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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치아 lucia May 10. 2024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최근 몇 년 전부터 타임슬립, 시간여행, 과거회귀를 소재로 한 드라마들이 유행이다.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아는 와이프>를 비롯해 최근에는 <내 남편과 결혼해 줘>가 큰 인기를 얻고 종영했다. 그리고 요즘엔, <선재 업고 튀어>가 난리난리 이런 난리가 없을 만큼 대단한 인기다.


남의 청춘 이야기가 이렇게 설렐 줄이야.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여자 주인공 솔이의 간절함과 처절함은 또 왜 이렇게 안쓰럽고 애틋한지, 40살 넘은 아줌마들의 월요병을 말끔히 치료해 준 것도 모자라, 화요일 밤만 되면 대체 또 한주를 어찌 보내야 할지 잠을 못 이룰 지경이다.     


2017년에 방영된 드라마 고백부부 역시 타임슬립을 소재로 했다. 현실에서 이혼위기에 처한 부부 마진주(장나라)와 최반도(손호준)가 처음 만났던 대학시절로 돌아가 자신들의 소중한 사랑을 깨달아가는 내용이다. 나는 이 드라마를 종영 후 몇 년이 흘러, 2021년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뒤, 남편과 몰아보기를 했다. 그저 코믹하고 가벼운, 다소 유치한 시트콤정도로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아니 이게 웬일이야, 거의 매회마다 남편과 같이 대성통곡하며 울며 봤던 기억이 난다. 극 중에서 마진주는 대학시절로 회귀하여 현실에서 돌아가신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되는데, 나 또한 엄마를 잃고 얼마 안 되었을 때라 어찌나 감정이입이 되던지, 보는 내내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나도 상상해 보았다. 만약 나에게도 저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나의 스무 살, 혹은 서른 살, 서른다섯 살 쯤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엄마를 지킬 수 있을까. 내가 엄마를 살릴 수 있을까.


내가 2020년으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엄마의 병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임해야지. 이름난 명의를 찾아가야지. 더 큰 병원, 좀 더 경험 많은 전문의가 있는 곳으로 가야지. 그리고 또 뭘 할 수 있을까.

전공의들이 파업을 앞두고 엄마를 퇴원시킬 때, 제발 가지 마시라고 우리 엄마를 진료해 달라고 울며 매달려 볼까. 아니면, ‘이대로 우리 엄마 퇴원시켰다가 폐렴으로 돌아가시면, 당신들 다 과실치사로 고소할 거야’라며 엄포를 놓고 협박이라도 할까. 아,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 따위가 뭐라고, 엄마의 병을 막을 수 있겠는가. 내가 뭐라고 엄마의 목숨을, 엄마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겠는가.      


<선재 업고 튀어> 8화에 보면 솔이의 오빠 금이와 결혼한 솔이의 친구 현주가 이런 대사를 한다.      


운명이 바뀌었다 치자. 근데 바뀐 삶이 낫다고 어떻게 확신해? 

당장 오늘은 행복할 수 있겠지. 근데 내일은? 갑자기 온갖 나쁜 일이 터질지 누가 알아?

어차피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고 살아보기 전에는 모르는 거야


그래. 바뀐 삶이 더 낫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살아 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는 것을. 

내가 엄마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한들, 엄마는 그것을 원할까. 그것이 낫다고 어찌 확신할까. 

엄마의 목숨을 몇 달 연장했다 한들, 그 코로나 시국에 엄마에게 더더 나쁜 일이 생기지 않으리란 보장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인 것을.     


그러니 내가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해야 하는 것은 오직 하나. 엄마를 마음껏 사랑하는 일이다. 넘치도록, 지나치고 오버스러울지언정 엄마를 원 없이 사랑하는 것이다. 고백부부에서 진주가 과거로 돌아갔을 때, 엄마와 내내 붙어있었던 것처럼, 엄마와 목욕탕 가고 장 보러 가고, 엄마 무릎 베고 소파에 누워 티비 보던 것처럼, 나도 엄마 옆에 꼭 붙어 온전히 엄마와 함께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전부다.     


귀신을 보고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도깨비신부 은탁이도, 자신의 죽음 앞에서 몸 사리지 않고 뛰어들었다. 그것이 선한 마음을 가진 은탁이의 천성이었다. 불을 다루고 기분에 따라 꽃을 피우고 비를 내리게 하는 도깨비도 제 신부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저승사자는 신의 일을 할 뿐, 생사를 좌지우지할 능력은 없다. 하물며 인간 따위가 죽음 앞에, 운명 앞에, 무엇을 하겠는가. 신이 그를 도와 시간을 되돌려 주었을 뿐,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막을 순 없다.     


솔아, 임솔!!!!! 

그러니 더 이상 혼자 뛰어다니지 말고, 더 이상 선재 밀어내지 말고, 선재 살리겠다고 도망 다니지 말고, 선재를 믿어줘. 선재의 목숨은 그가 스스로 지킬 거야. 네가 할 일은 그저 사랑하는 것뿐, 원 없이 사랑하렴. 갈비뼈가 으스러지도록 사랑하고, 입술이 부르트도록 사랑하렴.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을 만큼,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싶을 만큼, 내일 지구가 멸망한데도 두렵지 않을 만큼, 아주 많이 사랑하렴. 사랑하고, 사랑하렴. 혹여나 마지막 순간이 온다 해도, 후회 없을 만큼.     


며칠 전 어버이날이었다. 카네이션 달아드릴 부와 모가 없는, 고아인 나는 장미와 카네이션을 섞은 꽃다발을 사 엄마사진 옆에 두었다. 듣는 이 없이 혼자 중얼거리는 말, 엄마 사랑해. 엄마 보고 싶어. 엄마 고마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 과거로 돌아가는 일 따윈 일어나지 않는다.      


엄마, 꿈속에서 만나. 장미꽃밭에서, 카네이션 꽃밭에서. 

엄마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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