 회사는 기독교 색채가 강한 덕분에 유통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일요일에는 출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점별로는 주일임에도 불구하고 출근하는 곳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중 내내 아침 8시까지 마트 지점까지 나와서 저녁 8,9시가 되도록 마트 사무실에서 혹은 층을 돌아다니며 앉아있어야 했다. 2차 면접을 앞두고 있고, 멘토가 일찍 출근하여 퇴근하지 못하는 시간에 아직 면접 중인 사람들이 어떻게 집에 가겠는가. 결국 기존 직원들과 같은 시간에 출퇴근을 해야 했다.


회사에 있는 기도실 생소하지만 꽤 있다.


 또 재미있는 점은 지점장님이 다 같이 고생이 많다고 구내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는데 오 마이 갓. 식사 전기도를 하는 것이다.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충분히 다닐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점심에 다 같이 밥 먹으며 식전 기도를 하고 먹는 모습, 또 사무실 옆에는 기도실이 따로 있어 일을 하다가도 와서 기도를 할 수 있는 모습들을 보며 문화충격을 많이 받았다. 실제 종교가 있는 사람이면 몰라도 종교가 없는 사람이면 꽤나 종교를 가져야 하나라는 느낌이 들게 분위기가 느껴지는 건 사실이었다.


3. 일과 보상


 놀랍게도 채용도 하지 않았으면서 현장을 체험한답시고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시간 과제와 현장체험에 시간을 할애했는데, 하필 우리가 이 곳에 왔을 때 지점 대형 행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대형 행사를 맞이하여 이날은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왔다. 00주년 행사로 지점 마트의 상품 가격이 상당수 1천 원, 2천 원 수준의 매우 낮은 가격으로 책정되어있어 이날 행사는 대흥행이었는데 그만큼 우리도 오전 내내 바쁘게 일할수밖에 없어 정말 피곤하고 녹초가 되었다.


 과제를 잘 만들어 만족할만한 발표를 하였고, 모두들 한 껏 기대감을 안고 2차 면접일이 되었다. 2차 면접만 통과하면 사실 임원면접은 큰 문제가 없는 한 통과한다고 들어 다들 기대감이 컸는데, 이러다 떨어지면 어떡하나라고 생각할 만큼 해당 주 내내 학교를 나가지도 못하고 (우리 학교는 유독 취업계 같은 것 마저 없고, 가차 없이 페널티를 주기 때문에 내겐 꽤 큰 모험이었다) 고생했기에 보상심리도 강했다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맞다. 현재 금융회사에서 모바일 서비스를 기획하고 있다는 것이 반증이 되겠다. 돌이켜보면 1차 면접에서 그렇게 원하지 않는 답변을 해놓고 2차 면접까지 오면서 어떤 종교적 신실함을 보여주지도 못했기에 뒤집히지 않은 건 아닐까 싶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 비해 기업문화나 급여나 좋은 처우를 받고 있으니, 이 매거진의 특징처럼 ‘퇴사를 하고 싶을 때 나를 말리는 가장 강력한 경험 중 하나’가 될 수 있는 과거가 되어버렸다.


물론 위에 5개 상품권은 아니다.


 대충 글만 봐도 어떤 회사인지 알기에 구태여 더 나쁜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일하고도 상품권 10만 원만 준건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있는 회사는 면접에 올 때마다 3만 원씩 따로 주었고(3차 면접까지 하느라 총 9만 원을 받았다), 다른 회사들도 면접이라고는 해봐야 1,2시간인데 3,5만 원씩 잘만 줬던 데에 비하면 이 회사의 취준 경험은 이 장면만으로도 회사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가장 취약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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