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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김

익숙함을 벗어나 다시 나를 찾는 시간

by 가브리엘의오보에

우리는 즐겁게 살고 싶어 한다.

예전에도, 지금도,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문득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일상은 어쩌면 모두 ‘지금의 즐거움’을 향한 노력으로 엮여 있는지도 모르겠다.

즐거움에 대한 갈망.

어쩌면 그건, 인간의 가장 오래된 본능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무엇을 즐길까?

무엇으로 그 커다란 취향의 그릇을 넘치게 채우려고 할까?


MBTI의 ‘I’들은 모두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것에 집중할 것이다.

‘E’들은 밖으로 나설 것이다. 혹은 ‘함께’를 추구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나는, 자평하자면, Triple ‘I’라서, 즐거움을 독서, 음악, 영화, 운동으로 채우려고 노력한다.

혼자 채워가는 즐거움은, 때로는 약간의 수행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음악을 들을 때는 에어팟을 착용하고 혼자서 듣는다.

책을 읽을 때는 가능한 조용한 곳을 찾는다. 아니, 혼자 집중할 수 있는 곳을 찾는다.

영화를 보거나 시리즈를 볼 때도 그렇다. 더욱이, 극 영화는 정주행을 하는 편이다. 중간에 이야기가 끊기는 것을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운동은 아침 시간을 활용한다. 대부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어제의 피로로 굳은 몸을 요가와 스트레칭 동작을 적절히 섞어 풀어낸다. 출근길의 발걸음이 가벼워지면 즐거움은 배가 된다.


이렇게 즐긴 것이 벌써 몇십 년이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즐겼으니, 당연히, 지루함도 있었다.

익숙함은 능숙함을 낳지만, 지루함의 베스트 프렌드이기도 하다.

‘식상해!’라는 생각이 떠오르면, 음악을 끄고, 책을 덮고, 영상 매체의 전원을 내리고, 천장을 보며 가만히 누워 있다.

지루하다는 증거이자 증상이라 하겠다.


너 역시 그럴 때가 있지 않니?

뭔가 새롭지 않고, 특히, 재미가 없어지는 순간.

넌 그럴 때 어떻게 하니? 언제 한 번 기회가 될 때 물어봐야겠다. 내게 도움이 될 수 있으니.


내 방법을 공유하자면, ‘변화’ 혹은 ‘변경’이다.

대상 자체를 변경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몇십 년의 지속에서 추리고 골라 현재까지 이어온 즐김이기 때문이다.

대상을 바꾸지 않고, 어떤 변화나 변경을 할까?


장르를 시도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즐기던 장르에서 벗어나 낯선 장르를 무작정 시도하는 것이다.

평소 쉽게 할 수 있는 뇌 운동이 평소 출/퇴근길을 바꾸는 것이라 하지 않니?

뇌를 긴장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근육처럼 이완과 긴장을 반복하는 방법이라고 하더라.


평소 Pop을 즐겼다면, R&B를 시도하면 괜찮다. Pop 스러운 R&B도 많거든.

소설을 좋아한다면, 장르보다는 국가를 변경해 본다. 평소 우리나라 소설을 즐겼다면, 이웃 나라의 작품을 선택한다. 일본, 중국, 유럽, 미국 등. 유사한 구조, 유사한 주제, 유사한 소재라도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 이야기 속에 깃든 문화가 다름이 색다른 맛을 자아낸다.

운동을 즐긴다면, 밖으로 나가보자. 3 km 정도 걷는 것이다. 평소 외향적 운동을 하지 않던 사람이 시작하기에 걷기보다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근육과 관절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칼로리는 확실히 소모한다. 왜 3 km냐면, 약간 힘든 정도의 수준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아파트 단지를 밖에서 한 바퀴 돌면 유사한 거리가 나오더라. 근처 가게 갈 때 그 정도는 걷지 않니? 그리고 걷기를 시작하기 전, 종료한 후엔 평소와 다른 스트레칭도 할 수 있다. 부위와 동작이 다름이 새로움을 자아낸다.

영화라면, 애니메이션으로 변경해 본다. 연기력 뛰어난 배우들이 차고 넘치지만, 애니메이션 캐릭터만큼 연기하는 배우는 잘 보지 못했다. 나만의 판단이니 너무 믿진 말고. 스릴러 위주라면, 오글거리더라도 로맨스를 시도하면 어떨까? 아니면, 탐정이 속 시원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좋다. 현대극을 즐긴다면, 사극으로 변경해 보는 것도 좋다.


이런 변화나 변경이 새로운 기분을 들게 하고, 시도 중에 만난, 취향에 맞는 작품은 즐거움을 배가한다.


좀 길게 이야기했지만,

왜 우리는 그것을 생의 끝까지 추구할까?

언젠가는 손자와 놀며 영화도 음악도 책도 멀리할지 모르지만,

아직은 내게 시간이 있다.

그래서 지금, 나를 즐겁게 하는 데 시간을 쓴다.


결국, 즐김이란 무엇일까?


그저 기분 좋은 행동?

아니면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시간?


나는 이렇게 생각해.

즐김은 나를 즐겁게 하는 일이다.

내 취향을 발견하는 즐거움,

그 취향에 나를 맡기는 시간.

그리고 그 기쁨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면—

그 미소 하나가 하루를 환하게 만들기도 하니까.


그래서 말이야,

자신을 즐겁게 하자.

조금씩, 그리고 매일 다르게.

한 번 사는 생을 즐거움으로 채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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