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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는 없음

by 가브리엘의오보에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말이 있다.

“이거 하나면 다 해결돼요.”


건강 보조 식품, 다이어트 방법, 공부법, 심지어는 인간관계까지.

어디를 봐도 만병통치약을 외치는 소리가 넘쳐난다.


이건 단지 홈쇼핑이나 광고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SNS에서도, 방송에서도, ‘이게 최고야’, ‘이건 꼭 해봐야 해’, ‘단 며칠이면 달라져요’ 같은 문장은 쉽게 발견된다. 심지어 ‘위인들의 명언’까지도 마치 정답처럼 등장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효과적인 조언이란 없다는 것을.

그 무엇도 ‘절대적’ 일 수 없다는 것을.


어떤 말이 너에게 와닿았니?


네가 자주 찾아보는 건 뭘까?

패션, 맛집, 소프트웨어, 혹은 커피?

일 잘하는 방법? 집중하는 법? 관계를 맺는 기술?


네가 따르는 롤모델이 있다는 걸 나는 안다.

다행히도, 그 사람이 만병통치약을 이야기하진 않더라.

그 사람이 너의 롤 모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너에게 잘 맞기 때문일 거야.

그 조언을 실천했을 때 성과가 있었겠지.

그렇다면, 그 말은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어도,

‘너에게 맞는 말’이란 건 분명해.


그래서 필요한 것, 식별력


여기서 중요한 건 식별력이다.

말 그대로, ‘다름을 알아보는 힘’이야.


그건 훈련할 수 있어.

와인 감별사가 향을 익히듯, 우리도 ‘나’를 알아가는 훈련을 할 수 있지.


예를 들어, 네가 매운 음식을 싫어한다면

그건 너의 취향에 있어서 ‘음각’인 영역이야.

거기에 맞는 ‘양각’은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일 테고.


운동이 서툴다면, 대규모 동작보다는 작고 단순한 움직임이 더 너와 잘 맞는 거겠지.


자신을 안다는 건,

내가 어떤 모양의 퍼즐 조각인지를 아는 일이야.

그리고 세상의 조각들 중 무엇이 나와 맞닿는지 살피는 일이기도 해.


두 번째 필요한 것은 판단.


그런데, 우리가 언제나 논리적으로만 선택하진 않지.

‘맞지 않음’을 알면서도 갖고 싶은 것,

그건 욕망이라 불러야 할까.


네게 맞지 않는 사람인데, 좋아지기도 하고

사이즈가 맞지 않는 옷이지만 입고 싶기도 하지.


예산이 부족해도 일본 여행을 가고 싶고

이미 캡슐 커피 머신이 있는데, 다른 모델이 눈에 들어오기도 해.


이럴 땐 식별력을 넘어 판단이 필요해.


단지 ‘나에게 안 맞아’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욕망을 ‘현실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나에게 맞출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


예상 비용을 계산해 보고,

시간을 들여 자금을 마련해 보는 것,

혹은 공동 구매나 중고 보상 옵션을 살펴보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야.

때로는 내가 어떤 것을 포기할 수 있는지도 고려해야 해.


다시 말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효과 있는 건 없다.

그러니 진짜 좋은 정보란

대상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장에 문제가 있는 분들께 권합니다.”

이건 꽤 괜찮은 접근이야.

물론 ‘장이 안 좋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효과가 있는 약이나 건강 보조 식품은 없겠지만.


왜 그럴까?

이것이 표준화의 맹점이다.

대량 생산의 산물이지.

한 가지로 n명을 만족시키려는 노력이 대량 생산의 정신이다.


이 모든 얘기를 왜 하느냐고?


세상에는 정말 많은 선택지가 있고,

그중에는 분명 과장된 것도 많아.


하지만 성실히 준비된 것들도 있어.

중요한 건, 그중 나에게 맞는 것을 골라내는 능력이야.

식별력과 판단이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지.


무조건적인 믿음은 위험해.

좋아함은 휘발성이 강한 감정이라서,

좋아한다고 해서 곁에 두는 게 반드시 좋은 건 아니거든.


그러니 오늘도 너에게 말해주고 싶어.

이성과 감정의 균형을 지키며,

네게 진짜 잘 맞는 것을 찾아 곁에 두라고.


때론 거절하고,

때론 치환하고,

때론 교환하고,

필요할 땐 과감히 변경하렴.


그렇게 네가 가지고 태어난 요철을 잘 완성해 가기를,

나는 언제나 응원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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