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말리는 열한 번째 취준이야기
게임을 좋아하세요?
10대 청소년 남학생들을 둔 부모님들의 최대 관심사는 '게임'일지도 모른다. '공부'를 업으로 삼는 학생들에게 최대 적은 '게임'이니까. 또, 부모들은 아이들이 공부를 하게끔 통제할 수는 없어도, 게임을 못하게끔은 통제하기 쉽기 때문에 '게임'을 통제하는 것에 더욱 집착할 수 있다. 지나고 보면 게임을 했냐 안했냐는 '공부'라는 것을 달성하는 데에 별 상관관계를 갖지 못했다. 그냥 부모 마음 편하자고 게임을 막는 것이었다.
각설하고, 나는 게임에 관심이 없었다. 아니 없었다기보다는 게임을 잘 못했다. 치트키를 치고 무적으로 스타를 했고, 6살이나 어린 동생과 축구게임을 해도 막상막하였다. 게임에 재능이 없었던 게 아닐까 싶은 정도로. 지금도 게임 잘 안 하는 여자 친구와 스위치로 게임을 하면 비슷비슷할 만큼 게임에 영 몰입이 안된다.
내가 생각한 게임이라는 것은 그랬다. 가상세계. 현실세계에서 채울 수 없는 무언가를 채워야 하는 곳이었다. 현실에서는 싸움을 잘하지 못하니 거대한 검을 쥔 검사가 되어 싸우고 죽지 않는 게임을 했다. 현실에서 지구력이 딸려 축구를 못하니까, 항상 체력이 넘치고 스펙 좋은 바르셀로나 FC로 유럽 지역리그 하위팀을 농락해가면서 게임하는 걸 즐겼다. 게임이라는 것이 현실을 해소해주는 순간 게임에 흥미를 잃기 때문에 게임에 빠진다 해도 그게 2,3일을 가지 못했다.
그만큼 게임을 못했다. 게임을 잘 못한다 해도 좋아하긴 했다. 남이 하는 것을 보는 게 재밌었다. 게임 2시간은 힘들어서 못해도, 게임방송은 2시간 넘게 봤던 것 같다. 그리고 게임에 대해 풀이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았다.
돌아와서, 취업할 때가 되어보니 게임을 할 줄 모르니 게임회사에 지원하는 것에 엄두가 안 났다. 남들 학교 다니면서 피시방에서 스타하고 다닐 때, 옆에서 네이트 랭킹 뉴스만 봤다. 군 전역을 하니 롤이라는 게 유행했는데, 너무 클릭할 것도 알아야 할 것도 많고, 페이스북이 훨씬 재밌었다. 이어 나온 오버워치나 배틀그라운드도 같은 식으로 흘러가버렸지만.
당장 게임회사에 지원해야 하는데, 요즘 게임도 모르고 옛날부터 10년 넘게 해온 게임들 밖에 생각 안 났다. 내가 직접 해봤어야 썰도 풀도 면접 가서 게임을 어떻게 개선할지 말을 해볼 텐데 TV나 아프리카 통해서 본 것뿐이라 아는 게 없었다. 나는 사업기획부문에 지원을 했고, 면접은 2대 2로 진행되는 곳이었다.
게임회사라는 곳에 면접을 보러 오니 게임 캐릭터가 로비에 있고, 사무실도 어찌나 이쁘게 꾸며졌는지 모른다. 대기시간을 거쳐 나와 한 여자 면접자가 같이 면접실로 들어갔다. 각자가 자기소개를 했는데, 나는 서비스, 사업 기획에 포커스를 맞춘 자기소개를, 옆 지원자는 게임에 대한 자신의 역사를 풀어줬다.
놀라운 건 이 회사에서 출시했던 유명한 게임을 비롯해 마이너 한 게임까지 30가지를 줄줄 읊은 것이다. 면접관도 신기했는지 그 게임들의 최근 이슈나 게임 플레이 과정에서 겪은 불편들을 낱낱이 물어보고 있었다. 정말 많은 시간들이 이 지원자에게 집중되어 나는 초반부터 낙담을 했다. 내가 끼어들 수 있는 게임은 내가 중딩때 해본 몇 가지 게임뿐이었다.
면접관도 민망했는지 내게도 기회를 줬다.
"남자 지원자분은 우리 회사 게임 중 무얼 해보셨나요?"
"네, 000과 ㅁㅁㅁ을 해봤습니다"
"혹시 레벨이 몇인지 알 수 있을까요?"
"네, 20 레벨입니다."
