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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치아 lucia Feb 07. 2024

미니멀 라이프 Minimal Life

나는 물욕物慾=물건에 대한 욕심이 그다지 큰 것 같지는 않다. 물론 20대 때는 멋 내느라 뭘 많이 샀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꼬박꼬박 도착하는 택배상자를 보고 엄마는 혀를 끌끌 차셨고, 저래서 돈은 언제 모으냐고 걱정하셨다. 요즘 흔히 말하는 ‘시발비용’이라는 단어처럼, 스트레스를 쇼핑으로 풀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넉넉지 않은 내 살림을 살게 되고, 월세, 전세를 거치며 내집마련을 위해 근검절약하게 되면서 물욕이 조금씩 줄어든 것 같다.     


2년 간격으로 엄마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나니, 미니멀라이프 물건을 적게 소유하는 삶, 필요한 것만 두려 애쓰는 마음 등등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 것 같다. 인간이 지구에서 소멸하고 난 뒤, 도대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쓰레기로 버려지는지 절감했다.     


엄마는 물건을 깨끗이 쓰시는 편이었고, 아프시기 직전에 이사를 한번 했던 터라, 살림살이가 그다지 많지는 않았음에도, 엄마의 집을 정리하면서 매우 많은 양의 쓰레기를 배출하게 됐다. 한참 뜨던 당*마켓을 적절히 이용했고, 엄마물건을 둘째 언니와 내가 많이 가져왔음에도, 버릴 것이 많았다. 아버지 집의 살림은 거의 통째로, 유품정리업체를 통해 쓰레기로 버려졌다. 왠지 모를 죄책감, 저 쓰레기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한숨이 절로 나왔다.     


미니멀 라이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무소유’까진 아니어도, 지금 내가 가진 물건들을 되돌아보기, 최대 3년 이상 쓰지 않은 것들은 정리하기, 물건을 살 때는 기존 것을 버린 뒤 사고, 꼭 필요한 지 오래 생각해 본 후 구매하기, 새물건은 깨끗이 잘 관리하여 오래 사용하기 등등 다짐하고 실천해 보려 애쓰게 되었다.


우리 집에 있던 전기압력밥솥은 남편이 대학시절 자취방에서 쓰던 매우 오래된 밥솥이다. 적어도 15년 이상 된 밥솥인데, 도무지 망가지지 않는다. 압력패킹을 한 번쯤 교체했던 것 같고, 내솥은 한 번도 교체하지 않았다. 지금은 단종된 모델이라 구할 수도 없는 내솥인데, 내솥을 이렇게 오래 쓰면 건강에 매우 좋지 않다는 기사를 보고 이제 그만 폐기하고 새 밥솥을 사야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전기압력밥솥은 주방에서 큰 공간을 차지하고, 가격도 비싸고, 사용빈도는 낮고, 나의 살림살이 패턴상 꼭 필요한 가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 고민 중에 냄비밥을 우연히 블로그에서 보게 되었고, ‘이거구나’ 싶었다. 옛날옛날에는 가마솥에 밥을 했고, 엄마들은 스텐압력밥솥을 쓰시기도 했으며, 캠핑 가면 냄비밥을 해 먹었었지. 블로그에서 본 대로 냄비밥을 해보았다. 물조절이 어려웠지만 몇 번해보니 먹을만했다. 블로그에는 르*루제 주물 냄비 같은 고가의 냄비를 사용하던데, 비싸고 무거운 주물냄비는 차차 도전해 보고, 나는 그냥 마트에서 코팅 잘 된 냄비를 사서 밥전용 냄비로 사용하고 있다. 이제 물조절은 눈대중으로도 충분하고, 잡곡밥도 맛있게 잘한다.    

  

물 끓일 때 사용하던 유리전기포트는 석회물때가 자주 껴 일주일에 한 번씩은 식초물 넣고 끓여 줘야 한다. 근데 어느 날인가, 석회물때가 갑자기 많이 끼더니 식초물을 넣어봐도, 구연산을 넣어봐도, 하다 하다 콜라를 넣고 끓여봐도 석회물때가 사라지지 않았다. 아예 망가져버렸나, 산지 몇 년 안 되었는데, 아쉽기도 하고 아깝기도 했다. 새 전기포트를 검색해 보다 문득 생각이 났다. 아니 근데 물을 냄비에 끓이면 안 되나. 그렇지. 그냥 가스불로 냄비에 물을 끓이면 되지. 미지근한 물은 전자레인지에 1분 데우면 적당한 온도가 된다. 차를 마시려면 1분 30초 정도 돌리면 충분하다. 가스레인지와 전자레인지를 적절히 이용하면 전기포트도 굳이 팔요하지 않다. 전혀 불편함이 없다.     


굿윌스토어, 아름다운가게 같은 중고물품장터가 있다. 집안에 있는 쓸만한 물건들을 모아 기부신청을 하면 집으로 수거하러 와주시고, 물품의 가격을 매겨 기부금영수증도 발행해 주신다. 며칠 동안 살림살이들을 한참 뒤적거리며 50리터 큰 비닐봉지 2개를 채웠다. 홈쇼핑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도마세트 칼세트, 선물 받은 발매트, 한번 쓰고 쳐 박아둔 운동소도구, 드라마에 나와 유명해진 인형, 이제는 쓰지 않는 털모자 머플러 등등, 깨끗한 물건, 비닐도 뜯지 않은 새 물건들을 모아 모아서 보냈다. 부디 필요한 분께 잘 쓰이길 바란다.     


미니멀 라이프를 다짐하는 나의 목표는 ‘올해는 옷 사지 않기’이다. 속옷도 넉넉하고 양말도 넉넉하다. 외투도 충분하고 신발도 신발장에 꽉 차있다. 옷은 없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예뻐서 사고, 봄이니까 사고 여름이니까 사고, 계절마다 별 이유 없이 홈쇼핑채널을 돌리다 혹 해서 사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직장생활을 하지도 않고, 어쩌다 외출할 때 입을 옷은 유행 타지 않는 단정한 옷들이면 충분하다. 내 몸의 사이즈가 바뀌지 않는 이상, 옷을 구매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작심삼일이 될지, 연말에 한해를 되돌아보며 얼마나 반성하게 될지는 모르나, 일단 다짐하고 실천해 보기로 한다.      


여백은 굳이 채우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공간의 여유가 생기면, 마음도 여유로워지고 생각도 여유로워진다. ‘여백의 미’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꽉꽉 채워 넣는다고 마음도 함께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충분히 경험으로 알고 있다. 나의 목표와 다짐으로 올해를 채워 나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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