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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누룽지 Jan 25. 2023

가엾은 짐꾼

Piece 3.

짐꾼 샨드리

  포장되지 않은 도로를 따라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도시, 폭포가 흐르지만 척박하고 보기에는 신비롭지만 속은 텅 빈, 로엘라에서 짐꾼 샨드리는 평소 때처럼 옥수수, 감자를 머리에 이고 이웃 도시 은쿨루에 간다. 로엘라의 부패한 의례처럼 이어지는 가난한 사람들의 일거리와 유일한 생계수단이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로엘라는 그런 이들의 유일한 거처이자, 더 이상 발전이 없는 그런 도시이다. 로엘라의 짐꾼들은 자신들을 다른 이들과 구분하는 척도가 있다. 샨드리는 으레 짐작컨대 가장 아래의 신분이자, 유일하게 믿을 것이라고는 튼튼하고 굴곡진 대퇴근과 굳은살이 깊숙이 밴 두 발뿐인 것이다. 다른 이들이 유유히 은클루와 로엘라를 오갈 때 자전거라는 훌륭한 이동수단으로 시간과 돈을 산다면, 샨드리는 시간과 돈을 매우 비효율적으로 낭비하고 벌어들이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그리고 짐꾼들의 은연한 신분제도는 그 누구도 넘볼 수 없고, 극복할 수 없는 장벽이 되어 짐꾼들을 갈라놓고는 했다.


 겉옷 없는 책

 이 가엾고 적의 없는 푸르고 먹먹한 색을 가진 눈을 한 샨드리에게는 매일 같이 함께하는 책이 한 권있다. 어디든 함께하는 그 책은 그의 어머니가 주었다. 윤이 나던 시기를 벗어던지고 너덜거리며 벌어지는 책의 표지와 그 속 로엘라의 먼지와 은클루의 기운이 깃든 오래된 페이지들이 그와 함께 도시를 오가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가난을 세습했고, 그 가난은 다시 샨드리에게로 넘어왔다. 무너져가는 진흙으로 만든 간이집에서 커온 샨드리는 어머니에게 집에 남아있는 유일한 지식을 담은 이 책을 받았다. 그녀는 분명 야만인이자 문맹인이었으나, 그녀가 우연찮게 봤던 세상의 지식과 저 멀리 은쿨루와 로엘라를 벗어나 짧게나마 경험했던 발전한 문명의 이야기는 샨드리에게 별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야만인이 되지 않기를,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를, 자유인이 되기를.


 저열한 이의 소망

 샨드리 역시 자신의 어머니처럼 비슷하게, 부족하게, 배움 없이 살아왔다. 6살 때부터 바나나와 과일을 12살 때부터는 지금처럼 작물들을 머리에 이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의 일당 3 포스로는 그의 어머니와 살기엔 역부족이었는데, 이는 그가 로엘라와 은쿨루를 왔다 갔다 하는 시간 8시간을 생각하면 너무나 살인적이고 처참한 일당이었다. 콩죽 한 끼 정도의 돈을 벌었던 샨드리는 자전거를 탄 계급의 짐꾼들이 가끔은 놓치거나 선택받지 못한 비싼 작물들은 없는지 그들이 지나가는 길을 유심히 그리고 먼지 한 톨마저도 자세히 봐야 했다. 그렇게 하나라도 주인을 잃어버린 것들을 건지면 3일 정도는 거뜬히 먹을 수 있는 포스를 벌어다 어머니에게 주었다. 샨드리가 어머니를 그렇게도 끔찍하게 여기는 이유는 그녀가 매번 이 불쌍한 짐꾼에게 해주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로엘라 밖에는 또 다른 세계가 있고, 그 세계에는 차별과 계급, 짐꾼이 없으며 부유하고 마천루가 가득한 도시에서 저명하고 고귀한 지식과 지식인들이 살아가는 그야말로 새로운 새계의 지평이 있음을 알려준 어머니의 이야기를 이 저열한 샨드리는 자랑스럽게 받아들이고 가슴에 품었다. 그리고 그녀는 당신이 하지 못한 일을 샨드리에게 알려줌으로써 그의 긍지와 의지, 변화의 씨앗을 심어주었다. 그렇게 샨드리가 18세가 되던 해, 그저 기침과 열을 달고 살던 그녀는 가난한 이 땅에서 한 줌의 흙이 되어 그의 곁을 떠났거늘, 그는 두뇌라는 색다른 도화지에 번듯한 옷과 안경, 어머니의 책을 변함없이 간직할 가방과, 진흙이 아닌 집을 그려 넣었고, 자신의 눈으로 그것을 가상의 현실에 실행시키곤 했다. '나아가야 한다. 더 나은 세상을 봐야 한다. 나는 짐꾼이 아니게 될 것이다.'


 별이 되리라

 그리고 오늘, 은클루에서 마지막 물품을 조달한 이 짐꾼은, 아니 자유의 호소인은 로엘라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샨드리의 어머니가 남긴인 유일한 책을 들고 구부러진 강물과 산기슭을 따라 해방의 자태와 유토피아를 담은 그곳으로 향한다. 더 이상 돌아가지 않으리라 생각한 그였으나, 그는 이제 뒤를 돌아보아도 자신을 편히 담아줄 공간이 없으며, 오롯이 자신의 하찮은 몸뚱이만 남았다는 상념이 머리를 지배하기도 했고, 그가 여태껏 벌었던 포스는 새로운 세계에서 통용될지도 알 수 없으며, 그는 문맹인이기에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도 없을 것이었다. 또한, 그의 어머니에 따르면, 로엘라의 이들과 피부색이며 거대한 장골의 그들과는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그는 누가 봐도 홀로 떨어진 이방인처럼 그를 향해 죄여오는 그들의 시선은 견디기 쉽지 않을 터였다. 그럼에도, 샨드리의 발걸음이 앞으로 향하는 것은 가장 아래에서 시작한 그가 눈으로 수놓은 역변의 시작과 두뇌 속으로 좋은 허울을 한 그의 모습이 아련히 온몸 전체로 퍼져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것도 알 수 없고, 두렵고, 누구보다 미천한 샨드리는 그렇게 작은 별이 되기 위해 어머니를 책에 묻어 가슴속에 품고 함께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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