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이야기
# 소설의 예술성
현재 시장에 나와있는 소설들, 그중에서도 근래 대중의 인기를 끌고 있는 소설들은 대개 비슷한 패턴을 지니는 것처럼 보인다. '오락성' 과연 이 속성이야말로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필수조건으로 우뚝 서있다. 아무리 다른 방면으로 뛰어나더라도, '오락성'이 결여되어있다면, 금세 인기는 사그라들기 마련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재미'를 유발하여 책이라는 부담스러운 경계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재미'가 없다면, 시장에서의 가치는 점점 떨어지게 되는 것인데, 나 역시 이 '재미'라는 부분은 필연적으로 소설에 가미되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나, 독자들이 언젠가부터 소설도 하나의 예술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다소 유익하지 않더라도, 그저 하나의 '엔터테이먼트' 요소로 소비하려는 경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시점에서 '예술성'의 색은 점점 옅어지고 있는 것일 테다.
# '소설이라는 예술이 죽어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얀 마텔을 읽어보라'
그러나, 이 예술성에 고스란히 명함을 내민 책이 있으니, 영화로도 잘 알려진 '라이프 오브 파이' -'파이 이야기'이다. 나는 이 작품을 영화로도 책으로도 읽어보지 못했었다. 단편적으로 영화가 흥했고,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그리고 뒷면에 쓰여있는 대담하고 도전적인 문구. '소설이라는 예술이 죽어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얀 마텔을 읽어보라' 앞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매번 이 예술성에 대한 갈증을 겪고 있었다. 물론, 그런 갈증을 느낄 때마다, 한 권씩 새로운 바람으로 나를 충족시켜줬던 멋진 서적들이 있었으나, 다시 한번 목마름을 해결해줄 책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이 문구가 이 갈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을지 기대했던 것이었다.
# 모험과 예술의 집합
책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말하자면, 이야기 자체로는 새롭다고는 할 수 없겠다. 동물원은 운영하던 한 가족의 이민 과정에서 배가 난파하고, 그중에서 살아남은 '파이'라는 한 소년이 동물원 내에서의 최상위 포식자 호랑이와 함께 표류하는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하지만, 새롭지 않은 이야기에서 비범한, 인생에 대한 철학과 종교관을 비롯하여, 그야말로 우리가 흔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곱씹게 하는 것들에 대하여 언급하듯, 이는 예술의 범주에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가치관에 대하여 서술되는 일화들은 소년이 홀로 남겨진 망망대해에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발판이 되고, 반복되는 시련과 위기 속에서 용감하게 맞설 수 있는 굳은 용기와 인내를 갖게 되는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결국, 이 밑거름으로부터 인간에 대한 고찰과 이 소설을 관통하는 생명과 신념에 대한 생각을 독자에게 전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모험. 새롭지 않은 이야기라도, 그것을 풀어내는 능력이 흔히 생각할 수 있는 클리셰를 넘어설 때, 그것에서 진정한 의미의 재미와 흥미를 느끼며 모험과 같은 새로운 체험으로 예술과 함께 녹아들게 된다.
# 얀 마텔과 파이 이야기
예술을 위한 소설. 이 소설은 예술을 표방하지만, (실제로 이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 속에 모험이라는 요소로 오락 역시 충분히 챙겼다. 이와 얼핏 비슷하지만, 성격이 다른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거친 파도 속에서 치열하게 분투하는 인간의 모습을 내세운 작품으로 작품성으로 인정받았다면,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는 잔잔한 모험과 내적 갈등 속, 고요히 몰아치는 인간에 대한 고뇌와 성찰 같은 느낌이었다. 둘의 우위를 정할 수는 없을 테나, '파이 이야기' 역시 훌륭한 선상에 두어도 모자람 없음은 분명해 보인다. 결론적으로, 얀 마텔은 소설이라는 예술은 언제나 의미가 있음을 선사해주었고, '파이 이야기'는 모험과 예술이라는 어울림을 다른 방향으로 도약시킨 작품이었음을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