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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 백 Oct 24. 2021

초벌 채색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이해

회복 일지5

::회복 일지5::

 초벌 채색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이해

사진 모사, Date : 2018.11.07/08. (2 hours)


.일지3 20181107/1108 + 초벌 채색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이해.


이 번엔 이틀에 걸쳐서 초벌 채색까지 진행한 스케치 하나를 그렸습니다. 첫날은 약 30분 정도 스케치했고, 두 번째 날은 1시간 30분 정도 그렸습니다. 더 하고 싶은 욕심이 났지만, 일단 여기서 멈췄습니다. 어떤 정해진 수준의 완성은, 지금의 목적이 아니니까요.


애초엔 채색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초벌 채색까지 진행했습니다. 덕분에 채색 능력이 6년 전, 처음 디지털 채색을 하던 때로 돌아간 것을 확인했습니다. 현실을 직시하는 건 언제나 중요한 것이니 마음은 좀 아프지만 뭐, 괜찮습니다.


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기본기도 전혀 없고 경험도 많지는 않아서 말 그대로 우왕좌왕, 갈팡질팡 했습니다. 거기에다가 선을 따는 게 왜 그렇게 싫은 건지, 어떻게든 선을 따지 않고 넘어가려다 보니, 되려 돌아가기도 했고요. 깨달은 점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의 경우엔 채색 중간중간 스케치를 조금씩 해주면서 진행하는 것이 자신의 현 상황(능력과 습관 등)에 맞는다는 점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려온 그림들이 거의 만화였던 터라, 아무래도 면으로만 그림을 완성해 가는 것보다는 선으로 형태를 잡아가면서 진행하는 것이 안정적이고 수월하게 느껴집니다.


디지털 채색은 6년 전에 처음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타블렛이 (세상에) 없었기 때문에 펜이나 연필 등으로 종이에 그린 것을 스캔 한 다음, 포토샵에서 선을 추출 후에 마우스로 채색을 했었습니다. 보통은 애니메이션의 그림처럼 단순하게 채색을 했고, 좀 더 밀도감 있는 그림을 위해서는 종이에서 명암까지 모두 그린 후에, 포토샵에서 색감만 덧입히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런 방식을 소위 ‘글레이징Glazing’이라고 부르더군요. 어떤 방식이든 핵심은 이미 갖춘 그림 위에 마우스로 슥슥 색만 발라주는 정도였기 때문에, 그 수준이야 어쨌든, 당시엔 크게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타블렛을 통해서 새로운 채색 공부를 시작하자, 그 난감함과 난해함에 가슴이 턱 하고 거대한 벽에 눌려 막히는 느낌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바로 거기서부터 그림 그리기의 행복을 놓치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되지 않는 것을 억지로 연습을 하다 보니 결국 질리고만 것이지요. 평소 도전하기를 좋아하는 터라 이겨 내야 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렇게 하는 것이 탄탄한 실력을 얻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시의 ‘나의 상태와 상황에는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엔 마음이 상당히 급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해 있었고, 주변 상황 역시 마음의 여유를 갖기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빨리 해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해내야 한다’라는 생각은 어떤 동기 부여나 다짐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강요가 되어버렸고, 그래서 항상 조급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급한 마음은 실패를 가져오는 유명한 원인 아니겠습니까.


조급함에 이끌리다 보니 어설프게 냅다 뛰어서 부딪히고 실패하고, 또 부딪히고 실패하고. 연일 좌절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결과보다는 그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는 터라 어느 정도 재미를 느꼈다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전혀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마음이 급했으니까요. 결과에 집착하게 된 것이죠. ‘아, 이 정도로는 안돼’가 항상 머릿속에 주문처럼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다 결국 펜을 놓게 된 것이죠.


디지털 채색에도 여러 가지 방법과 방식이 있습니다. 당시에 함께 그림 공부를 하던 길동무들이 ‘게임 일러스트’ 분야에서 일하거나 공부하는 터라 자연스럽게 그 방식을 따라갔던 것인데, 그것이 개인적으로는 ‘패착’이 됐습니다. 세밀하면서도 밀도가 높은 방식의 게임 일러스트 채색 방식을 익혀가기에는, 마음의 여유가 너무 부족했던 것이죠. 그보다는 차라리 그전에 해오던 대로 라인 위주의 일러스트를 그리고, 채색은 밀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색상에 초점을 맞춰 진행했다면 적어도 그렇게 그리기를 중단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아무래도 익숙함은 조급함을 어느 정도 상쇄시키는 힘이 있으니까요.


아, 그러고 보니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역시, 기록하는 것은 자신을 살펴보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되네요. 생각은 금방 휘발되어 버려서 생각만으로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는 건 어려운 일인데, 기록은 언제든 그때의 자신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네요. 아무튼 지금 자신의 상황을 명확히 보는 일이, 길을 잃은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라는 나름의 결론을 수확해 봅니다. 그러니 이제 더 천천히, 자신을 충분히 살펴보면서, 다시 또 한 걸음 내디뎌 보아야겠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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