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워커비 May 05. 2020

취준활동의 마지막 이야기

퇴사를 막는 취준활동의 열네번째 이야기

 어느새 열네번째 취준이야기까지 왔다. 사실 이 이야기를 시작할 즈음에는 퇴사를 너무하고 싶은데, 그 퇴사 욕심이 그저 현재를 도피하고 싶은 마음때문인 것이 컸다. 그러다 보니 퇴사 이후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 마냥 퇴사욕구만 충만해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퇴사 노래만 부를 수 없으니 방법을 찾아 헤맸던 것 중 하나가 '지금 내가 그만두고 싶어하는 직장을 얼마나 힘들게 들어왔는지 돌이켜보면 일단 현재에 감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브런치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참여했던 인턴과정을 마치는 마지막주, 전환 발표는 3주뒤에 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이 팀에 남을 수 있을지 이 회사에 계속 다닐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은인상을 남긴것 같아 내심 안도하였고, 무엇보다 인턴과정에서 주는 월급이 워낙 괜찮기도해서 인턴을 마치고 받게된 300만원 남짓의 돈으로 무얼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함께 했던 멘토분은 길게 장기여행 가보는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다른 인턴 동기들은 전환 안 될 수도 있으니 취준 자금으로 아껴써야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나는 이번 인턴을 마지막으로 졸업을 해버리면서 완전히 배수의 진을 쳤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환이 안되면 평소 가고 싶었던 스타트업에 지원하거나, 공무원시험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에 홀가분해져 마지막 휴식으로 일본 여행을 가기로 했다.


 좋았던 기억만 안고 7주간의 인턴을 마치고 집에 누우니 직장생활이라는게 꽤 할만한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 전환이 안되면 어떤 회사를 지원해야하나 천천히 떠올려보기도 했다. 그리고 계획했던대로 후쿠오카를 시작으로 북해도까지 오키나와를 제외한 일본열도를 모두 종단해보기로 했다. JR패스를 끊어 약 3주간의 여행이었고, 여행의 말미에는 전환 결과를 메일로 받아볼 수 있도록하여 더 체류할지 고민할 수 있는 옵션도 만들어 두었다.


JR패스를 15일권 끊었는데 하루를 더 준 기억이 난다.


 여행이야기는 언젠가 여행 매거진을 따로 발행하며 작성할 것이고, 후쿠오카-기타큐슈-히로시마-오사카-교토- 나고야-도쿄-하코다테-삿포로(순서가 약간 헷갈린다)로 이르는 여정을 돌며 신나게 포켓몬Go를 했다. 간만의 마음편한 휴식이었다.


 그동안 놀면서도 불편했던건,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기전 내가 무언가를 준비해야한다는 강박때문이었는데 여름방학 그리고 졸업을 하면서 당장 할  수 있는 인턴을 마친상태라 그 어느때보다 계산없이 생각없이 여행을 다닐 수 있어 좋았다. 또 나홀로 여행을 좋아하는지라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일본의 골목들을 돌아다니는 즐거움도 좋았다.


 그렇게 삿포로를 돌아 다시 도쿄로 돌아오는 기차안이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했던가. 내심 전환결과에 대한 걱정을 했지만, 인사팀에 묻는다고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니 그냥 잊고 살았지만, 발표 시기로 예상되는 날짜가 지나고 있어 불안한 상태였다. 동기들에게도 혹시 메일 받은게 없는지도 물어봤지만 딱히 알림이 안왔다고해 다시 여행에 집중하고 그랬다.


 그리고 아오모리를 지나는 즈음 문자가 왔다. 전환결과를 인터넷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서둘러 노트북을 꺼내 메일에 접속하고, 결과 링크를 들어갔다. 위에서부터 차근차근 내리는데 취준활동을 하며 처음보는 결과화면이 나왔다. 결과는 합격이고, OT일정을 안내하는 메일이었다.


합격발표를 노트북창으로 보다보면 왼쪽처럼 차분하게 볼 수 없다.


