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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브리엘의오보에 Jun 28. 2024

조리의 기본

* Annie Spratt, Unsplash


셰프가 될 필요는 없다

한 때, 오이 피클을 사시비 저미듯 사선으로, 그리고 종이짝처럼 써는 것에 열을 올린 적이 있다

채칼 없이 식도로 양배추 채를 치는데 집중한 적도 있다

익숙해졌을 때, 도마를 보지 않고 써는 재주도 부렸다

조미료를 눈과 손 대중으로 넣으며 맛을 본 적도 있다

언젠가부터 이런 집중에서 눈을 돌렸다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그 덕분에 깨달은 요리의 기본은 무엇일까?


우리는 항상 먹는다

먹지 않고 생을 유지할 수 없다

생으로 먹을 수 없다

조리는 필수다

조리를 전문가에게 맡길 수 있다(레스토랑 방문 혹은 배달)


조리는 특정인의 역할로 규정되었다

누군가의 특기였던 적도 있다

모두의 교양이었다가, 희망하는 사람의 먹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조리가 왜 사치일까?

우리는 요리를 하나, 조리를 하나?

아마 대부분은 조리를 할 것이다

창의적 조리를 매번 하는 분도 있겠지만


Gaelle Marcel, Unsplash


직접 조리해 먹을 때의 즐거움이 사치일 수 있다

조리한 음식을 나 외의 입(口)에서 맛있다는 말이 나올 때가 사치일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의 사치는 기본을 아는 것이다


조리의 기본을 크게 3 가지로 이야기하겠다

도공, 화공, 그리고 맛이다


도공(刀工)은 말 그대로 칼을 다루는 기술이다

재료를 다듬어 준비하고, 적절한 크기와 형태로 자르는 과정이다

이번엔 크게 썰어 넣을까는 로맨틱하다 하겠다

대부분의 도공은 한 입 크기로 자르는 것이 기본이다

수저에 담길 정도, 포크에 찍어 베어 물지 않는 크기


화공(火工)은 열을 사용하는 기술이다

볶기, 굽기, 찌기, 튀기기 등은 독특한 맛과 식감을 부여한다

열을 어떻게 제어하는가에 따라 요리의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냄비 밥을 할 때 가장 잘 볼 수 있다

처음엔 큰 불로 밥물을 끓인다

10~12분 정도 끓으면 불을 작은 불로 줄여 5~7분 정도 둔다

그 사이 뚜껑 밖으로 새어 나오는 냄새를 맡아 고소한 내음이 나는지 체크한다

불을 완전히 끄고, 그대로 5분을 뜸 들이거나, 주걱으로 한 번 뒤집어 뜸을 들이는 경우도 있다

혹은 큰 불에서 끓을 때 주걱으로 젓는 방법도 제언된다

이것이 화공이다


맛은 기억나는 찌개 맛이나 반찬 맛을 재현하려 노력하는 과정일 수 있다

하지만, 조미료는 명칭 그대로 맛을 돕는 재료다

조미료 맛으로 먹는다는 한식이란 말은 나는 부정한다


Shane, Unsplash


우선 식재료의 날 것의 맛과 익힌 후의 맛을 보고 기억한다

채소 육수를 내듯 푹 끓인 후에 육수와 재료의 맛을 보고 기억한다

찌개의 경우, 짠맛과 매운맛이 주를 이루는 것 같지만, 김치의 시큼한 신맛, 신맛을 누그러뜨리는 단맛, 젓갈의 짠맛, 김치를 볶을 때의 기름 맛, 신 김치의 쓴맛이 모두 어우러진 맛이다

고기를 구워 먹을 때 파채 무침이 주는 맛에는 신맛이 있다

익힌 단백질과 지방에 상큼한 신맛은 음식 맛을 배가 한다

이렇듯 맛을 내는 방법은 짠맛 단맛의 원색적인 맛을 내는 일이 아니다

오미가 조화를 이루고 메뉴에 따라 점유율이 다른 것이 맛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소금은 정제 소금이 아닌 천일염을 손가락으로 집어넣는다

설탕 역시 마찬가지다

언젠가부터 g(그램)이나 큰 술 작은 술이 생활화되어 조미료를 퍼넣고 있었다

하지만 조미료를 평소보다 적게 쓰며 식재료 본연의 맛이 조화를 이루도록 돕는 역할을 부여해 보니 개안(開眼)의 경험을 했다


학원을 다닐 필요도 없다

내 혀와 내 손끝을 익숙하게 할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맛을 느끼고 기억하는 일이 더해질 뿐이다


조리는 반복이다

생각하는 반복 이상의 조리 학습은 없다

이왕 먹을 밥, 맛있게 먹으면 더 좋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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