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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Apr 26. 2018

'나' 돌보기

<100일 글쓰기 99/100>


'100일 프로젝트'를 제안한 분이 설문을 돌리셨다. 선택 질문 중 가장 마지막에 다른 사람에게 100일 프로젝트를 소개할 때 뭐라고 표현하고 싶냐는 것이 있었다. '100일 글쓰기'를 시작한 후로, 줄곧 주변 사람들에게 요즘 이런 걸 하고 있어-라면서 설명할 때마다 했던 말이 있으니 어렵지 않게 답변을 적었다. 내가 흔들릴 때, 나를 잃지 않게 해주는 것이라고.

입사를 한 후로 생활환경 탓에 그리고 내 성격 탓에 거의 모든 것이 회사를 위주로 돌아갔다. (한국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럴 거라 생각하지만.) 일에 대한 고민 때문에, 주어진 시간이 넉넉지 않아서, 몸이 안 좋아서, 여러 가지의 이유로 회사와 분리해둔 나를 생각하기가 어려웠다. 일터에서의 성장 속도가 많이 둔화되었다는 생각을 했고, 권한과 책임에 대한 고민을 심각하게 했으며,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싶어 지니 회사 밖의 '나'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소소한 전환 포인트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고, 이런저런 활동을 찾았다. 힘들게 운동도 해봤고, 드로잉 수업도 들어봤고, 독서 모임에도 나가고, 이런저런 공연도 보러 다녔다. 아주 오랜만에 아이돌 덕질을 시작했으며, 한동안 쓰지 않던 글도 몇 자 적어보고, 일부러 친구들도 만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도 찾았다.

이번에 '100일 글쓰기'를 신청했던 것 또한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글을 쓰는 데에 있어서 기술적인 배움이나 습관에 대한 목적도 있었지만, 실제 100일간 매일 글을 쓰는 행위의 본질은 그 이전에 내 생각을 가다듬는 시간에 있다고 생각한다. 매일 짧게는 3분 남짓, 길게는 1시간가량 주어진 글감에 대해, 또는 그날 있었던 사건들에서 얻을 수 있는 실마리, 거기서 나의 경험과 기억을 꺼내보거나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에선 사고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 시간에 나를 흔드는 것은 물리적인 제약을 주는 회식 정도가 전부다.

말을 잘 정리하지 못하는 편이다. 글 또한 얼개를 잡는 것을 어려워한다. 일단 정신없이 늘어놓고, 정리하고 깎아내는 과정을 거쳐야 정제된 나의 생각이 나온다. 그러나 매일 수고스럽게 정제 과정을 거칠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종종 그 시간을 통해 일상에 흔들리던 나는 오롯이 홀로 선 내가 누구인지 조금 더 알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다 보면 나는 '나'와 점점 더 친해지리라 생각하고. 매일 아주 잠깐의 틈을 내어 나를 돌본다고 생각하면 100일이 끝난 후에도 오랜 마라톤이 가능할 것 같다. 와, 이렇게 적다 보니 또 마음가짐이 부쩍 단단하고 차분해진 느낌이다. 좋아. 앞으로도 이 마음 잃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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