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막는 취준 이야기 열세 번째 이야기
지난 10개월간의 대학생 멤버십 활동, 인턴까지 거치며 전환에 실패해버리며, 취준은 그렇게 저물어 가는 것 같았다. 어디까지 떨어질지, 어디까지 양보해야 할지, 자존감이 많이 떨어지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당시까지 지원서를 쓴 곳만 중복을 포함해 200곳이 넘었고, 서류통과는 20개 남짓일 만큼 서류 통과 자체가 내겐 큰 산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는 실패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회사 지원 원칙을 세웠다.
1. 채용인원을 명확히 명시할 것.
2. 인턴이라면, 전환율을 고지할 것.
3. Fit을 맞춰보는 면접장엔 갑을이 없다.
4. 공정한 노동에는 공정한 임금을.
- 채용 공고에서부터 몇 명을 서류 통과시킬 것인지는 매우 중요한 지표이다. 서류 합격을 하고, 인적성을 쳐야 하는 지원자 입장에서는 인적성 시험일이 겹치는 슈퍼매치데이에 어느 회사를 가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오전 인적성, 오후 인적성 나뉘어 급히 고사장을 오토바이로 이동하는 사람들도 봤지만, 대개 하루에 인적성 하나를 보는 게 일반적이기에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대략 지원자가 몇 명이고, 이 중 얼마나 합격할지 합격 가능성을 점 쳐보면, 일단 많이 뽑는 곳이 좋다. 적게 뽑을 것이라고 서류 지원을 하지 않을 것이고, 인적성을 안 볼 것이 아니지만, 일단 한정된 나의 시간이라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숫자가 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서류통과 후 인적성 대상자가 600명이 된다는 소식에 내심 600명 안에 들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그리고, 마침 겹쳤던 다른 회사들과 비교해 내가 시험장에서 상위 40% 안에 들 자신이 있었기에 이곳으로 발길을 향했다.
- 비록 전환형 인턴이었기에 합격이 곧 정규직 채용으로 이어지는 길은 아니었지만, 전년도, 전전 연도 전환율은 익히 알려져 있어 전환율에 대해서 지원자들이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 컸다.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것이 다른 회사의 정규직과 이 회사의 전환형 인턴을 놓고 저울질했지만, 다행히도 다른 회사의 정규직 채용을 떨어지게 되면서 자연스레 선택했을 만큼 취준생에게는 당장 내게 정규직 자리를 줄 수 있느냐 없느냐가 큰 조건일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다른 채용전제형 인턴 채용 공고들과 비교에서 예상 전환율이 공개된 것은 지원자들 입장에서 좋은 선택 참고사항이 될 수 있었다. 실제로 인턴활동을 거치면서 내가 경쟁해야 할 대상의 수를 아는 것도 좋은 지표였다. 결국 누군가는 합격하고, 누군가는 전환이 안 되는 인턴생활이라면 내가 다른 한 명보다는 잘할 수 있다는 어필을 꾸준히 해줘야 한다. 전환율을 고려하며 보다 계획적이고 안정적인 인턴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 이 회사에서는 면접을 총 3번을 보게 되었는데, 서류 팩트체크를 하는 1차 프리 면접, 종합적인 직무능력을 평가받는 2번에 걸친 2,3차 면접을 거치게 된다. 특히 서류 팩트체크를 통해 50%가 걸러지기 때문에 서류상 문제가 없는지, 졸업에 문제가 없는지, 제출한 서류에 거짓은 없는지 서류들을 1대 1로 대조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이전에 회사들과의 면접과 이 회사에서의 면접이 유독 다르다고 느낀 것은 나를 핀잔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차피 Fit을 맞춰보고 아니면 탈락시키면 될 일인데 유독 기업문화가 개판이기로 유명한 회사들은 그렇게 나서서 꼽주기를 반복했다.
(1) 종교에 미친 회사
- 내가 교회를 다니는지 묻고, 지원동기에 종교적 이유도 있는지 꼭 물었다.
(2) 정치에 미친 회사
- 존경하는 정치인이 누구인지, 그래서 어느 대통령을 좋아하는지 꼭 물었다.
(3) 훈계에 미친 회사
- 스펙은 중요한 부분이라고 본다. 분명 입사할 소수의 인원들을 가려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준이기 때문에 충분히 봐야 한다고 동의하는 부분이다. 문제는 서류를 이미 합격시킨 이상 내 학점이 몇인지, 영어공부를 왜 그렇게 안 했는지 핀잔 줄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핀잔을 주면서라도 입사시키면 모를까 어차피 탈락시킬 거 자기들이 인생의 선배라도 되는 것 마냥 훈계를 해댔다.
반면, 이 회사의 경우 팩트체크 과정에서 내 학점이 낮은 것이나 대외활동들을 보고 인사담당자가 했던 말들이 기억난다. 낮은 학점을 내가 약점이라고 생각하자 '그래서 지원자분의 다른 활동들이 더 기대된다'거나, 대외활동에서 다소 정치성향이 드러났다 하더라도 '어떻게 정치 쪽까지 공모전을 하고 스펙을 쌓을 수 있었는지 대단하다'라고 되묻기도 했다.
어차피 FIT이 맞지 않으면 탈락시키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 회사의 채용과정에 있어서 만큼 합불과 관계없이 채용하고자 하는 HR 담당자의 애티튜드가 매우 건전했다는 것이다. 보통 기업의 대외 이미지를 깎아먹는 것 들 중 하나가 '상품의 질적 저하로 나쁜 경험을 한 사용자의 적나라한 후기'거나 '채용과정에서 기분 나빴던 경험들'이다.
- 사실 면접/인턴과정에서 돈을 받는다는 건 여러모로 만감이 교차하는 일이다. 내가 계속 심사받거나 평가받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이 과정에서 돈을 받게 되면 자존감이 올라간다. 이건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다. 나를 비로소 회사에서 필요한 노동자라고 대우하는 것이고, 고용 과정에서 매우 평등하게 나를 대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전에 회사에서는 면접과 일주일간의 중노동을 했음에도 그 회사 상품권 10만 원어치를 받았다고 혹평한 기억이 있는데, 이 회사는 간단한 1시간 면접을 할 때마다 3만 원씩 주었다. 3번을 다녀가니 9만 원이 생겼다.
더 좋았던 점은 당시 최저 임금이 6천 원이었던 시절, 인턴 월급은 주급 단위 40만 원씩 책정하여 7주 과정을 거치고 나니 280만 원이 고스란히 들어왔던 기억이 있다. 당시 인턴을 마치기 2주 전부터 주변에서 인턴 월급 받으면 어디에 쓸 것이냐고 물었는데, 혹여 전환될지 모르지만, 일단 취업 전 마지막 여행이 될지 모르니 일본 종단 여행을 갈 것이라고 했다. 인턴을 마치고 3주 넘게 일본 후쿠오카에서 삿포로까지 열차여행을 하고도 용돈이 남았을 만큼 값지고 큰돈이었다.
돈돈해서 미안하지만, 취업이라는 게 돈 벌려고 하는 것이지 무슨 공명심, 충성심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다. 당연히 내가 일하고 받아야 할 공정한 노동의 대가인데, 채용과정에서부터 이런 부분들이 문제 있는 회사들은 여지없이 뉴스에 나오곤 한다.
회사를 모두 하나의 잣대로 볼 수 없지만, 채용과정조차 그림자 가득한 회사는 결코 기대할 거리가 없는 회사임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