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대’는 기본적으로 비경쟁적이며, 공동체의 진심에서 나오는 자발적 지지다.
요즘 이 단어가 자주 떠오른다. 그럴 상황이기도 하다. 우리는 누군가를 앞에 세울 때 경쟁을 전제로 한다. 이겨야 앞에 선다. 하지만 ‘추대’는 정반대다. 누군가가 나서기보다, 공동체가 그 사람이어야 한다고 느낄 때, 그는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중심으로 밀려난다.
그만큼 구성원이 대상의 사람을 잘 알아야 한다. 자신이 스스로를 알렸다기보다, 평소 그의 행동과 태도가 주목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추대의 사전적 의미
‘추대(推戴)’란, 어떤 사람을 윗자리에 올려 세우는 것을 뜻한다. ‘推(밀 추)’와 ‘戴(받들 대)’는 말 그대로 “밀어서 받든다”는 뜻이다. 핵심은 다음 두 가지다:
* 스스로 나서지 않음
* 공동체의 마음에서 우러난 존경과 필요
역사 속 추대의 이미지
일부 역사적 인물들은 추대와 유사한 방식으로 공동체의 앞에 섰다. 그들의 등장은 권력 의지보다 공동체의 바람이 앞섰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 달라이 라마 14세
스스로 나선 적 없고, 불교 공동체가 전생자의 환생으로 발견하여 추대했다. 이후 정치와 종교의 지도자가 되었으나, 자발적으로 정치권력을 내려놓은 상징적 인물.
- 레흐 바웬사
조선소 노동자 출신으로 정치 세력이 아닌 국민들의 자발적 지지 속에 상징적 지도자가 되었다. 진심 어린 요청에 따라 권력의 중심으로 올라선 ‘민중의 얼굴’이었다.
- 조지 워싱턴
독립전쟁의 영웅이었지만, 정계 입문을 거부했고, 공동체의 설득으로 대통령직을 수락. 이후 3선 금지를 스스로 제안하며 권력의 자제와 책임감을 보여준 예.
- 바츨라프 하벨
체코의 극작가이자 반체제 인사였던 그는 혁명 이후 정치 경험 없이 공동체의 추대로 국가를 이끌었다. 예술로 시작했지만, 상징성과 도덕성으로 앞에 선 인물.
- 마하트마 간디
정치권력을 원한 적 없지만, 인도 국민들의 깊은 신뢰 속에 지도자로 추대. ‘비폭력’이라는 철학이 공동체의 미래와 맞닿아 있었기에 가능한 추대였다.
추대가 가능하려면 공동체는 어떤 문화를 가져야 하는가?
* 공통의 존경 기준이 필요하다 → 공동체가 인정하는 인격과 철학, 품격의 기준이 있어야 신뢰할 수 있다.
* 목소리가 큰 사람이 아니라, 조용히 쌓인 평판이 기준이어야 한다 → 추대는 순간의 여론이 아니라, 오랜 시간 쌓인 내공 끝에 공동체가 ‘선택하게 되는 과정’이다.
* 앞에 서고 싶어 하는 자보다, 피하는 자를 밀어내는 공동체의 힘이 있어야 한다 → 공동체가 ‘욕망을 다스리고 잘할 수 있는 사람’를 원할 때 추대가 가능하다.
* 콘클라베처럼, 침묵과 숙고의 구조가 필요하다 → 숙성된 판단과 평판의 힘이 작동하려면 속도보다 깊이 있는 선택의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도 성숙해야 한다.
제갈공명 — 문학이 만든 ‘추대의 상징’
『삼국지연의』 속 제갈공명은, 우리가 말하는 추대의 개념적 형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단순한 전략가가 아니라, 공동체가 끊임없이 앞에 세우고자 했던 상징적 대리인이었다.
왜 제갈공명의 등장이 ‘추대’와 닮았는가?
1. 스스로 나서지 않음
공명은 유비가 세 번 찾아가야 만날 수 있었던 은자로 그려진다.
그를 추천한 사람은 인물을 잘 본다는 서서와 사마휘다.
* 자신을 알리지 않았고, 권력에 대한 욕망도 드러내지 않았다.
→ 나서지 않는 자를 공동체가 간절히 필요로 할 때 생기는 추대의 전형.
2. 평판에 기반한 인물
* 공명은 이미 ‘와룡’이라 불리며, 주변 인물들의 입을 통해 회자되고 있었다.
→ 콘클라베처럼 사전 홍보 없이도 꾸준히 회자되는 인물.
3. 국가적 비전 제시자
* 공명은 유비를 만나자마자 천하삼분지계를 제시한다.
→ 단순한 참모가 아니라, 국가의 방향을 그리는 인물로서의 추대.
4. 고요한 리더십
* 공명은 유비 사후에도 ‘제갈량의 나라’가 되지 않게끔 충직한 섭정에 머물렀다.
→ 권력을 탐하지 않고, 공동체의 질서를 지키는 대리자.
물론, 역사 속 공명은 그 정도로 은둔형 인물은 아니었고, 정치적 맥락에서 적극적인 실무자에 가까웠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말하는 것은 권력구도의 실제가 아니라, ‘추대’라는 개념이 문학 속에서 어떻게 형상화되는가에 관한 것이다. 『삼국지연의』 속 공명은 그 점에서 이상적인 ‘앞에 세워지는 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왕이 없는 국가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일할 줄 아는 대리인, 그리고 앞에 세워도 부끄럽지 않은 대리인이다. ‘추대’는 그 사람이 원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 사람이어야 한다고 느낄 때 발생한다. 그리고 그것은, 누군가의 목소리가 아니라, 우리의 기대와 평판, 그리고 시대가 만들어낸 침묵 속의 대답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