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렘 셔플
#화이트헤드의 새로운 도전, <할렘 셔플>
한때, <사회 속의 사회>라는 제목으로 글을 게재한 적이 있었다. <니클의 소년들>로 미국 내 만연했던 사회적 차별과 암묵적 묵인으로 행해졌던 참혹한 현상을 이끌어내어 주목을 받았던 콜슨 화이트헤드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자세한 <니클의 소년들>에 대한 리뷰나 소개는 이 페이지를 참고하시라. https://brunch.co.kr/@rhkdgml1272/100 )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나의 이목을 굵직하게 사로잡았던 그가 이번엔 '케이퍼 픽션'이라는 장르로 과감히 출사표를 던졌다. 이번에도 역시 미국의 차별의 시대, 1950~60년대를 다룬 작품으로 이전 <니클의 소년들>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지만, 같은 시기, 전작의 소년 주인공과 이번 작에서 등장할 어엿한 성인 남자의 대립은 은근한 연장선에 놓이는 것 같다고 할 수 있겠다.
#의아한 이야기꾼의 접근방법
이 책의 전반부를 읽고 나면 그가 <니클의 소년들>에서 보여주었던 스토리텔링 실력이 여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할렘 셔플>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가구점 주인인 흑인 청년 카니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사건, 그리고 이 이야기의 중심축이 되는 최초의 발단이란 앙상한 가지에 계속해서 충분한 영양분을 주입하고 있다. 마치 그는 그림을 그리듯 전체적인 배경을 차근차근 덧대어 설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아름다운 피사체를 위한 하나의 작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헌데 이 방법이 <니클의 소년들>에서 드러났던 것처럼 날카롭고 순조롭게 파고드는 듯한 느낌은 느끼지 못했다. 전작에서는 하나하나가 촌철살인으로 다가와 현실을 폭로하듯 보인 것에 비해, 이번 작의 중점은 차별과 시대의 비판으로 점철된 것이 아니라 범죄라는 타이틀로 끌고 나가야 할 힘이 있어야 하기에 이 방대한 이야기에 의문점이 찍히는 것이었다.
#이토록 대단할 수가.
허나, 이 케이퍼 픽션에 어울리지 않는 듯한 그의 스토리텔링에 마침표가 찍히는 순간, 멋지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케이퍼 픽션이라는 이 장르를 하나의 중심 사건으로 전개되는 일방적이고 협소한 시각의 장르물이 아니라 '할렘'이라는 장소를 근사하게 풀어놓아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사건으로 보고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범죄'라는 형태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백인과 흑인의 극명하지만 뻔한 구도를 떠나 흑인 사회 안에서 이들끼리의 권력 경쟁과 팽배한 계급화된 현실, 커다란 할렘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비애와 가족 간의 갈등, 망가져가는 할렘 길거리의 범죄자들, 모든 이 방대한 나뭇가지들이 결국 풍성한 한 그루의 나무로 달려가고 있었다는 것을 책을 덮고 나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니클의 소년들>과 <할렘 셔플>
<니클의 소년들>이 폭로한 차별의 역사, 그리고 그 속에서 자유를 찾고자 하는 소년의 이야기들은 다른 시각으로 <할렘 셔플>에서도 이어진다. 가구점 주인 카니가 바라는 범죄에서의 반항과 자유, 할렘 사회에서 벌어지는 미국 내의 또 다른 사회 집단에 대한 저항, 백인 사회에서 차별받던 흑인보다 더 열악한 흑인 공동체 내의 저열한 삶으로부터의 타개. 이는 소년 엘우드가 겪었던 폭력적이고 방치된 거대한 집단과 보다 작은 집단에서 영역을 확장시켜 카니가 지나온 인생의 분기에서 벗어나고자 다짐했던 참담한 현실을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다.
케이퍼 무비라는 장르를 아득히 뛰어넘어 범죄에 국한하지 않고 이를 둘러싼 사회 전반을 연구하고 통찰한 <할렘 셔플>은 결국, <니클의 소년들>이 가진 적나라하고 잔혹한 역사와 이야기에 독자적인 범죄의 구성을 더해 새로운 시도를 감행한 콜슨 화이트헤드의 뛰어난 능력을 다시 한번 입증해주는 수작이었다고 할 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