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일지10
+ 왼쪽) 원본 사진: 올리브 엘리제
얼굴은 초벌 스케치의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 굳이 더 닮게 그리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어쩌면, 조금은 작가의 어린 시절 모습이 담겼는지도 모르겠다. :)
+ 사진의 출처는 ‘핀터레스트’ 사이트입니다.
다만, 해당 사진의 원래 출처로 보이는 곳을 찾았기에 주소를 남깁니다.
올리브의 엄마, ‘칼라 장 데이비스’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mintkarla/ )
들어가는 말
겨울의 마지막과 봄의 시작. 그 사이에 이 그림이 놓여있습니다. 봄을 기다리는 그림이었으므로 겨울에 완성하려던 그림인데 말입니다. 네, 이 번 걸음 역시 계획한 대로 나가지는 못했습니다. 뭐, 벌써 익숙합니다.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되는 일입니다. 그러니 과도한 반성보다는 당장 또 한 걸음 걸어보면서 그 방법들을 모색해 보는 것이 상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번에 그린 그림은 유명한 어린이 모델입니다. 사실 원본 사진의 출처를 찾아보기 전까지는 몰랐던 사실이지만요. 어쨌든 잃어버린 유년기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의 깊이와 원피스를 가득 채우고 있는 꽃들의 밝음에 마음이 이끌렸습니다.
자연광 아래 있는 대상은 상대적으로 묘사하기가 어렵습니다. 빛이 한 방향에서 명확히 투사될 때보다는 말이죠. 그것이 그림을 완성하는데 오래 걸린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꽃무늬 원피스(한국말로는 뭐라고 칭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해맑게 미소 짓고 있는 꽃무늬들이 완성 기간을 길어지게 한 또 다른 주범입니다. 뭐, 언제나 그런 요소들이 있는 것이니 이제는 괴로워하지 않으렵니다.
일어난 일들
작업 과정에서 생각하게 됐던 것들을 적어 봅니다. 우선 배운 점입니다. 색의 표현에 대해서 조금 더 습득하게 됐습니다. 사진을 분석하는 동안 어떻게 색을 사용하면 실제처럼 보이는지, 그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 더 늘었습니다. 그 이해를 바탕으로 색의 사용 방식, 즉 원하는 것을 표현 방법을 조금이나마 익히게 됐습니다.
드라마틱한 빛의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자연광 아래의 대상을 그렸기 때문에 진실하게(쉽게 표현하는 테크닉을 사용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렸고 그만큼 표현이 어려웠습니다. 아마 그 어려움이 빛과 색 그리고 사실성에 대한 이해를 가져다준 것이 아닐까 합니다.
자연광을 통한 사실성과 색의 표현에 대한 이해는 앞서 그린(완성하지는 못했지만) ‘공드리’부터였습니다. 공드리를 그리면서 많은 것을 새롭게 깨달았고, 이 번 그림을 통해서 알게 된 것 들에 대한 이해도를 조금 더 높일 수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순수 창작을 위주로 그림을 공부했었기 때문에 놓치고 있던 부분들이었습니다. 순수 창작에 대한 고통이 크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그래서 자연스럽게) 선택한 보고 그리기가, 순수 창작을 공부할 당시에 세워진 벽을 여럿 허물게 될 줄은 사실 기대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진을 공부하는 것은 여러모로 효과가 있었습니다. 특히 디지털 프로그램으로 그린다면 더욱더 그렇습니다. 양자 모두 ‘픽셀’이 모여서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이니까요. 대상을 표현하고 있는 사진을 분석하면서 그 (디지털) 표현 방식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 다른 방향도 함께 바라보게 됩니다.
