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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윈이야기 Jun 07. 2021

다윈, 힐링을 진화시키다.

내 삶의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

아주 멀리까지_ 지구 전체를 내 구역처럼 마음껏 쏘다니고 싶었다. 

바다를 내 땅처럼 거니는 선장이 돼 보기도 하고, 

이 행성으로, 저 별로- 그저 소리도 시간도 중력도 멈춘 채 둥둥 부유하는 우주 비행도 하고팠다.  

유명한 배우가 되어 매 번 다른 얼굴로 다른 삶을 사는 희열도 맛보고, 

밝아오는 새벽까지 멈추지 않는 춤이 되고도 싶었으며_ 

세상에 꼭 필요한 기업을 운영하는 기업가가 되어 돈과 명예를 다 가져야지 싶었다. 


나는 되고픈 것이 참 많았다. 




감수성 충만했던 이십 대 초반, 천재들은 다들 서른을 못 넘긴다는데 나도 그때까지 살고 싶지 않다고_ 그전에 죽어버리고 말 거라 선언했다. 하지만 꾸역꾸역 스물다섯까지 숨을 붙이고 있으니, 나는 역시 천재가 아닌 건가 싶어 불안하고 초초해하며- 상상도 가지 않는 나의 '서른 살'을 끔찍해했다.        


카운트 다운은 시작됐다. 

서른까지 3년, 2년, 끔찍했던 아홉수를 지나_ 드디어 인생 서른에 도착했다. 

박명하여 전설로 남을 인간이 못 될 바에야, 나의 삼십 대는 이렇겠지 하는 나름의 희망도 가졌더랬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친구들과 변함없이 변해가는 것들에 대해 지껄이며 한 주의 위안을 얻는 일상. 

결혼까지는 모르겠지만 연인이 있거나, 적어도 사랑은 하며 로맨틱한 세포를 유지하고_ 

경제적으로는 산뜻하게 독립해서 나만의 공간에서 온전한 휴식을 누리는 삶!  

  

웬걸. 


역시 삶은 예측할 수 없다. 현실은 어디 '서러운 서른'일 뿐이겠는가. 아직도 '설익은 서른 살'이었다. 

 마음만은 그대로 새벽 감성에 잠 못 드는 중2병 사춘기인데, 경제적인 상황은 오늘과 내일이 같을 비극이었으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커리어를 쌓아나가기는커녕_ 모든 일이 내 옷이 아닌 듯했다. 비틀대던 연애는 이내 심드렁해지고, 그저 '다 귀찮으니 나가주세요.' 하고픈 불안정한 심보였다.  

서른이 되면 20대보다는 안정적이라고, 또 한가득 내려놓게 된다고들 했는데- 그런 말 한 인간 누구야!  

직업이 비행사도 아닐진대, 두 발을 땅에 붙이고 살지를 못하는- 일상 비행가가 되었다.        


세상은 돌고 나는 멈췄으며, 마음은 도는데 용기는 멈췄다. 

무엇이든 하고프고 되고파 목말랐던 나의 생기는 어디에 있는가. 


그렇게 공중을 떠도는 내 삼십 대. 

누구는 달리고, 누구는 날았는데_ 나는 아직도 타박, 타박, 타박.. 타박네처럼 걷는다. 


함께 걷는 이 귀엽고도 복슬한 친구가 있어_ 앞으로의 길이 두렵지 않다.  

한동안은 '힐링'과 '소확행', '괜찮아', '잘 해왔잖아' 등등... 

트렌드가 되어버린 미디어의 위안 속에 살았다. 


봐, 나만 힘든 게 아니잖아. 

레이 크록은 53세에 맥도널드를 시작했고, 윤여정 배우는 74세에 아카데미를 탔다구! 

이 책도, 저 영상에서도 다들 괜찮다잖아. 애쓰지 말라잖아! 

 

하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무엇보다, 내가 바뀌지 않았으므로. 

누군가의 명언 한 마디에 위로받으며 순간을 기대어 보고, 치맥과 넷플릭스 소확행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친구와 한바탕 한탄으로 일주일을 털어내는 일. 이 조차도 익숙해져 더 큰 위안을 얻겠다며 즉흥적인 쇼핑이나 일탈성 여행을 다니기도 했지만_ 분명히 온갖 것들을 다 했음에도 공허한 마음은 부르지 않다. 가난한 마음은 항상 꼬르륵댄다. 



나는 니체를 좋아한다. 

말을 채찍질을 하는 마부에게 달려가, '멈추라'는 절규와 함께 말을 부둥켜안고 울부짖던 그의 연민과 감수성도, 그가 말하는 '위버멘쉬(Übermensch)'라는 뜨거운 그 초월적 존재도 좋았다. 그의 말처럼 '중력을 거스르고 춤을 추는' 사람이 되고 싶은 내게_ 무력하고도 빡빡한 나의 삼십 대에 이토록 나를 들어 올리는 충고가 또 있을까 싶다.  


그토록 바랐던 위안은_ 위로의 말속에서도, 술 한 잔에서도, 값비싼 가방에서도 효과가 없었다. 

'위로'와 '힐링'은 나에게 그저 중독적인 위약이었다.

진실로, 나의 의지와 전심으로 내가 괜찮다고 나를 받아들여야 한다. 

휘발되는 위로의 말이나, 마취적인 힐링의 상술을 거부하고_  

웅크려 잠자고 있는 나를 일으키자. 

있는 힘 껏 안아주고, 따뜻한 밥 한 끼 먹여- 일단 나가보자고 손 잡아 주자.  

          

한 때 우리 자신이었던 아이는 일생동안 우리 내면에 살고 있다 - 프로이트 / 사진 : 핀터레스트 



남은 삼십 대의 내 모습과 앞으로 펼쳐질 마흔을 생각해본다. 

삶이 내 계획대로 되지 않을지라도, 이왕이면 다시_ 가장 폼나는 꿈을 꾸어 본다.

나는 가정을 꾸렸고,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다윈'이 있다. 아직 구체적 계획은 없지만 다윈의 강아지 동생, 혹은 사람 동생이 생길 수도 있겠지. 20대 시절, 무엇이든 되고 싶었던 호기로운 청춘을 넘어- 남은 30대의 나는 보다 우아한 어른이 되기를 바란다. 니체의 '위버멘쉬' 정신까지 운운하지 않더라도_ 이제는 눈 뜨면 밥을 챙기고 돌보아야 할 내 강아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앞으로는 '일반적', '평균', '타인의 시선' 등등_ 내 삶을 짓누르는 중력에 맞서 춤을 추고 산책하는 인간이 되어, 내 생의 가치를 창조해내 보리라.  


다윈과 함께 달리면 잃어버렸던 어린애가 되어 버린다. 

깔깔대고 웃으며_ 세상 유치하게 '나 잡아 봐라'나 하고 있다. 

조금만 마음을 써도 너무나 쉽게 웃어주는 이런 존재가 있어_ 내 안의 어린 애도 함께 웃는다. 

이토록 나를 치유하고 성장시키는 존재가 또 있을까. 


생각해본다. 내가 오늘 내 강아지와 몇 번의 눈 맞춤을 했는지, 또 몇 번을 함께 웃었는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아프고 외롭고 흔들린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힘만으로 무엇인가에 온 노력을 쏟아야 한다'는 니체의 말대로_ 다윈을 위해 온 마음을 쏟으니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삶은 이렇게 단순한 동기를 가짐으로써 시작된다.   

'아모르 파티(Love of fate)', 다윈을 사랑하니,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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