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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 Jun 25. 2023

그동안의 변화

근엄, 단어 시험 

지지난 주, 한없이 시끄러운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좌절감으로 힘들었는데 주말에 불현듯 힌트를 얻었다. 이야기하자면 좀 길지만, 이야기해보고 싶다. 


나는 원불교 교당에 다니고 있다. 그리고 호기심이 많고 사람들 앞에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게 거리낌이 없는 편이라 교무님에게 질문을 많이 한다. 내가 질문하면 사람들에게도 공부거리가 생기기 때문에 교무님도 좋아하고 마음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질문을 많이 한다는 것 자체가 내가 교리를 많이 궁리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나만의 생각을 남들에게 이야기하면서 궁금증을 같이 해결하는 걸 좋아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교무님이 조금 불편하고 불합리한 게 있더라도 참는 게 좋다는 취지의 설교를 하셨다. 못질 소리가 들려도 참으라고. 그래서 나는 조금 의문이 들어서 내 의견을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가끔 꼴보기 싫을 때도 있죠? 그럴 때 그냥 참고 넘어가면 더 마음이 편하지 않아요?라고 하셔서 나는 아니요, 저는 제대로 응징이 이루어질 때가 더 좋아요, 라고 했다. 그랬더니 교도님들이 일제히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물론 박장대소를 하면서 속시원해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몇 명이 말을 쉬지 않고 계속 '이해해야지, 참고 넘겨야지, 응징을 해서는 안 돼.....' 라고 해서 처음에는 즐기는 분위기로 시작한 대화가 곧 '이게 뭐지?' 싶게 됐다. 그래서 응징이라고 하면 너무 무겁지만 잘못된 일이 있을 때는 대화를 통해 상황을 개선할 때 더 좋다는 뜻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끼어들 틈이 없어서 말을 못했다. 


아... 그렇게 어리둥절하게 법회가 끝나고 집에 와서 며칠 동안 조금 힘들었다. 물론 내가 과도한 단어를 사용하긴 했지만 이 사람들 내 꼴을 보기 싫어하는구나... 싶었다. 그 이후 두 번 정도 바빠서 교당에 빠지고 1박2일로 가는 훈련도 빠졌다. 정말 일이 겹치고 도저히 시간이 안 돼서 못 간 게 맞긴 하지만, 그래도 바빠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한마디로 좀 삐졌었다. 그리고 교당에 갈 때는 묻지 않은 말은 절대 하지 않았고 묻는 말도 다 단답형으로만 답했다. 또 교무님이 나를 떠보는 질문을 하고 '남편을 꽃처럼 보세요, 알았죠, ㅇㅇ씨?'라는 말까지 해서 너무 답답하고 짜증났지만 그냥 가만히 있다가 왔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났는데 지난주에 교당에 갔더니 나를 그렇게 공격해대던 분이 먼저 인사하고 다른 교도들도 엄청 친절하게 나에게 인사를 했다. 그래서 또 어리둥절하다가 문득, 내가 말을 안 하니까, 아니 실없는 소리를 실실 하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나를 우습게 보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건 태도 문제다. 나는 원래 그렇게 사근사근한 스타일도 아니고 친절한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호기심이 많고 쾌활하다. 그래서 남들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고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기 위해 내 이야기도 많이 하는 편이고 내 생각을 나누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서 내게 일어난 일 내가 겪은 일도 기회가 될 때마다 이야기하곤 했는데,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게 사실 '안물안궁'일 때도 많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굳이 해서 사람들을 지루하게 만들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원리가 학원  아이들에게도 적용됐다. 


그러니까... 내가 먼저 들떠서 아이들에게 말 시키고 장난 걸고 아이들을 기분좋게 만들어 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분위기를 방방 띄워놓으니까 아이들도 흥분하고 계속 떠들게 되고. 내가 먼저 너무 재미있어서 그러긴 했지만 아이들이 나를 좋아해주길 바랐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 태도를 바꾸기로 했다. 내가 몇 주 동안 교당에서 어떤 마음으로 앉아 있었던가 굳이 상기하면서 마음을 훈련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학원에 도착해서 밝게 인사한 후 아이들에게 쓸데없는 말을 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들이 공부할 시간이 되었을 때는 공부 이외의 말을 지나치게 많이 한다 싶을 때 바로 제지했다. 그리고 표정에서 약간 웃음끼를 뺐다. 그랬더니 정말 마법처럼 수업시간이 훨씬 조용해졌다. 그러다 어떤 아이가 '선생님 오늘 화 났어요?'라고 물어봤다. 나는 그때도 흔들리지 않고 화 안 났어, 라고 담담하게 답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 승리의 기쁨을 느끼고 와서 이걸 가족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나... 하다가 '근엄하게 수업을 했더니 아이들이 조용하더라'라고 이야기하자 남편과 아이들이 잘했다고 했다. 아... 이런 발견이라니. 

근엄한 표정 기법은 다음날도 잘 통했고 일주일 내내 잘 통했다. 그리고 떠드는 아이들, 핸드폰 울리는 아이들에게 약속한 벌을 줄 때도 벌을 유예하거나 대충 봐주지 않고 바로바로 벌을 내렸더니 그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그랬다... 나는 너무 물러터져 있었다. 이 터진 내장을 주워담아 단단하게 봉하고 척추를 곧게 세워야 하는 거였다. 

나는 아이들이 이렇게 선생님에게 집중하고 있는줄 몰랐다. 내가 아무리 작은 소리로 이야기해도 뭔가 의외의 단어가 나오면 아이들은 즉각 반응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가 호기심을 펼쳐놓을 때마다 분위기가 부풀었던 거다. 

이렇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싶을 정도의 근엄한 표정이 바로 '권위'라는 것 아닐까 싶다. 정말 평생 권위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 일이 없고 권위의 쓸모가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는데 학원에서만큼은 큰 쓸모가 있었다. 

암튼 그날 이후로는 아이들이 몰려도 전처럼 감당 안 될 정도로 떠드는 일은 없어졌다. 

하지만 권위를 지키자니 조금 재미가 없다 싶기도 하고 내 기분이 정말 나쁜가 의문이 든다는 문제가 있다. 그래도 이 방법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절대 없다. 아이들이랑 노는 시간이 아니므로 나도 내 일에 충실해야 하고 아이들도 좀 더 진지하게 공부에 임하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만은 틀림없으므로. 


그러다 단어 시험 보는 날이 다가왔다. 한달에 한번 단어 시험을 보면 아이들은 엄청나게 긴장한다. 다행히 평균 점수가 계속 올라서 이번에도 백점 친구가 두 명 나왔고 잘본 아이들의 사기도 올라가고 못 본 아이들도 이를 갈았다. 시험 다 보고 집에 오는데 원장님이 카톡으로 간식 쿠폰을 보내주셨다. 단어 시험 치르느라 수고했다고. 

이렇게 또 고비가 지나가고 나는 한 개를 배웠다. 이 배움이 지나가면 또 다시 괴로운 일이 다가오겠지만, 어쨌든 한 계단 올라가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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