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일지8
+ 모사의 대상인 원본 사진(왼쪽)이 실사인 줄 알고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리면서 관찰을 하다 보니 왠지 그림 같기도 해서 찾아보았더니, 해당 사진은 'Linda Alexander'라는 화가의 유화 작품이었습니다! 사진의 본 출처를 알게 됐으니, 아래에 해당 화가의 웹사이트 주소를 남깁니다.
- 원본 사진 출처: Linda Alexander ROI SBA: http://www.lindaalexander.co.uk
+ 꽃 이름이 '아네모네(Anemone)' 이죠? 우리 말로는 '바람꽃'이라고 불리는 것이 맞는지 궁금하네요.
1. 이 번 그림은 사진인 줄 알았던 정물화 모작
가볍게 내딛고 무겁게 완성한 그림입니다. 이 그림에 앞서 그리고 있던 그림이 있습니다. 작년 성탄일 전에 완성하려고 시작했던 그림인데요. 20시간 이상을 그렸는데도 완성을 하지 못했고, 또 얼마나 시간이 들어갈지 알 수가 없어서 다른 그림을 먼저 그려보기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앞서 시작한 그림과는 다르게 단순한 그림을 그리기로 계획했습니다.
어떤 그림이 좋을지 모색하다가 사물이 딱 하나만 있는 정물화가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생각에는 과일 하나만 그리려고 했는데, 막상 그리려니 이렇게 하는 건 공부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릴 것이 많지 않아서 그림을 그리는 도중에 질리지 않는 수준이면서도, 공부할 거리가 역시 있는 사진을 찾아보다가 바로 위에 있는 사진을 그리기로 결정했습니다.
2. 이 정도면 해 볼만 하지, Here we go~
사물들의 개수도 적당하고 전체적인 형태나 색이 단순합니다. 이 정도면 6시간 정도면 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을 합니다.
3. Everyone has a plan until they get punched in the mouth
17시간. 위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걸린 대략의 시간입니다. 네 맞습니다.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마음이 가벼웠던 것은 ‘현실이라는 무게’가 처음 계획에서 빠져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실이 계획에서 빠졌던 것은 스스로를 (여전히)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했기 때문은 아닙니다. 할 수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착각. 즉 오판을 한 이유는 한 번도 정물화를 그려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단 한 번도 채색 정물화를 그려본 적이 없습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그린 내 맘대로 ‘풍경화’ 3점(동네 수채 풍경 2점, 사생대회 때 공원 수채 풍경 1점)과 중학교 때 그린 C점을 받은 ‘왼손 소묘’와 누군지 모를 ‘자기 얼굴 소묘’ 각 1점씩 그리고 고등학교 때 상상으로 그린 ‘정물 소묘’ 1점 정도가 살면서 그린 ‘회화’의 전부입니다. 기억하는 한에서는 말이죠.
해 본 적도 없으면서 할 수 있다고 자신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어떤 길을 아는 것과 그 길을 걷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인데 말이죠. 물론 그동안 중간중간 연습 삼아 그렸던 만화, 라인드로잉, 연필이나 펜 스케치 등의 경험이 있고, 그 경험들을 토대로 판단한 것이기에 나름대로는 객관적 판단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논리적이라도 유추에는 언제나 한계나 있습니다. 동일한 시간과 동일한 환경 그리고 동일 대상이 아닌 한 똑같은 일은 이 세상엔 없으니까요. ‘어느 정도’ 아는 것과 ‘온전히’ 아는 것은 다른 일이고, 혹 경험했다고 해도 ‘온전히’ 안다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한 경험이 그 일의 전부인 것은 역시 아니니까요. 서울 산다고 서울에 대해 모두 이야기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결론 적으로 직접 해보지 않은 일들을 ‘온전히’ 안다고 생각한 것이 예상과 다른 지점에 도착한 이유였습니다. 문득 전설적인 미국의 권투선수였던 ‘마이크 타이슨’이 한 것이라고 떠도는 말이 생각납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두드려 맞기 전까지는(Everyone has a plan Until they get punched in the mouth.).’ 타이슨의 주먹이 나불거리는 저의 입을 아주 매콤하게 두드립니다.
