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일지6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손가락으로 헤아려 봅니다. 여섯 번째 일지입니다. 한 손을 다 꼽았으니 이제, 나머지 한 손마저 전부 꼽아보길 기대해 봅니다. 나에게 그 전부는 ‘열’이지만, 다른 누군가 에게는 그것이 ‘아홉’ 일 수도, 아니면 또 다른 수일 수도 있음을 생각합니다. 그러니 그것은 정해지지 않은 ‘번째’입니다. 그것은 인위적 목표 달성의 수치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도달이고 만족입니다.
며칠 전에 입양한 지 10년 된 PC가 혼수상태에 빠졌었습니다. 이런저런 처치를 했고, 다행히도 어제저녁에 겨우 의식을 회복했습니다. 물론 덕분에 일지에 머물렀어야 할 당시의 감정과 생각들은 대부분 놓쳐버리고 말았지만요. 그래도 염두 해 두어야 할 만한 몇 가지 생각들은 기억이 남아 있으니 그 생각들을 기록합니다.
기억하고 있는 생각 중 하나는 그림을 완성해 가는 여정에도, 많은 일이 그런 것처럼, 상태변화가 시작되는 일종의 임계점(臨界點)이 존재한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자신이 느끼는) 임계점을 앞당길 수 있는 핵심은 바로 실패를 염려하지 않는 과감함이라는 점입니다. 즉, 부지런하게 손을 움직이다 보면 결국 어느 순간 그림의 완성도가 생기기 시작한다는 사실과, 과감하게 진행할수록 완성도가 생기는 시점에 더 빠르게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낀 것이죠.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라서 말할 필요도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안다는 것이 곧 할 수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 또한 함께 느낍니다. 아는 것을 할 수 있는 일로 만드는 방법은 꾸준한 반복을 통한 숙달뿐이겠지요. 하지만 그런 깨달음과는 상관없이, 지금은 회복 기간이기에 이 일지의 도입부에서 언급했던 것과 같은 의미에서 꾸준함을 스스로에게 강요 치는 않을 생각입니다. 성큼성큼 걷고 힘차게 뛰는 일은, 일어선 다음에야 가능한 것이니까요. '추동'과 '재촉'을 구별하는 것이 저에겐 중요한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번 연습과정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이전과는 다르게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었다는 점입니다. 이 전에는 모두 ‘더 이상 못 그리겠다’라는 생각이 들면 바로 멈추었었기 때문에, 오히려 긍정적인 감정이 조금 당황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것이 비교적 순행되는 작업 덕분에 생긴 일시적인 흥 때문인지 아니면 다행스럽게도 회복이 잘 되고 있다는 긍정적 신호였는지, 확실히 판단 내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잘 못 판단하고 진행하면, 이 그림 하나 완성하고 질려서든 아니면 오히려 만족스러워서든 한 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에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때 마침 함께 그림을 그리던 저의 오래된 친구인 PC가 혼수상태에 빠지는 바람에, 그러한 고민은 자연스럽게 종료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살짝 시기를 벗어나서 그때의 고민을 보고 있으니, 어쩌면 생각이 필요 이상으로 많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게 생각이 많다는 것은 여전히, 그림을 그리는 일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일 겁니다.
이 두려움 역시, 걸어 보는 것으로만 극복할 수 있을 테니 그저 다시 또 한 발 내디뎌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