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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 백 Oct 24. 2021

만화, 10대 그리고 다시 행복

회복 일지11

::회복 일지11::

 만화, 10대 그리고 다시 행복

Date : 2019.0423 ~ 0510 (About 15 hours)


+ 올해(2019년) 방영되고 있는, 일본 TV 애니메이션 「도로로」의 한 장면(6화)을 그려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6화가 '「도로로」의 주제'를 가장 잘 보여준 이야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이면서도, '햐키마루의 내면'을 온전히 형상화한 장면이 바로 이 절규 장면이 아닐까 합니다. 앞으로의 이야기가 그 핵심들을 잘 풀어내 주길 기대하면서, 응원의 마음을 담아 그려 보았습니다. :)



.일지11 2019.0423~0510 + 만화, 10대 그리고 다시 행복.

만화

어린 시절 만화를 참 좋아했습니다. 좋아한 것 치고는 만화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요. 만화책을 많이 읽지 않은 것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만화 보다, 그림을 더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의 기억입니다. 가방에서 만화책 몇 권을 꺼내 들고선, 방 한쪽 벽에 기대앉습니다. 친구에게 빌려온 만화책을 펼쳐 들고 만화를 읽기 시작하는 눈에, 설렘이 가득합니다. 1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고. 1시간쯤 지나자 책 한 권을 내려놓습니다. 친구들은 10분이면 읽는 만화책 한 권을 저는 그렇게 오래 읽었습니다. 


만화책 안의 모든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림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그림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사물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해낸 만화가들의 선을 따라가는, 그 작은 여행의 시간이 너무나 즐거웠기 때문입니다.


기억을 되살리다 보니 자기 차례를 기다리던 친구 녀석들이 문득 떠오릅니다. 친구들은 “만화책 뚫어지겠다.”는 말로 저를 타박하면서도, 그 이상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 주었습니다. 또 어느 날은 좋은 그림이 있는 만화책을 발견했다면서 저에게 알려주기도 하고, 때로는 구입해서 빌려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 번 그려보라고 응원을 하기도 했죠. 마음이 포근하고 여유가 있는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그리운 ‘어린’ 시간들입니다. 말이 옆으로 빠졌네요. 다시 돌아갑니다.


그렇게 그림을 오래 보는 습관이 있다 보니, 만화책 자체는, 많은 권 수를 읽지는 못했습니다. 게다가 만화책을 보고 그림을 따라 그리곤 했으니, 더더욱 만화책을 다독하기는 어려웠죠. 그렇게 만화를 통해서 그림을 좋아하게 되고,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참 행복했습니다.



잃어버린 기억의 발견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기억을 잊은 적은 없지만, 왜인지 많은 시간을 애써 외면해왔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내가 다시 돼 보겠다고 어느 날 마음을 돌이켰지만, 오랜 시간을 외면해왔던 만큼 너무나 멀리, 그 기억으로부터 멀리 지나와 버렸습니다. 


그 시절의 감각은 이제 시간에 흩어져 버려서 다시 열정과 같은 어떤 에너지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열정이 없는 바람은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그저 추억 속에 갇혀버린 꼴이 될 뿐이었죠. 망연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어른들의 방식으로 열정을 되살리려 해 보았습니다. ‘의지로’ 말입니다. 그러니까, ‘억지로’ 말입니다. 당연히 되지 않는 방법입니다.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죠. 그렇게 표류하던 어느 날. 우연히도 발견하게 됩니다. 스스로가 놓치고 있었던 것, 열정의 씨앗을 말입니다.


작년(2018년)에 모 사이트에서 10대 일러스트레이션 연재 작가를 뽑는 공모전을 처음 보고서, 반가운 마음을 가지고 관심 있게 지켜보았습니다. 마침 그 시기에 앞서 이야기한 어린 시절이 한창 떠오르기도 했고, 또 개인적으로 10대들을 지원하는 일에 긍정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10대 작가들의 그림을 찬찬히 감상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가는 작품들이나 작가들에게 작은 응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한 작품, 한 작품을 보다 보니, 어떤 작품들에게서는 ‘즐거움’이 한껏 느껴졌습니다. 