 그동안 수많은 탈락메일과 인사메일을 받았다. 제한된 인원으로 귀하를 모실 수 없다는 상투적인 말들을 많이 들었지만, 듣고 볼 때마다 좌절되는 감정은 어쩔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결국 마주한 합격 메일을 보며 어안이 벙벙했다. 만약 주변에 친구나 부모님이 계셨다면, 소리를 지르고 방방 뛰었을 것이지만, 그저 조용히 빠르게 농촌을 지나는 기차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속으로 환호하는 것 뿐이었다.


친구들과 합격발표를 같이 봤다면 더 재밌었을것이다.


 합격했고, 출근은 한참뒤인 6개월 뒤였지만, 갑자기 부자가 되어버린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도쿄에 내려 그동안 사고 싶었던 포켓몬 인형들도 사고, 아끼고 아꼈던 식비들도 여유있게 쓰며 여행이 더 풍족해졌다. 


 내게 취업이란 그런것이었다. 약간은 올드한 문체지만, 뭐든 때가 있는데 그 때에 나만 못하고 있으면 초조해진다. 스무살에 대학을 못가거나, 다들 군입대를 할 때 못하고 있거나, 결국 옆에서는 시험합격을 하고 기뻐할 때 나는 그 시험을 접어야하거나, 취업까지도. 뭐든 응당 내 또래들이 해야할 시기에 나만 그것을 못하고 있자니 초조하고 조급해진다. 그래서 취업준비를 할 때 내 페이스를 만들지 못했던 것이 취준을 힘들게 하고 나를 위축시켰던것이라 생각까지 든다. 


 취준을 마치고 어느덧 4년이 흘렀다. 그 이후로 더 취업문은 좁아졌고, 특히나 문과 대학생들이 갈 곳은 더욱 사라졌다.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대부분은 안정적이고 좋은 대우의 직장에 들어가려고 할것이다. 나는 비록 HR업무를 하고 있지 않지만, 앞으로 더 각박해지고 치열해질 고용시장에서 대학생들, 취업준비생들의 심정을 보다 헤아려줄 수 있는 HR문화가 정착했으면 좋겠다. 그들이 인재라서도, 그들을 놓치면 큰일나서가 아니라 이미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친구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봤자 대부분 돌고 돌아 기업에게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혹여라도 이 글을 읽었던 취업준비생이 있다면, 조언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하고... 요즘 너무 경력위주의 채용이 늘다보니 신입 채용의 문이 좁아진것같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이때문에 시선때문에 되는 대로 취업하는 경우가 있는데, 결국 욕심을 부린만큼 가져간다고 생각한다. 처음 시작을 어느 회사에서 시작했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는 다음 직업이나 교류하는 커뮤니티를 결정짓는데 큰 몫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일단 나이가 급하니 되는대로 취업하기보다는 조금 더 버티고 버텨 기다려서 본인의 자산을 최대한 사줄수 있는 기업으로 가시길 바란다.


 그리고 글을 시작하게 만든 퇴사를 망설이는 수많은 직장인 분들에게는, 조금만 더 버티고 버텨보자는 권유를 하고 싶다. 누군들 부자되고, 셀럽되고, 잘나가고싶지 않겠는가. 다만, 뭔가 지금 타이밍이 아니다 싶을때는 좀 더 기다렸으면 한다. 회사에 남아있을 수 있다면 계속 일 할 수 있고, 계속 커리어에 무게를 싣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미래를 보장하진 않지만, 어떤 기회가 찾아왔을 때 베팅할 수 있는 자금과 인적네트워크, 자신감들은 현재의 직업에서 기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직장인은 언제나 힘들고, 취준생은 언제나 불안하지만, 힘들때는 존버정신으로 버티고 버텨 시장에서 이겨보자. 뭐 못이겨도 그게 진건 아니고 다른 길을 찾는거니까 그것 역시 존중한다. 분명 살다보면 기회는 온다. 오늘 하루도 버텨보자!

이전 13화 채용의 정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