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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어디로가 아니라 어떻게

by 가브리엘의오보에

만약 네가 이런 질문을 품게 된다면,

어떤 대답을 할까?


도쿄를 다시 간다면, 나는 무엇을 할까?

오사카를 다시 찾는다면, 어떤 길을 걸을까?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일본의 작은 마을에 닿는다면, 나는 거기서 어떤 나를 만나게 될까?


그리고 더 근본적인 질문 하나.

우리에게 정말 여행이 필요한 걸까?




나는 'T'다.

그럼에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유롭게 지낼 시간이면 족하다.


가끔은 평일 아침,

다들 출근하는 시간에 늦잠을 자고,

찜해둔 근교를 아무 계획 없이 돌아보는 것.

그게 나에겐 최고의 휴식이다.


꼭 어디로 떠나야만 쉼이 되는 건 아니다.

그저 ‘계획 없는 하루’가

충분히 여행 같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건,

어쨌든 공간을 옮기는 행위다.

‘어디로 가는가’에 따라

보게 되는 것도,

먹게 되는 것도,

느끼게 되는 것도 달라진다.


요즘 여행은 대부분 비슷하게 보인다.

알고리즘이 추천한 ‘힙한 장소’,

누구나 찍는 그 장소에서의 사진,

누가 올렸는지 알 수 없는 맛집 지도.

이런 흐름 속에서

여행이 식상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떠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막상 떠날 의지는 생기지 않는다.

그저 화면 속 풍경을 구경하며,

실제로는 집 안에서 머문다.




친구는 말했다.


“도쿄를 다시 간다면, 나는 동경하지 않는 동경을 걷고 싶어.”


화려한 거리,

유명한 디저트 가게,

소셜미디어에 자주 나오는 카페 말고.


누군가의 출근길,

담벼락에 붙은 오래된 광고,

동네 책방,

그곳의 점원과 손님들.


예전엔 늘 바라보기만 했던 동경.

이젠 그 틈 사이로 섞이고 싶다고 했다.


조용한 카페 구석,

나지막한 음악과 커피 향,

그들의 하루를 지켜보는 여행.

그게 진짜 동경일지도 모른다고.




오사카를 다시 찾게 된다면,

나는 웃음을 수집하러 가겠다고 했다.


시장 골목의 외침,

오사카 특유의 억양,

툭툭 던지는 농담 같은 말투.


남바 시장 한쪽에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말의 내용보다

그 리듬, 억양,

목소리의 크기를 즐기는 시간.


그게 더 오사카스럽지 않느냐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아직 가보지 못한 일본 어딘가로 간다면,

그땐 일부러 작은 실패를 하러 가겠단다.


길을 잃고,

표를 놓치고,

이상한 맛의 간식을 잘못 사 먹고,

숙소를 찾지 못해 질 녘까지 걷게 되는 날.


그런 실패 속에서

낯선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틈에서

지금의 나와는 조금 다른,

익숙하지 않은 나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자유는 어디서든 느낄 수 있어.

하지만, 자유를 느끼는 감각은 공간에 따라 달라져.”


익숙한 집 안에서는 감각이 닫힌다.

모든 게 예상대로 흘러가니까.


반면 낯선 공간에선

작은 냄새 하나,

길거리의 글씨 하나,

사람들의 말투 하나까지도

감각을 깨우는 자극이 된다.


그 깨어남이

지금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진다고.




그래서 그 친구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매번 새로운 여행이 되려면,

관광을 내려놓고 감각을 올려야 해.”


계획을 비워두고,

길을 일부러 잃고,

이상하든 재미있든 끌리는 걸 선택하고,

누군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사진 대신 감각으로 기억하고.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단지 어딘가로 이동한 것이 아니라,

조금은 달라진 나로 돌아오게 될 거야.




여행은

어디로 가느냐보다,

어떻게 가느냐의 문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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