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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워커비 Apr 20. 2020

대기업이 대학생을 관리하는 법

퇴사를 막는 사연 열두 번째 이야기


 전혀 생각지도 못한 면접장에 와있다. 아니, PT장이었다. 한 번 공모전을 1등 해보고 나니 공모전을 수상하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장황하게 설명할 것 없이 공모전은 시행 시점에서 회사에서 가장 궁금해하는 시장 트렌드를 대학생의 관점에서 재미있게 해석하여 답을 내놓는 과정이다. 마케팅이든 아이디어든 모두 적용되었다.


 그리고 4학년 1학기 마칠 때 즈음, 공모전 게시판에 공고가 올라왔다. 

A사 아이디어 공모전.

수상 특전1. 노트북 증정 
        특전2. 인턴 기회 부여
        특전3. 멤버십 활동 후 공채 지원 시 인적성 없이 최종면접 기회 부여


 당시엔 게임회사 지원조차 하기 이전의 상황이었고, 위에서 밝혔듯이 공모전이 쉬워 보여 이것저것 관심 가지던 차에 결국 취업을 하려고 공모전하는게 아닌가 싶었는데, 스펙 쌓고 취업기회까지 부여된다고 하여 한번 해보기로 했다. 


 공모전 경험을 살린 덕분인지, 기말고사 기간 급히 만든 공모전 파일은 예선 합격이라는 답변을 돌아왔다. 기말고사를 마치고 방학에 접어들며 물론 본선에 가서 PT까지 아주 쉽게 성공했다. 


발표가 체질이라 이런 건 쉬운 죽 먹기였다.


 본선 합격으로 원래 내가 노리고 있던 최신 노트북도 지급받았고, 인턴까지 보장되었다. 그리고, 일련의 대학생 멤버십 기간을 마치면 인적성 면제 후 최종면접만 보고 입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평범해 보이는 그저 그런 대외활동 중 하나인 줄 알았다. 문제는 인턴이었다. 매달 정기적으로 만나서 토론하고, 학습해야 하는데 이전 글에서 처럼 덜컥 게임회사의 인턴을 합격해버린 것이다. 합격통보 이후 게임회사에 한 달에 한번 시간을 빼줄 수 있는지 문의하였지만, 그곳에서는 그런 예외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물론 당연하게도, 멤버십에서도 역시 한 달에 몇 번 있지도 않은 모임에 참석하기 어렵다면 위의 특전들은 제공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결국 게임회사 입사를 포기했다. 무언가 첫 단계부터 삐걱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그랬듯 정확히 맞아떨어져 가고 있었다. 10개월 가까이 이 멤버십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HR의 갑질 아닌 갑질은 지독하게 내 마지막 대학 생활을 병들게 만들었다. 


 취업률이 바닥인 시기에 인턴 기회와 정규직 공채 입사 인적성 면제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기회였다. 다시 말해 '내가 이런 기회가 아니면 또 언제 대기업에 입사해보나'라는 생각이 들게 했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행운으로 찾아온 기회들이 오히려 나를 위축시켜만 갔다.


 특히 정규직 공채 채용의 기회가 달려있기에 멤버십 활동을 좌지우지하는 HR팀의 언행들은 우리를 매우 위축시켰다. 매번 모임마다 긴장을 늦출 수 없었고, 가끔 모이는 술자리에서는 나의 SNS 내용까지 공유되며 나의 생각이 혹여라도 불순하다고 HR팀에서 생각하면 어떨지 사소한 것까지 신경 쓰였다. 


 멤버십 활동을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HR 인사와 연줄이 닿아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대학 선배들이 이 회사에 재직하고 있거나, 지인이나 부모님의 배경으로 HR과 연결되어있다면 더더욱 비밀스러운 정보들이 일부에게만 전달되었다. 이 와중에 그 친구들이 전달해주고 들려주는 우리 개개인에 대한 HR팀의 평가들은 더더욱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HR팀 대리가 번개모임을 주최했는데, 워낙 멤버십 인원이 많다 보니 그 기수의 장에게 주변에 몇몇만 불러보라고 하였고, 누구는 수업을 제치고 오기도 하고, 누군가는 약속을 파투 내거나, 휴강일에도 챙겨 나왔다. 더 무서운 것은 그 자리가 있다는 것을 멤버십 친구들끼리 이야기해주지 않아, 더욱 그 긴장의 끈은 팽팽해져 갔다. 나만 HR과의 술자리에 함께해야 한다는 이기심이 그룹을 더 긴장시켜왔다.


술자리에서 오간 이야기는 다음날 역사가 된다.


 대기업이다 보니 생기는 일들이었다. 모두들 자신들이 목표해왔던 회사들의 연봉보다 작게는 몇백, 크게는 천만 원 이상까지로 초봉이 높다는 것을 듣자 욕심이 생겼다. 대기업들은 이렇게 급여를 많이 챙겨주는구나. 다들 자신들의 스펙에 생각지 못했던 회사를 간접적으로 경험해보니, 여길 꼭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멤버십 회원들 사이에서 경쟁을 거쳐 입사를 할 수 있다고 하니 도리어 친구들끼리 반목하고, 질투, 시기하며 어떻게든 HR의 눈에 들기 위해 더 노력했다. HR은 이를 십 분 활용하여 멤버십을 쉽게 장악하였다. 공개된 정보를 갖고 운영하지 않고, 멤버십중 일부에게 살짝 정보를 흘리고, 이 정보가 퍼지면 건너 건너 들은 사람들은 HR과의 거리감에 더 어려움을 느끼고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HR의 간택을 받기 위해, 더 노력했다. 인턴활동을 하면서도 HR에 어떻게 보고될지 몰라 긴장의 시간과 세월을 부었다. HR과의 술자리에서는 더 잘 마시고자 노력했고, HR 대리는 "야 아무리 임원면접이라 해도 걔들도 내가 너 평가서 써주는 거 보고 너에 대한 선입견을 가질 텐데 형만 믿어라 ㅋㅋ"라며 자신의 위세를 자랑하기 바빴다. 

 

 멤버십 과정 중 도저히 이런 상황들을 견디지 못하고 자진해서 그만두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그렇게 되면 꼭 뒤에서 말이 나왔다. HR 대리는 "걔는 00 회사? 거기 우리 회사보다 작은데 왜 가냐. 너희들 여기 남아있으면 ㅁㅁ대기업 배지 달고 다니는 거야~ 무시해~" 라며 입사 6년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는 애사심을 멤버십 친구들에게 심어주기 바빴다. 


 결국 인턴도 마치고 지겹고 지겨운 10개월이 끝나고 드디어 최종면접의 날이 왔다. 그리고 면접에서는 모종의 이유로 보기 좋게 미끄러졌다. 멤버십 활동도 내가 잘했고, 중간시험성적이나 인턴 활동 그리고 스펙까지 내가 밀릴 것이 없었지만, 글에서 밝힐 수 없는 모종의 이유로 나는 배제되었다. 


정장에 머리를 넘기고 면접을 보는 면접장의 분위기도 한몫했다.


 대리와 통화를 하려면 사원을 통해 스케줄을 확인해야 하고,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오너에 대해 가벼이 이야기할 수 없으며, 우수고객 자녀들을 집중 케어하고 취업까지 봐주는 그런 대기업 면접에서 탈락했다. 어쩌면 이 10개월에 나를 걸었기에 마지막 대학생활의 기억도 머릿속에 좋게 남아있지 않았다. 면접 결과가 발표 나던 5월의 어느 날 나는 너무나도 비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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