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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워커비 Mar 19. 2020

'무단횡단'해야 했을까

퇴사를 막는 열 번째 이야기

 면접을 다니다 보면 내가 빌런인지 상대가 빌런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다양한 탈락 과정에서 굳어지는 것은 내가 빌런이어서 떨어졌을 때는 두고두고 '왜 그때 그렇게 대답하지 못했을까'라는 아쉬움이 들고, 상대방이 빌런일 때는 '언젠가 그 회사를 꼭 무시해줘야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역시나 스스로에게 관대한지라 전자보다는 월등히 후자의 경우가 많았다.


 한 번은 호텔레저산업 대기업 면접이었다. 서울의 유명 호텔의 식음업장 매니저에 대한 면접이었는데, 꽤나 진땀을 흘린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당신은 서류전형에 통과하였고, 면접을 보러 가는 길에 횡단보도의 빨간 신호에 걸렸습니다. 마침 도로에 차량은 없는 상황이며, 지금 무단횡단을 하지 않으면 지각하여 면접에서 탈락됩니다. 이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건지 기술해주시고,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어 설명하여 주십시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면접을 준비해 간 것을 풀어보자면,


"저라면 무단 횡단하지 않겠습니다. 서류전형을 통과했다는 것은 저의 기본적인 자격이 회사가 원하는 기준을 통과한 것이고, 이번 면접이 아니더라도 이 회사에 대한 재도전 의지만 있다면 다시 합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혹여라도 면접관이 왜 늦었는지 물었을 때 무단횡단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늦은 것에 대해 시인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뢰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기업의 면접을 가며 무단 횡단할 수 없었다고 말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글쎄요. 그렇게 오고 싶은 회사면 무단횡단을 해서라도 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정말 오고 싶은 기업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면접관 역시 물러나지 않고 재빠르게 되물었다. 난 좀 아쉬웠던 것은 이미 내가 서두에 무단 횡단하지 않겠다고 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되물었다는 것이다. 왜 하지 않을 것인지 나의 기준을 설명한 것에 대해 묻지 않은 것이다.


"제가 그렇게 오고 싶은 회사였다면 무단횡단을 해야만 제시간에 갈 만큼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면접을 볼 리 없습니다. 만약 그런 상황을 만든 면접자가 무단횡단을 해서 까지 회사 면접을 보러 온 사람은 회사에서도 채용하기를 꺼릴 것 같습니다. 제가 00 기업을 지원한 이유도 역시 정직함과 신뢰를 바탕으로 고객에게 서비스하는 모습 때문입니다. 다른 회사도 마찬가지 지겠지만 식음업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에 입사하고자 하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양해를 구하고 서비스 구하는 인재를 찾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고집이 센데요? 면접관이 두 번이나 물었습니다. 그런데도 마지막까지 면접에 늦겠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걸 우리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고집으로 비치기보다 신뢰 있는 자세로 보이고 싶었는데 제가 표현이 서툴렀던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럼 마지막으로 물어볼게요. 무단 횡단하면 이제 면접에 제때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무단횡단하실 건가요?"


 "아마 횡단보도 도착 20초 전 정도 되면, 제가 무단횡단을 해야 하는 타이밍인지 아닌지 이미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전에 챙겨놓은 인사 담당자의 연락처로 전화를 하여 늦을 수 있음을 미리 알리고 무단횡단은 못할 것 같습니다. 면접에 제때 도착하지 않아 문제 되는 것은 인사담당자 입장에서도 면접관들의 스케줄에 맞춰 바꿀 여지를 미리 주지도 않고..."


"그러니까 뭐 세 번을 물었는데 끝까지 무단횡단을 하지 않겠다는 거네요 ㅎㅎ 그래요.. ㅎㅎ"


 다대다 면접이었고, 내 면접의 여파였는지 다른 면접자들은 모두 무단횡단을 하겠다고 대답했다. 내 잘못이 맞았다. 기술적으로 이 면접에서 원하는 답변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총 3번이나 받았음에도 그 답을 끝내 말하지 못한 면접자의 잘못이 맞다.


 돌이켜 다시 그 자리에 앉아있을 기회가 온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사실 수많은 면접을 진행하면서 진심을 다하지 않은 면접이 없었기에 역량 부족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내 역량을 풀로 채운다 해도, 무단횡단을 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 또 하지 않겠다고 할 것이다. (결코 무단횡단을 어떤 신념을 갖고 안 해본 것은 아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작게든 크게든 자주 해봤다. 목숨 귀한 줄 알고 난 이후로는 안 하지만)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논리가 아니라면, 아무리 거짓말로 꾸며도 티가 나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은 것뿐이다.


의리 하면 떠오른 회사는 몇 없다


 생각해보면 '의리'를 매우 중요시하는 그룹이라고 유명하게 알려졌는데, 의리는 신의를 좀 더 거칠게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오너부터 그렇게 의리를 중시하는 회사에서 무단횡단을 해서라도 면접을 하러 오길 바랬을까?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도 면접관과의 신의를 생각한다면 의리 중 하나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당시 생각한 것은 내가 지원한 '식음업'서비스가 고객에게 '신뢰'를 파는 사업이기에 무단횡단이라는 편법을 쓰는 것으로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 평소 다른글보다 유입이 적음에도 글이라는 것은 꽤 멀리갈 수 있구나 싶네요. 글이 발행된 이후 제안하기를 통해 연락을 주신분이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남겨야 할 것 같아서요. 같은 그룹에서 근무하고 계신 분으로부터 사과의 말씀을 전달받았습니다. 저의 생각과 가치관을 존중해주신다는 말씀에 더하여, '좋은 결과를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그 과정이 적절치 않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을 같이 공유해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회사를 다니고 있고, 대기업이라고해서, 면접관이라고 하여 절대 실수를 해서는 안되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모두 우리같은 소소한 사람들이 하나 하나 모여서 바른 가치관을 지향하고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것입니다. 생각보다 우리가 정의로운 생각을 달리 하지 않아도, 바르게 살아오는 것에 익숙해져 그런것일 수도 있고요. 한 면접관의 행동이나 실수가 기업의 이미지를 망치는 커뮤니케이션이 되기도 하면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하고 있는 직원들의 노력이 티끌처럼 쌓이고 쌓여 태산같이 바른 지향점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격하곤 합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덧붙여 밝혀두자면, 앞으로도 쓰는 '퇴사를 말리는 취준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5~6년전 경험했던 취업준비생 시절 경험을 나누고자함입니다. 당시에는 취업이라는 큰 산을 넘기위해 한 개인이 경험했던 고군분투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또, 지금도 어딘가에서 취준을 해내고 있는 취준전선의 끝 어린 취준생들의 애환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당시 서운했던 마음, 시간이 지날 수록 잊혀지고 사람사는게 참 별반 다를게 없다는 생각에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어 이렇게 글을 쓰기도 하네요. 글이 진부할수도 재미없을 수도 있지만 항상 읽어주시는 분들께 무한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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