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94/100>
부모님집에 살 때도, 친척집에 얹혀살 때도, 3평짜리 미니텔에 살 때도 항상 곁에 두던 것은 CD장이다. 눈대중으로 300장쯤 되는 CD는 사도 사도 부족하다. 책이야 주로 소설류를 읽으니 한 번 읽고 바로 정리를 하고 다시 읽고 싶으면 그때 또 사는 편이다. 그런데 CD는 언제 다시 그 음악을 듣고 싶어질지 알 수 없으니 항시 대기 중이어야 한다. 집 밖에서나 회사에서 노동요로 들을 곡이라면 리핑 또는 멜론에서 음원 단위로 구매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집에서 가만히 침대에 누워 오디오로 듣는 것과는 마음가짐이나 감상이 확연하게 차이나서 어쩔 수 없다.
빌트인인 옷장과 책상 때문에 이부자리를 깔면 가득 차는 비좁은 미니텔에서 밤새 취미 생활을 하다 어스름한 새벽에 창문에 붙어 앉아 담배를 태우며 음악을 들으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공간이 펼쳐졌다. 훨씬 쾌적한 환경에서 지내게 된 지금도 그 시간만큼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시절에 비해 어마어마한 양으로 늘어난 수많은 CD 중에서 주말 아침의 무드에 어울리는 것을 고르고 CD장 제일 위칸에 올려둔 미니 컴포넌트에 넣고 볼륨을 맞춘다. 우드 블라인드의 각도를 바꿔 가는 햇빛이 들어오도록 해두고 다시 침대에 모로 누워 사각거리는 이불을 덮고 있으면 시간의 흐름을 느끼기 어려워진다. 공간에 생활감은 옅어지고, 새로운 차원의 공간감이 연출된다.
월요일에 최언니에게 선물 받은 잔나로즈는 다음날 만개하더니 아직까지 잘 버텨주고 있다. 가끔은 이런 것도 좋네. 생기까지 더해진 나의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