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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치아 lucia Nov 25. 2023

루치아 Lucia

엄마는 결혼 후, 둘째 언니까지 낳으신 뒤, 천주교 세례를 받으셨다. 엄마가 어떻게 신앙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엄마생전에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었던 기억이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장례 때, 이모부가 이야기해 주신 거 같기도 한데, 역시나 자세히 기억나진 않는다. 대략적으로, 엄마 친정분들 중 외삼촌 이모들 누군가가 천주교에 입교하시게 되면서 차례로 엄마와 형제자매들, 그의 자식들도 대부분 천주교 세례를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아버지는 엄마의 신앙생활을 지지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아빠는 주말에도 대부분 일을 하셨고, 첫째 언니와 둘째 언니가 크고 자랐던 70년대 후반~80년대 중반에는 건설사 직원으로 해외에 파견근무를 나가시기도 했다. 아마 엄마는 그 짬을 이용해 신앙생활을 하시고, 우리 4남매를 모두 세례 받게 하시지 않았을까 추정해 본다. 엄마 본인과 첫째 둘째 언니가 함께 세례 받았고, 후에 남동생이 태어난 뒤 나와 남동생이 함께 세례를 받으며, 엄마와 우리 4남매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     


나는 '루치아 Lucia' 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이탈리아 나폴리의 수호성인, 오래된 민요로 유명한 산타루치아의 그 ‘루치아’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내가 갓난아기였을 때 성당에 데리고 갔더니, 신부님이 날 보시고는 예뻐하시며, 세례는 받았냐 물으셨단다. 아직 세례를 못 받았다 답하니, 그럼 이 아이는 ‘루치아’라는 세례명이 좋겠다고 하셨다고 한다. 무슨 의미였을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그 신부님 덕에 나는 ‘루치아’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하신 뒤, 엄마와 살게 되면서, 엄마는 일찌감치 초등학교 때부터 나를 주일학교에 보내셨다. 그 시절엔, 딱히 주말에 학원을 다니지도 않았고, 주말에도 가게를 하시는 엄마에게 나와 언니들이 성당에 가는 건, 적당한 돌봄 나눔이 되었을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대단한 신앙심을 가지길 바라는 것보다는, 그래도 성당에서 나쁜 것 가르칠 일 없고, 친구들과도 어울리며 시간 보내기 좋은 곳이었을 테니 말이다. 나는 초등부에선 전례부 활동을 했고, 중고등부에 가서는 성가대 활동도 했다. 어렸을 적엔 그저 놀러 가는 곳이었는데, 점점 내 맘속엔 신앙심이 자라고 있었고, 자연스레 나는 신앙인, 신자信者가 되어가고 있었다. 태어나 보니 내가 대한민국 사람이고, 나의 엄마 아빠가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나는 천주교인이 되었다.     


대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어가며, 종교나 신앙에 대해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인간에겐 왜 종교가 필요할까. 예수는 누구이고, 가톨릭은 무엇인가, 개신교와는 어찌 다른가, 가톨릭은 대체 세계역사에서 어떤 만행들을 저질렀고, 한국에는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나. 기타 등등 뭐 이것저것들에 대해 제법 굵어진 머리로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었다. 최첨단문명의 시대가 되면서 달나라에 사람이 가고, 복제양 돌리를 만들어내고, 불임/난임 부부들은 인공수정을 해 임신이 가능해지는 이런 시대에도 종교는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나, 죽어서 천국을 가던 지옥을 가던 죽었는데 대체 그것이 무슨 의미인가. 뭐 그런저런 생각들, 어떤 답도 낼 수 없는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 생각들의 끝에는 늘, 언제나, 나는 루치아였다. 그 알 수 없는, 대답할 수 없는 물음들 끝에, 나는 늘 신앙인이었다. 늦은 밤 귀갓길에, 바람에 날리는 비닐봉지에도 화들짝 놀라던 겁 많은 나는, 어느새 주의기도 성모송을 주절거리며 발걸음을 재촉해 집에 가고 있었고, 몸이 아파 끙끙대며 잘 때, 취업걱정에 잠 못 이룰 때, 연애가 힘들어 징징대고 싶을 때면, 늘 나의 신을 찾아 외치고 있었다. 날 좀 봐달라고, 내 말 좀 들어달라고. 최첨단문명이 발달해 사람들은 과학문명을 등에 업고 생명을 복제해 내고, 난자와 정자를 인위적으로 수정할 수 있으며, 우주로 하늘로 거침없이 나아갈 수 있는 시대가 왔지만, 내 안의 두려움과 나약한 이기심 보잘것없는 욕망들은 초월적인 누군가에게 의지해야만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이다.     


엄마의 암투병이 시작되고, 끝내 백혈병으로 숨쉬기를 멈추었을 때, 그리고 장례의 과정을 치르며 나는, 성인이 되어 잠시 품었던 위의 생각들이 참으로 보잘것없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엄마를 보낸 뒤 아무런 거리낌 없이 떠오르는, 엄마에게로 가고 싶어지는 생각들 속에서, 나는 신앙인으로서 살아냈고 현생에 머물러있다. 나에게 종교가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엄마가 나에게 남겨 준 가장 큰 유산이 신앙이었음을 나는 심장깊이 절감切感한다.     


나는 오늘도 묵주알을 굴리며 기도한다. 그 기도가 과연 하늘에 닿을지, 신이 과연 내 말을 듣고 있을지, 세상에 알 수 없는, 답 없는 물음들과 생각들 속에서 과연 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은 없지만, 나는 오늘도 기도하고 바라고 원한다. 바라고 원함으로써 나의 마음을 다잡고, 다스린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생각하고, 나의 과오를 성찰하고, 내일 아침 눈을 떠 무엇을 할지 고민한다. 기도는 나의 마음을 갈고닦는 것이며, 그로 인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향한 간절한 마음, 진실한 마음이 기도인 것 같다. 그 마음들이 나를 이끌고, 그 마음들이 모이고 모여 종교를 이룬다. 이것이 내가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루치아로 살면서 깨달은 종교와 기도의 전부이다.


가까운 사람을 잃어보면 뭐든 믿을 수 있게 돼요. 영혼, 천국, 환생 같은 거 다.

이제 아픈 몸에서 벗어났으니까 가고 싶었던 데 훨훨 날아다니겠지.

하늘나라에선 먹고 싶었던 거 다 먹으면서 행복하게 지내겠지.

내가 너무 보고 싶어 하면 바람이 돼서 한 번쯤 나를 스쳐가 주겠지.

- 드라마 ‘너는 나의 봄’ 중에서.   

  

뭐든 믿고 싶어지는 그 마음, 의지하고 싶어지는 간절함. 이것이 기도가 되고, 그래서 사람들은 종교를 갖는다. 그리하여 나는, 태어날 때부터 루치아였고, 루치아로 존재하며, 루치아로 생을 마무리하고 싶다.       

86년 8월 2일 동생과 나의 세례식 날


우리도 당신의 힘으로 다시 일으키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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