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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 백 Oct 24. 2021

어쨌든 오랜만의 완성

회복 일지7

::회복 일지7::

 어쨌든 오랜만의 완성

사진 모사, Date : 2018.12.6~12. (16 hours)



+ 되는 대로 그린 것 같지만, 나름 진지하게 그렸습니다. ‘흠, 약간 오이 같긴 한데, 어차피 더 그려봤자 마찬가지일 거야. 이쯤에서’하고 마무리 지을 뻔했습니다. 그런데 자꾸 보다 보니 뭔가 죄짓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그만 두기엔 너무 멀리 왔다 싶기도 해서 마저 가기로 합니다.  



+ 끝도 없는 수정의 연속입니다. 마무리하려고 다시 한번 살펴볼 때마다, 여지없이 고쳐야 할 부분이 쑥스러운 듯 슬쩍 고개를 듭니다. ‘저, 여기도 수정이요.’ 이게 도무지 끝이 있는 작업인지 알 수 없기도 하고, 이 정도면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여, 적당한 선에서 드디어 마무리합니다.  




.일지7 20181206~1212 + 어쨌든 오랜만의 완성.


1.
원래 7번째로 모사할 사진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인터넷 기사에서 <마약왕, 2018>이라는 영화의 포스터를 보게 됐고, 해당 포스터를 모사하기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금빛이 어른거리는 색감 그리고 배우 송강호 씨의 인상적인 표정에 매료되었거든요. 똑같이 그리지는 못 하겠지만,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해 멈춤 발걸음 같은 눈과 할 말이 있지만 말할 자격은 없다는 듯 살짝 뒤로 물러서는 입술을, 한번 쫓아가 보고 싶었습니다. 결과는, 여러분의 감상에 맡기겠습니다. :ㅇ


2.
이 번에는 작은 산 하나를 타보기로 합니다. 이 전보다는 숲 속 깊숙이 들어가 볼 생각을 합니다. 다행히도 각오가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오르다 힘겨우면 다시 내려올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운이 좋으면 봉우리 하나엔 도달할 수도 있겠지라는 바람을, 아닌 척 미소에 담고 갑니다. 다만, 헤매다가 길을 잃기라도 해서, 이후로 다시 산을 오르지 않게 되는 일이 생기지 않길 살짝 걱정도 해봅니다. 아무튼 기분은 좋습니다. 이 전의 산책들에서 또다시 산책을 하고 싶은 마음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욕심도 살짝 부려 봅니다. 한 번도 올라보지 않은 산을,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경로로, 오를 생각입니다.

그렇게 가볍게 시작한 여정은 일주일간의 고된 등반이 됩니다. 깊이 들어가 볼 생각이었지, 높이 오르게 될 줄은, 그러니까 그 시점에서 포기하지 않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깊이는 결국 높이를 수반하게 된다는 것을 염두 해 두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처음의 삼 일간 시도된 새로운 경로로 진행된 여정 끝에 길을 잃고 맙니다.   


지금의 위치가 어딘지도 모른 채로 계속 오르다 가는 완전히 길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염려하던 일이 발생했습니다. 염려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의미도 됩니다. 뜻 박의 충격은 아니었으므로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이쯤에서 하산해야 할지 아니면 조금 더 올라 볼지를 결정합니다. 만약 더 나아간다면, 그것은 깊이를 따라 흐르는 여정이 아니라 중력을 극복하는 등반이 됩니다.

그렇게 등반의 시작점에서 한 참을 망설입니다. 준비가 되지 않았고, 그래서 위험할 수 있습니다. 지도를 펼쳐 스스로의 위치를 가늠해 봅니다. 자세히, 자세히 살펴봅니다. 하나의 봉우리를 지정합니다. 그곳으로 가서 내려가는 길을 찾을 생각입니다. 문제는 불확실한 지금의 위치입니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특징적인 지점을 몇 군데 더 표시해 둡니다. 그 표시들과의 방향과 거리를 살펴보면서 이동하다 보면 자신의 위치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이제 그 표시들을 지도가 아닌 현실에서 찾아내야 합니다.


그렇게 오르다 멈추고 또 오르다 멈추고를 반복하며 자신의 위치와 목적지를 모색해 갑니다. 어느 지점에선 너무 힘이 들어서 등반을 그만둘까 고민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포기는 아닙니다. 지금은 치료기간이고 무리해서 산을 오를 필요는 없으니까요. 멈춰 쉬며 생각해 봅니다. 문득 이 과정이 싫지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조금 더 가보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억지로가 아니면 조금 더 애써도 좋지 않을까 하고 판단해 봅니다. 도전에 대한 욕구가 오랜만에 솟아납니다. 물론 욕심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결국 시간이 말해 줄 것입니다. 할 수 있는 한 조심하며, 다시 오르기로 합니다.


그렇게 지리한 시간들 속에서 겨우겨우 어딘가로 오릅니다. 그리고 마침내 어떤 봉우리에 오릅니다. 당연히 등반 전에 지정했던 곳은 아닙니다. 역시 인생에서 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습니다. 그것은 어떤 일이든 그 시작점에서 자신의 위치와 도달할 곳의 위치 모두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혹 정확히 안다고 해도 그 여정 속에 나타날 날씨의 변화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생각과는 다른 삶 속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잘못도 자신만의 책임도 아닐 것입니다.


어쨌든 오랜만에 봉우리에 올라봅니다. 티 내고 싶지는 않게, 살짝, 기쁘기도 합니다. 그렇게 도달한 봉우리에서 자신의 경로를 쭉 되짚어 봅니다. 다시 한 다면 저 앞에 보이는 다른 봉우리들로 정확하게 오를 수 있을까? 역시 당장은 어렵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영원히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다음에 올라 볼만한 봉우리들을 눈에 담고 후련한 마음으로 내려옵니다. 그리고 하루 정도는 든든할 보람도 느낍니다. 그라폴리오에 연재할 한 회분의 스토리도 얻었으니까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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