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갈색머리 Oct 08. 2017

삶을 온전히 산다는 것

그리고 나라는 사람에 대해 배운다는 것

가을이 왔다.

살갗을 찌르듯 내리쬐던 한 낮 태양의 기세는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 바삭한 날씨가 계속된다. 이제는 아침에 눈을 떠도 밖이 깜깜하고 여덟 시가 되기도 전에 하늘이 주황색으로, 분홍색으로, 또 라벤더색으로 물이 든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 샤워를 마치고 스테레오 시스템에 조용한 음악을 타이머 맞춰 틀어두고 침대에 들어가 전에 읽다 만 책을 집어 들었다. 살짝 접힌 귀퉁이를 찾아 책을 펼치고 읽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읽었던 내용과 이어져서 소설 속 주인공이 과거의 상처를 고백하며 오열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 고백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얼굴이 그려졌다. 그들을 둘러싼 눅진하고 가라앉은 공기가 느껴졌다. 위로를 건네고 싶지만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이 상상되었다. 나도 머리가 띵하고 숨이 목에 걸렸다. 그런데 이상하지,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문득, 내가 마지막으로 울어본 게 언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너에게 제발 내 집에서 나가 달라고 얘기하며 울었던 것 같다. 이제 그만 힘들게 하라고 얘기하며 울었다. 왜 우냐며 내 옆으로 와 앉으려던 너를, 제발 그만하고 나가 달라고 손바닥으로 밀어내며 울었다. 네가 나간 집에서 정말 잠시 동안, 정말 정말 잠시 동안, 더 울다가 나는 눈물을 닦고 일어났다. 닫힌 현관문의 잠금장치를 걸어 잠그고,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를 하고 침대에 들어가 눈을 감고 누웠다. 크게 심호흡을 했다. 눈물은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그래, 그게 마지막이었다. 작년 늦가을 어느 저녁, 이미 한국에서는 아침저녁으로 코트를 여미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이 보였겠지만, 내가 사는 이곳은 아직 반팔에 반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더 많았던 계절, 나는 무릎까지 오는 민소매 원피스에 청 재킷을 걸치고 너를 만나러 나갔다. 조금은 쓸쓸한 냄새가 거리에 맴돌고 내 머릿속은 온갖 생각들로 복잡하게 꼬여버려 마음이 울렁이는 채로 너와 밥을 먹고, 같이 내 집으로 돌아와 와인을 마셨다. 붉고 알싸한 향을 한잔, 그리고 두 잔 비웠을 때, 내가 너에게 이제 좀 편해 보인다고, 준비가 된 거냐고, 물었고, 너는 망설임 하나 없이, 응, 이제 괜찮은 것 같다고 대답했다. 아무 감정이 없어 보이는 너의 얼굴이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감정이 담기지 않은 너의 눈동자가 나를 밀쳐 무너뜨렸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숨을 죽였다. 끝까지 너에게 내 화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런 쓰레기 같은 자식' 욕지거리가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화를 낼 수 없었다. 결코 상식적이지 않은 너의 행동에 분노를 하고 화를 내며 지독히도 이기적인 너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없었다. 너에게 이리저리 휘둘리고 너의 손 안에서 놀아났어도, 나는, 결코, 너에게 질 수 없었다. 네가 떠나고 나서 나는 금방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오늘까지, 한차례도 울지 않았다.




올해 초에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책을 추천받아 읽게 되었다. 책에서 모리가, 어떠한 감정으로부터 초연하고 나 자신을 분리시키려면 그 감정에 끝까지 잠식되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약하게 만드는 감정도, 피하고 외면해서는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모든 감정을, 행복하고 사랑하고 고통스럽고 두려운 모든 감정을, 끝까지 느끼고 경험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책을 읽으며 모리의 말에 정말 깊이 공감했다.


침대에 기대어 앉아 생각을 따라가다가 갑자기 두려워졌다.

지난 1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나에게는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고 신나고 평화롭고 평온한 시간밖에 없었다. 화가 나거나 고통스럽거나 슬프거나 힘들었던 기억은 나지 않았다. 내가 지난 일 년간 제대로 살았던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저 화가 나거나 고통스럽거나 슬프거나 힘들만한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그런 감정들을 무시하고 외면하고 느끼려고 하지 않았던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내가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을 느끼지 못하게 되어 버린 건 아닌지. 혹시 어쩌면, 내 감정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연인 관계 밖에서는 내가 내 감정을 끝까지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정말 많은 질문들이 생겼고 나는 두려워졌다. 무서웠다. 지난 일 년간 너무나도 평화롭고 행복하게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지난 일 년간 내 인생이 반쪽짜리 였던 것이 아니었을까.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눈시울이 붉어지는 거 말고, 그냥 코 끝이 찡한 거 말고, 손 끝이 떨리고 몸을 못 가눌 정도로 큰 감정을 느끼고 싶어 졌다. 어떻게 해야 내가 울 수 있는지 고민했다. 인터넷 검색창에 '눈물 나는 영화'를 검색하고 친구들과 울고 싶을 때 어떻게 하면 울 수 있을지 상담했다.



최근에 새로 사귄 친구가 있다. 처음 단 둘이 맥주를 마시면서 인가, 내가 지난 일 년간 울지 못했다고, 내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닌지 두렵다고 얘기했다. 그 친구는 내 말을 듣고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항상 인간의 세상이 엎어진 반구 같고 인간의 삶이 그 반구의 정중앙, 꼭대기에 작은 구슬을 올려두는 일이라고 생각했어. 구슬을 정 중앙에 맞춰서 올려놓지 못하거나 작은 바람이 불면 구슬은 반구의 어느 방향으로든 굴러가기 시작하겠지. 처음에는 완만한 경사 때문에 천천히 굴러가서 내가 손으로 구슬을 잡아 제자리에 돌려놓기 쉽겠지만, 경사가 깊어지고 구슬에 가속도가 붙으면 내가 떨어지는 구슬을 손으로 잡아채기 힘든 거야. 구슬이 어느 방향으로 떨어지든, 천천히 떨어질 때 잡아서 제자리에 돌려놓으면 편하겠지만, 어느 순간 한눈팔다가 구슬이 떨어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지면 잡아서 제자리에 돌려놓기가 너무너무 힘든 거지. 나는 네가 열심히 구슬을 제자리에 돌려놓은 게 잘못되었거나 걱정할 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해. 평화로운 삶이 단조롭고 지루할 수 있지만, 너에게는 그렇게 감정과 에너지를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던 거 아닐까." 내가 잘 못 된 게 아니라고, 그렇게 초조해하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는 그 친구를 잠시간 멍하게 쳐다봤던 것 같다.



나는 모리의 말에도, 그 친구의 말에도 정말 깊이 공감했고 동의했다. 내가 내 인생을 꾸리면서 한 발짝 한 발짝 모든 걸음을 결정하고 그 결과에 책임질 때, 그 어디에도 정해진 답은 없고, 그 어디에도 완벽한 행복이나 완벽한 불행은 없다. 울고 싶다는 고민을 한 달 넘게 마음 한편에 가지고 있다가, 최근 나는 드디어 눈물을 흘렸다. 슬퍼서 운 것도 아니었고 고통스러워서 운 것도 아니었다.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 나에게 사랑을 주는 많은 마음들에 행복했다. 내 편을 들어주고 위로를 건네주고 등을 토닥여 주는 마음들에 행복했다. 한 방울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더니 코가 빨개지고 머리가 띵하고 진이 빠지도록 울었다. 울고 싶었는데 울었으니 이제 된 건가. 슬퍼서 울고 싶다고 바라지는 않았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여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