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현장 접수로 초급 수영반 등록 성공
결혼식을 치른 후 별 일 없이 지냈다. 우두커니 앉아 있기만 한 건 아닌데 방학을 보낸 기분이다. 이전에 하던 것들을 잘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양가 방문, 집들이 등 한 차례 마치고 한숨 돌리자 연말이다. 늘 그랬듯 싱숭생숭하던 어느 날, 동료 J가 수영을 등록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어둑어둑한 새벽길을 걸어가 수영 강습을 들었던 장면이 뇌리를 스쳤다. 새해를 새해답게 맞이할 계기가 필요했던 것 같다. 정신을 차리니 새벽녘 담요를 두르고 지자체 체육센터 앞에 서 있었다. 일어날까 말까 고민하다 동료 J의 출발 소식에 부랴부랴 나온 것이다. 도대체 수영을 등록하는데 왜 새벽같이 나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따라나선 남편도 함께였다.
한 시간 남짓 기다리다 받은 번호표는 47번이었다. 겨우 안에 들어가 신청서를 쓰고 중간중간 수영 초급반에 '마감' 표기가 붙지 않을까 보드를 보며 기다렸다. 마침내 차례가 되어 수영만 쓰여있는 신청서를 내밀었고, 정말 수영 하나만 신청하는 게 맞냐고 재차 묻는 직원의 물음에 수영만 들으면 된다고 말했다. 신청서를 스캔하고 하나하나 입력하는 동안에도 불안했다. 결제까지 하고 나서야 졸음이 밀려왔다. 집에 다시 가 잠깐 잠들었다가 출근했다. 이른 퇴근과 동시에 사업부 회식이 있어 마지막까지 정신을 부여잡는 수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 피곤하다고 울부짖던 동료 J와 나는 식당에 들어가 자리에 앉자마자 소맥을 말았다. 너무 피곤해서 못 먹겠다던 사람 둘 어디 갔냐고..
2023년 마지막 주는 혼인 신고를 한 뒤 기념하는 겨울 바다 여행을 했다. 바로 이어 우리 부모님 댁에 가 놀다가 새해를 맞이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이전에 들었던 수영 강습을 되짚어가며 짐을 쌌다. 가지고 있던 실내용 수영복이 몸에 맞을지가 관건이었지만 당장 다음 날이기에 방안은 없었다. 저녁 10시가 넘은 시각, 애써 잠들었다. 새벽녘 혼자 지하철을 타고 내려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는지 시뮬레이션을 몇 번이나 돌리다 잠들었다. 새벽 5시가 넘어 울리는 알람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일어났다. 입을 옷을 미리 준비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하며 스스로 기특해했다. 몸은 따라주지 않아 마음만 바빴는데 다 준비한 덕에 늦지 않고 지하철에 탔다.
차가운 바람이 반가웠다. 체육센터를 들어서자 1월 첫 수강생을 맞이하는 직원들이 여럿 있었다. 그들은 바쁜 눈동자를 한 나보다 반 박자 앞서 동선을 안내해 주었다. 탈의실까지 무사히 입성해 샤워하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다행히 수영복은 잘 맞았다. 수영장에 가 유아풀 한쪽에 앉아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기다리는데 시간이 되자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모두 일어나 준비운동을 했다. 끝나자마자 부산스러운 강사 선생님들의 움직임에 눈동자만 도록도록 굴리다 출석을 불리고(?) 졸졸 따라 초급 레인으로 향했다.
손에 쥐어진 킥판, 몸에 열을 내기 위한 시작으로 발차기 두 바퀴라는 미션이 주어졌다. 특별한 기술은 없지만 (할 줄 아는 영법이 하나도 없다는 뜻) 물에 뜨는 거랑 발차기는 자신 있었다. 온 힘을 다해 물살을 가르며 쭉쭉 나아갔다. 수업을 들은 지 10분도 채 되지 않은 그때부터 기운이 다 빠졌다. 이어 수강생 개개인의 실력을 확인하기 위한 미션- 발차기, 음-파! 호흡, 자유형, 배영-이 쏟아졌다. 킥판 없이 한 자유형과 배영에서 물을 꽤 많이 먹어 배부르고 피곤한 사람이 된 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바로 출근하기 위해서였지만 물에 뜨는 거 말고는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던 나는 다음 수업에서 조금 더 힘내기로 했다. 왜냐하면 강사 선생님이 그랬다. 초급이라고 해서 부끄러워하지 말고 부족한 부분을 적극적으로 보여야 피드백을 받아 혼자서 연습이라도 할 수 있다고. 그렇게 나는 두 번째 수업을 더욱 기대했다. 힘차게 엉망으로 할 나를 상상하며. 실력도 체력도 없지만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기다려지는 나의 수영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