어떤 완성도와 같은 잣대와 상관없이,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즐거웠음이 확연히 느껴지는 그림들 말입니다. 그런 그림들을 발견할 때마다, 그런 작가들을 만날 때마다,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를 정말로 즐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 깊이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좀처럼 만나지 못했던, 동류를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동류라고 느끼며 좋아하는 자신을 보면서, 그러니까 그렇게 그들의 모습에서 잃어버렸던 그 소중한 기억이 열쇠처럼 떠올랐습니다. 왜 그렇게 그림을 즐겨 그렸는지, 왜 그림을 그리며 그토록 행복했는지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게 길처럼 마음속에 펼쳐졌습니다. 


만화가들의 펜이 그려가는 선을 따라가는 일이 즐거웠고, 그렇게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일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선을 그려나갔고, 그렇게 만들어지는 작은 세계를 마주하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그 모든 과정 자체가 설레고 즐거웠으며 소중했다는 기억을, 새삼 그리고 절실히 되찾은 것입니다. 


멋진 그림을 그리는 것이 즐거웠던 것이 아니라, 멋진 그림을 그리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그리는 것이 즐거웠고 그렇게 그려낸 내 그림이 좋았던 것뿐이었음을 기억의 한쪽 구석에서 찾았습니다. 그렇게 되찾은 기억에서 오랜 먼지를 털어내고 끄집어낸 것이 바로 이 ‘회복일지’입니다.



10대 작가들에 대한 고마움
10대 작가 분들 덕에 되찾은 것이기에, 회복 일지는 10대 작가 분들과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혼자만의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정표를 함께 녹여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또 서로서로 응원하는 분위기도 만들어서 각자의 여정에 힘도 되어주고 말이죠. 


흔히 어른들이 하는, 사회성의 한 부분으로서의 인사가 아니라, 진심으로 서로의 그림을 응원하고자 하는 마음에 서로를 독려하는 것 말이죠. 초반 회복일지의 글 말미에 응원을 해달라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들어오셔서 그 긴 글을 끝까지 읽은 분들의 응원이라면, 아마도 진심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10대 분들과 함께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렇게 처음에 잡았던 초점을 맞출 수 없게 되다 보니, 회복일지의 전반적인 분위기나 내용이 붕 뜨기도 했고, 주제가 중구난방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이런저런 아쉬움이 남은 스토리가 되었습니다만, 그래도 개인적인 부분만 본다면 나름대로 성공적인 스토리였습니다. 


스스로에게 있어서 회복일지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그림 그리는 행복을 되찾는 것’이었으니까요. 아직은 온전히 회복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지만, 적어도 이제는 그림 그리는 일이 전처럼 괴롭지는 않으니까요. 괴롭지 않으니 더 할 수 있게 됐고, 더 하다 보면 종국엔 즐거움에 도달할 것이니까요. 그렇게 희망하고 있습니다.


나를 되찾으러 가는 길

이 번에 그린 그림은 그런 희망에 가까워졌음을 기념하는 마음으로,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만화의 한 장면을 그려 보았습니다. 정확히는 애니메이션이지만요. 이 그림에는 다소 자극적인 표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장면은 해당 작품의 핵심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고, 또 그 핵심이 저의 회복일지의 주제와 맞닿는 부분도 있기에 선택한 장면입니다. 


그런 이유가 있음에도 일본의 절단 문화를 좋아하지 않는 터라, 온화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담은 다른 장면을 그려야겠다 싶어서 한참을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장면으로는 이 작품의 진심을 온전히 보여줄 수 없을 것 같아서 조금 자극적이지만, 결국 이 장면을 그려 보았습니다.

이제 ‘회복일지’는 마지막 한 회만이 남아있습니다. 회복일지 이후에도 그림을 그려 올리게 될지는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Draw Something’이라는 1시간 동안 연습한 스케치를 진행하고 있긴 하지만, 
연재가 될지는 불분명합니다. 그래도 그림은 계속 그릴 것이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저의 그림은 계속 소개해 드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왕이면 그리는 즐거움이 가득 담겨있는 그림을 보여드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제 일지를 마무리해야겠습니다. 한 발 그리고 또 한 발. 떠나왔던 그곳을 향해 다시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곳은 이제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있음을 느낍니다. 감상해 주시고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행복하시길 미소로 응원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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