바로 실제 사물을 눈으로 보고 그리는 것 말입니다. 아마도 이는 사진을 관찰하는 것보다는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확대할 수도 또 정지시킬 수도 없으니까요. 실제는 디지털과는 다르게 세밀하게 관찰하기는 어려운 만큼, 관찰과 표현에 있어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렇기에 마음 놓고 좀 더 편히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어쩔 수 없잖아~”라는 방패 뒤에서 말이죠. 올해엔 ‘어반 스케칭(야외 드로잉)’에 다시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피어오르기도 합니다.
건강에 대한 것
모든 일은 건강해야 할 수 있죠. 이 번에 새삼 다시 그것을 느꼈습니다. 사실 그림을 그리는 기간이 길어진 이유가 또 하나 있었습니다. 네, 건강상의 이유가 그것입니다. 사진을 집요하게 관찰하다 보니 눈에 상당한 무리가 왔습니다.
모니터를 오래 본 것이 하루 이틀은 아니라서 처음에 상당히 불편한 마음이 들었고, 놀라기도 했습니다. 모니터에 흰색 바탕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쳐다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작업은 당연히 할 수 없었고, ‘화면’이라고 이름 붙은 모든 것을 보기 어려웠습니다. 다행히도 지금은 괜찮아졌습니다.
이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니터를 볼 때 눈의 상태와 습관, 작업자세, 작업환경, 작업내용별 특성(밝은 색이 많은 작업은 특별히 신경 쓰면서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이에 관한 생각이 그것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과거에도 모니터를 보는 시간이 적은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 때문에, 나이에 관해 생각을 좀 하게 됐습니다. 아직 젊기도 하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니, 그보다는 육체적 시기에 따른 생체 능력의 저하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확하겠습니다.
하지만 표현이 너무 길기 때문에 ‘노화’라고 간단히 표현하겠습니다. 4살이 10살 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늙은 것이니까요. 아무튼 그냥 있어도 육체적으로 강했던 시기가 문득 그리워진 작업 기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훈장 선생님의 담화 말씀 같은 의미라기보다는, 그저 육체적인 부분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체력 말입니다. 그러니 젊을 때 미리 해야 한다라는 말을 하려는 것 역시 전혀 아닙니다. 그저 어떤 자명한 사실을 느낀 것뿐입니다. 육체는 노화합니다. 막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지금 보다 나중은 더 그럴 것이라는 걸 염두하며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야 내 몸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보살필 수 있을 테니까요. 노화를 막을 수는 없지만 늦출 수는 있으니까요.
1년 전 운동을 하다가 어깨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것을 핑계 삼아 이제까지 나태하게 아주 잘 지냈습니다. 하지만 이번 작업 기간에서 간절히 느꼈으니, 베짱이 생활도 겨우내 따뜻하게 지켜주던 든든한 뱃살도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입니다.
다시 앞을 바라보며
일지를 쓰기 전에는 이런저런 내용을 간명하게 적시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워낙 기간이 길어 시기적 적절성이 어긋나기도 하고, 그간의 생각이 겹치고 변화되기도 하기에 의도대로 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독자 분들에게 미안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 번 그림을 그리는 동안 ‘회복’이 상당 수준으로 진행되었음을 느꼈습니다. 실제로 거의 매일 1시간 정도씩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기도 했으니까요. 물론 아직은 저만의 그림을, 순수 창작을 하기에는 이르다는 것도 느낍니다.
마음을 천천히 기다려줄 생각입니다. 또 마음을 도울 여러 가지를 키울 생각입니다. 체력도 실력도 스스로에 대한 관대함도 그리고 삶을 여유롭게 바라보는 정신도 말이죠.
그리고 이제 회복일지는 서서히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예상하기로는 앞으로 2회 정도가 연재되는 것으로 회복일지는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몸이든 마음이든 회복이란 것은 어느 시점에 종이 자르듯 그 종료 시점을 정할 수는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회복일지의 연재는 마무리되더라도 회복과정은 온전히 회복되었음을 느낄 때까지는 신중하게 지속될 것입니다. 그 회복의 길에서, 또 한 발 건강하게 내 디뎌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