"엇..? 그거 튜토리얼 끝나면 렙 15는 달성하는데, 20이면 거의 안 하신 거 아니에요?ㅎㅎ"
"네 ㅎㅎ 게임을 잘 하진 못해서 금방 게임을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게임 자체는 또 좋아하다 보니 게임을 보거나 사람들이 게임을 갖고 파생적으로 하는 이야기들에 집중하게 됩니다."
누가 봐도 확연히 옆사람에 비해 나의 강점을 하나도 보여주지 못했던 면접이었다. 그런데, 이런 결과는 이미 면접장에 오기 전부터 예상하던 부분이었다. 게임사 서류 합격했다고 이제 와서 게임을 하나 둘 튜토리얼 이해해가며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옆사람은 레벨 300을 달성하면서 지나쳐온 세월들, 클랜원들과의 에피소드들을 몇 년에 걸쳐 추억할 때, 나는 고작 튜토리얼이나 이해해놓고 게임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를 말한다는 게 어불성설이었다.
"좋아요. 게임회사라고 다 게임을 잘하거나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너무 기죽지 마세요 ㅎㅎ"
"네 감사합니다.ㅎㅎ"
"대신, 우리는 사업기획 업무니까, 개발과는 다른, 기획 측면에서 게임을 통해 유저의 수를 늘리고, 비즈니스를 확장할 수 있는, 영업이익을 개선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듣고 싶어요. 남자 지원자분부터 말씀해주시겠어요?"
내가 생각한 부분도 바로 이것이었다. 게임은 다 잘할 수 없다. 나같이 좋게 말해 제네럴 리스트, 뭐 나쁘게 말하면 잡탕인 사람들은 일반적인 취업 스펙을 쌓는 동안 전공지식이나, 트렌드 리서치를 해놓은 건이 다른 사람보다는 강점이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이 게임에 강점을 가지는 동안 내가 페이스북이나 인터넷 뉴스만 탐독하던 것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유튜브, 아프리카 티비와의 연결이었다.
"모바일 지향성이 강해지면서, 점차 사람들은 PC에서 모바일 게임으로 빠르게 이동할 것입니다. 같은 아프리카 TV에서 영상을 재생해도 PC 모니터를 통해 보는 사람은 줄 것이고, 모바일에 맞춰 보는 사람이 더 많아지겠죠. 그럼, 허들이 낮아진 영상 플랫폼에 들어오는 게임 BJ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지금은 별풍 받은 BJ들이 돈 태워 가면서 아이템을 사고 레이드를 뛰고 이런 것만 콘텐츠가 될 수밖에 없지만, 스마트폰으로 영상 켜는 친구들이 늘수록 유튜브나 다른 오픈 영상 플랫폼으로 넘어와서 쉽게 게임을 중계하다 보면 지금의 PC에 매몰된 게임 업태가 다양해지겠죠. 제 생각엔, 이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어리고 기술적으로 영상편집이 미숙한 친구들로 보고 게임과 영상을 같이하는 소규모 BJ들에게 게임사에서 더 많은 확산을 유도하도록 확률형 아이템 구매용 선불카드를 선물한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게임 이용인구를 늘리고 추가 구매를 유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다음 옆 지원자의 답변은 오랜 시간 지나지 않아 기억이 자세히 나지 않지만, 현재 플레잉하고 있는 게임들의 커뮤니티에서의 의견들을 풀어서 대답했다. 현재 게임에서 어떤 GM의 행동이 반발을 산다거나, 어떤 곳에서의 서버 다운이나 아이템 확률이 낮다거나 하는 게임 민원성 의견들이었다.
나와 그의 차이는 그곳에서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게임회사는 게임을 하러 오는 곳이 아니다. 그랬다면 게이머들이 힘들게 게임 안 하고 게임사 오고, 부잣집 자녀들은 죄다 명품회사를 왔을까? 게임회사는 게임을 팔아 돈을 벌어야 하고, 유저의 불편을 이해하는 것이 1단계라면 2단계는 불편을 넘어 자발적인 행동을 유도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비즈니스가 그렇다고 생각하고 내가 고객의 행동을 유도하는 안을 내놨다면, 경쟁자는 고객의 민원을 내었으니 '사업기획'이라는 직무 포커스를 누가 맞추었는가는 면접 결과로 나왔다.
면접을 마치고 나오면서 예감이 좋았고, 결국 합격했다. 취준의 끝이 보였다. 그렇게 생각보다 빠르게 나의 취준이 끝나는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다음날 나는 회사에 전화를 걸어 입사를 포기하는 의사를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