4. 언제나 등장하는 욕심이라는 장애물
이번에 맞닥뜨렸던 장애물은 크게 봤을 때, 완성에 까지 걸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중간에 지쳐서 그리기를 멈출 뻔했고, 막판에는 포기는 아니지만 그리기를 자꾸 미루려고 했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는 우선, 앞서 말했듯이 초행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친구를 만나러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 간 적이 있습니다. 지하철역에서 내려서 지상으로 바로 올라와서 길을 찾으면 쉽게 갈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날은 지하로 연결된 길을 따라 가보기로 했습니다. 길을 헤맬지도 모르겠다는 염려도 있긴 했지만, 평소에 길을 잘 찾는 편이라 자신 있게 길을 나섰습니다.
1시간. 고속버스 터미널의 지하 통로는 지옥 같은 미궁이었습니다. 넉넉히 15분이면 갈 길을 무려 네 배의 시간과 정신적 스트레스 그리고 육체적 에너지의 소모를 들여 찾아갔습니다. 물론 친구는 ‘대노’ 했습니다. 친구가 데리러 오겠다는 것을 자존심 세우며 극구 말렸던 죄와 뒤에 있는 일정을 망친 죄 값이었습니다. 같은 실수를 이번에도 반복했음을 깨달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해보지 않았던 일이라는 근본적인 이유 말고, 실질적으로 시간에 영향을 준 다른 이유는 욕심입니다. 앞선 길 찾기에서 ‘자존심’ 때문에 어리석음을 이어갔다면, 이번에는 ‘욕심’이 어리석음을 끊어내지 못하게 했습니다. ‘꼭 완성해야 한다는 마음’은 욕심과 도전정신 중간에 걸쳐있는 것이라 그러려니 했지만, 7번째 회복일지 그림을 그리면서 틈타기 시작한 ‘잘 그려야 한다’라는 생각은 완벽한 욕심이었습니다. 완벽한 욕심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 생각이 통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통제되지 않는 욕심은 결국 탈을 일으킵니다.
‘잘 그려야 한다’라는 욕심은 ‘좋은 그림을 그려야 한다’라는 자기 기준과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특정 수준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렇게 스스로의 내부에서 평가를 하게 되면 결국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3년 전에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게 만든 주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그 평가기준을 통과하는 그림을 그려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림을 그릴 때마다 머리와 마음을 온통 지배하는 ‘잘 그려야 한다는 생각을 통제하는 것’이 ‘재활의 핵심’ 과제입니다. (물론 지금처럼 재활이 아니고 그림으로 생계를 담당해야 한다면 어느 정도 필요한 생각이지만요.) 방법은 간단합니다. 자신은 물론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것을 포기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 포기라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처방전을 회복일지의 시작에 적어둔 것입니다. 사람이란 항상 눈으로 봐야 잊지 않는 존재이니까요.
5. 장애물 뒤에 있던 오기, 마무리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이해
장애물이 있었지만, 스케치의 수준이든 완성의 수준이든 어쨌든 마무리를 했습니다. 언제나 길을 걸으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있기 마련이죠. 그리고 꾸준한 산책이 몸과 마음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다주듯, 이번의 과정에서도 얻거나 알게 된 것들이 있습니다.
결국 ‘해내게 하는 에너지로서의 오기’가 그중 하나입니다. 그림을 그리던 막판에 또다시 미루고 싶은 생각이 엄청나게 밀려왔습니다. ‘아무래도 3시간 정도는 더 걸릴 텐데, 다음에 하자.’ 그렇게 일어나려는 순간 잃어버리고 있던 오기라는 감정이 떠올랐습니다. ‘아냐. 하자 해버리자. 잠을 좀 못 자고 또 몇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이번에 끝내자.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이 자식아!’ 적절한 오기의 발동이 시간의 지연을 막아내고 마무리를 짓게 했습니다.
