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파랑 Mar 28. 2019

밖으로 나가자

며칠 전부터 입술이 마르더니 입 안에 하얗게 염증이 돋았다. 입술은 버석버석하게 말라서 딱지가 앉고 염증은 혀까지 옮아서 점점 더 통증이 심해진다. 아무래도 약이 독한가보다. 쉬면서 닭가슴살과 달걀, 두부, 글루텐프리 식사빵 같은 걸 먹고 매일 충분히 걸으면 몸이 가뿐해질 줄 알았는데 이것도 쉽지가 않다.

밤잠을 설쳤다. 꿈에서 잠시 맡은 고양이가 있었는데 깜빡하고 끼니를 제때 챙겨주지 않아 만 하루 반을 굶은 상태더라. 꿈 속인 줄 알면서도 소스라치게 놀라서 허겁지겁 습식 캔을 따서 먹였다. 일어나니 나른했다. 얼굴은 곳곳이 간지러워서 무의식중에 이곳저곳 긁을 뻔 한 걸 겨우 의식하여 참았다.

평일의 한가로운 풍경을 언제 또 즐길 수 있을까 싶어 가려고 찍어둔 카페에는 가지 못 했다. 가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라든가 장시간 배고파지지 않을 자신이라든가 카드값이라든가 하는 걸 생각하다보니 오늘은 포기해야겠다 싶었다. 이른 저녁 시간에 가볼까 했던 평양냉면집도 역시 미뤘다. 이러다 정작 긴 휴가 때도 지갑 사정이니 뭐니 운운하다 많은 걸 놓아버릴까봐 걱정이다.

계절이 한 바퀴를 도는 동안 옷장 정리를 계속 계속 미뤘다. 슬기가 주말에 뭐하냐고 물을 때 몇 번이나 옷장 정리할 거라고 했었는데 여즉 안 한 거다. 마음 먹고 정리를 시작했다. '세일' 같은 프로모션 카피에 홀려서 그때그때 짧게 고민하고 사들인 허름한 옷이 잔뜩 구겨져있었다. 몇 년씩 안 입은 옷도, 중고등학교 때부터 입은 옷도, 체형이 변해서 더이상 맞지 않게 된 옷도, 찬찬히 골라서 박스에 담았다. 시즌마다 몇 가지 입는 것만 줄창 입으면서도 쟁여둔 넝마가 왜 그렇게 많았는지 모르겠다. 어디 가서 미니멀리스트 꿈나무 같은 소리는 민망해서 더 못 하겠다.

반쪽짜리 양배추를 채썰어 데친 후 겨자와 레몬즙에 버무리고 으깬 닭가슴살과 비벼 먹었다. 식사보다는 끼니 때우기에 가까운 행위였다. 회사에서 점심 먹을 땐 그래도 앞에 앉은 메이가 있는데 혼자서 어둑한 거실을 서성이며 입에 밀어넣고 있는 게 좀 허하게 느껴졌다. 그러는 동안 메이에게선 조직 구조가 또 바뀐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예상은 했어도 가까워지지 않길 바라던 것들이 동시에 일어난다.

주말부터 내내 시간이 굉장히 느리게 간다고 생각했는데 오늘만큼은 온전히 '무위'가 모든 것을 빨리 감기 해버렸다. 목이 아프지만 이만 밖으로 나가야겠다. 더 아파질지언정 아무래도 답답한 기분이다. 더 나은 길. 더 나은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야 기운이 날 것 같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