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우리 같은 범인들은 이런 천재의 고통에 값을 매겨 가며 즐기거나, 천재의 머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조롱해 대는 또 다른 화마에 지나지 않으니까
범인은,
개별적으로는
매우 약하다.
그런데 신은 이번에도 공평했는지
범인들에게는
‘집단’이라는 재주를 허락했다.
함께 뭉치면
불가능한 일을 해내는 것도 범인이고,
단지,
낯설고 두렵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조용히 몰아내는 것도
범인이다.
그 대상이
미래의 씨앗을 심은
‘천재’일지라도.
천재는 늘,
외롭다.
뭉치지 못하고
소속되지 못한 채
세상에 없는 언어로 말한다.
그가 외치는 진심은
“공감되지 않는 소음”이 되고
그의 확신은
“불편한 아집”으로 취급된다.
범인은 그런 그를 무너뜨린다.
그리고 묻는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해?”
“왜 우리를 이해시키려 드는 거야?”
하지만 역설적으로,
천재를 알아보는 것도
범인이다.
그를 아이돌로 만들고
조직을 세우고
상품으로 승화시킨다.
모두가 즐길 수 있게.
그러다
언젠가,
그가 무언가 ‘틀리기’ 시작하면,
‘너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또다시
아무 말 없이
등을 돌린다.
천재는 결국 혼자 남는다.
목이 터지도록 외치다
미운털 하나 더 몸에 박고
사라진다.
그리고 우리는 말한다.
“그 사람, 좀 괴짜였지?”
“혼자 너무 튀었잖아.”
공존하기엔,
너무 다르고
너무 멀다.
그래서 시기의 씨앗은
언제나, 그 틈에서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