그 ‘마무리’와 관련해서 느끼게 된 것이 있습니다. 1월 한 달 동안은 자주 그림을 그렸지만, 그리던 그림을 마무리 짓지 못했습니다.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마음은 예전에 비해서 많이 회복하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머릿속에 ‘포기’라는 단어가 스멀거렸습니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마무리 짓지’ 못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마무리 짓고 다음 걸음으로 넘어가야 하는 나름의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이 실패라는 감정을 느끼게 했던 것입니다. 이 전에 올린 ‘살아있습니다(I'm alive~!)’라는 스토리 예고 공지는 바로 그런 실패의 감정을 유보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마무리를 하니 예상대로 그 실패의 감정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거의라고 한 이유는 마음이든 몸이든 아무래도 한 번 생긴 상처(실패의 감정)는 아무는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마무리를 짓는 일은 다음 걸음을 멈추지 않게 하는 주요한 요소’란 것을 깨닫습니다. 물론 그것은 ‘대충 넘기는 일’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지금 걷고 있는 일은 남의 일이 아닌 스스로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된 다른 한 가지 사실은, 예상보다 실제로 구현해 내는 ‘색감이 (주관적으로는) 나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전반적으로 ‘환한 분위기로 그림을 그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해가고 있습니다. 물론 채색의 경험이 부족한 것이 전체적인 색감을 밝게 만드는 경향도 있을 것입니다. 초보이다 보니 아무래도 과감함이 부족해 어둠의 표현에 인색하기도 할 것이고, 과도하게 묘사에 집중하다 보니 색을 실제보다 밝게 인식하기 때문일 수도 있으니까요. (순수 창작의 경우에는 반대로 색감이 어두워지는 경향이 있기도 합니다. 이는 실제 사물을 그려본 경험이 적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6. 스스로를 허락하는 마음으로 담대하게
앞서 타이슨에게 한 대 얻어맞았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걸어 보지 않은 길을 걸을 때는 타이슨의 주먹을 맞게 마련입니다.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한다고 해도 말이죠. 따라서 당장에 그리고 앞으로 저 앞에 놓인 또 다른 장애물들 뒤에 놓여있는 좋은 것들과 만나기 위해서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그럴 것을 예상’하고 ‘마음 편하고 담대하게’ 걸어가는 것입니다. 예상했던 일은 충격이 적으니 적어도 그 자리에 주저앉지는 않을 것이고, 어쨌든 걸어가야 어떤 일이든 마무리 지을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저 담대히 걸으면서도 딱하나 항상 염두 해 둘 것은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는 마음입니다. 자신의 상처를 돌볼 때는 자신에게 모든 것을 허락하고 다른 일들은 뒷전으로 옮겨 놓듯이, 지금의 회복기간에는 자신의 기준도 타인의 시선도 모두 헐어 버리고 오직 그림을 그리는 재미에만 집중하는 것이 맞는 일이니까요.
7. :D
와. 일지가 길어졌네요. 사실 정신적으로 살짝 탈진이 된 상태라서 쓸 말이 생각나지 않던 형편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쓰고 싶은 말이 없을 때 글을 쓰면 중언부언되거나 횡설수설되고 또 그와 동시에 글의 주제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게 되기에, 가급적 타인에게 공개하는 글을 쓰지 않는 편입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마무리’의 경험이 중요한 것이기에, 그저 자리에 앉아 일지를 기록해 보았습니다. 덕분에 독자 분들에게 미안한 아주 긴 글을 얻었지만 말이죠. 그래도 이렇게 마음을 전하며 한 걸음 걷게 되니, 그것으로 좋은 것 아닐까 하고 웃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