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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브리엘의오보에 Apr 15. 2020

프롤로그: 매일 행복을 느끼는 하루를 만든다

이제부터 매일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싶다. 이것이 생활 최적화라는 개념을 정리한 이유다. 당신은 원하지 않나, 행복한 하루. 불편하지도 허탈하지도 않고 행복한 하루.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잠에 들 때까지 행복한 하루. 지금의 월급여가 10배가 되도 보낼 수 없는 시간일지 모른다. 누구도 가져다주지 않는 하루기 때문이다. 내가 만들지 않으면 내 하루는 행복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본래 미니멀리즘 Minimalism이란 단순함을 추구하는 예술 및 문화 사조를 칭한다. 모든 기교를 배제하고 근본적인 것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 의미 중 필자가 주목한 것은 ‘근본적인 것의 표현’이라는 말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화려함을 추구했는지도 모른다. 빈틈없이 탄탄한 경력, 누구나 부러워할 지위, 경력과 현 지위를 표현할 물품들. ‘이것도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채움’ 중심의 일상을 당연한 듯 전개해 온 것은 아닐까? 그러나 ‘채움’의 일상은 ‘호황의 경제’ 하에서나 가능했다. 안타까운 점은 ‘물질의 채움’이 ‘마음의 행복’은 제대로 채우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인지 사람들은 ‘줄이기’로 돌아섰다. 가슴 아픈 점은, ‘새로 구입해 채우고 쓸 만한 것을 군살이라 버린 것’이다.


경제 불황이 이어지면서 소비 중심의 생활 방식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증가했다. 비판적 시각은 ‘소비의 필요성’에 눈길을 돌린다.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인지하거나 표현하지는 않아도 ‘행복’을 추구하며 산다. 물론 100인 100색, 모두의 행복은 각기 다르다. 유사하다고 묶어 범주화할 수 있겠지만 대화를 나누어 보면 서로 다른, 혹은 독특한 unique한 행복을 향해 노력한다. 자신과 다른 타인의 행복을 비웃는, 마음이 빈곤한 자들도 있다. 그들은 부족한 충족감을 타인을 부정함으로써 자신이 생각한 행복의 정당함의 기반을 마련하여 내일도 살려하는 지도 모른다. 잘못된 방법이지만 각기 다른 행복이라는 범주에는 묶을 수 있다.


쓸 돈이 줄어들자 소비는 줄어들었고 사는 집의 크기도 줄었다. 결혼을 할 엄두를 못 내는 사람들은 1인 가구를 유지하거나 비혼을 택한다. 결혼을 하더라도 자식을 낳아 키울 자신이 없어 딩크족을 선택한다(본 단락의 이야기는 일반론이 아니다. 또한 딩크족 선택의 이유는 사례마다 다르다). 이렇게 소비를 줄이는데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다. 


연봉은 매년 물가 인상 율만큼 오르지만 매월 통장 잔고는 1주일 이내에 모두 사라진다. 맞벌이를 해도 마찬가지다. 물론 보다 큰 절약을 하고 돈을 모아 내 집을 마련하는 사람들도 많다. 잔고가 남지 않는 사람들도, 절약을 하여 잔고를 늘리는 사람들도 숨이 차긴 마찬가지다. 


나날이 빈곤감이 증가한다. 주위에는 ‘도대체 어떤 직업을 가졌기에 나보다 좋은 차를 몰고 나보다 비싼 물건을 자주 사며 나보다 나은 집에서 살까?’라는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 성공한 사람들일까? 


상대적 빈곤감은 경제 호황기에도 존재했다. 인간과 욕망을 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지구에 나타난 이래로 인간을 괴롭힌 모든 사건 사고는 모두 인간이 일으킨 것이다. 자연 재해 역시 인간이 그 동안 자연에 버린 것들로 인해 발생되니 이도 인간이 버린 것을 원인으로 삼을 만하다.


소비를 통한 충족이 줄어들면서 불필요한 부분을 줄이고 삶의 질을 높여 충족감을 늘리는 경향이 늘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즉, 개수로 충족을 채우던 습성이 변화하여 개수를 품질로 대체하기 시작했다고 필자는 본다. 이와 다르게, 필자는 소비를 줄이는 행위 자체가 빈곤감을 유발한다고 생각한다. 수입이 부족하니 지출을 줄인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지출을 줄이는 것 역시 빈곤감을 유발한다.


집안을 청소하고 물건을 정리정돈해도 깔끔해지지 않는다. 1년에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언젠가 사용될 거야’라고 생각하며 버리지 않는다. 혹은 나이든 어른들은 물건을 잘 버리지 않는다. 부족했기 때문에 손안에 있는 것을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1인 가구의 증가는 거주 공간의 소형화를 불러왔다. 주거 공간의 소형화는 보유 물품의 소형화 및 소수화를 가속화 했다고 필자는 추측한다. 거주 공간이 줄어들면서 예전 물건을 놓을 수납공간도 줄어든다. 멋진 인테리어의 모습이 각종 대중 매체를 통해 전해진지 오래다. 우리 집은 멋져 보이지 않는다. 


2015년부터 유행된 ‘미니멀리즘’ 동향은 이러한 사람들에 딱 맞는 옷이었을 것이다. 다양한 매체에서 미니멀리즘 방법론이 발표됐다. 시장엔 소형 및 다기능 상품이 출시되어 미니멀리즘 동향에 부합하기 위해 노력했다. 소비와 지출, 보유와 소유를 줄이면서 느끼는 빈곤감은 ‘미니멀리즘’이라는 사상은 빈곤감의 마음 점유율을 줄이는데 좋은 약이 된다. 혹은 ‘어떻게 줄일 것인가?’, ‘어떻게 줄이는 것이 좋은 방법인가?’라는 의문에 괜찮은 답을 내놓았다. 


일상에서의 미니멀리즘은 ‘꼭 필요한 것을 사고 불필요한 것을 줄이는 운동’으로 인식되어 있다. 이 범위를 넘는 매체 기사, 상품 등은 거의 없다. 그런데 필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테리어를 바꿀 때 다양한 자료와 전문 업체의 조언 및 제안을 받는다. ‘이만하면 괜찮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막상 살게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맞지 않는 부분이 나타난다. 다시 조언을 구하거나 고치고 싶은 부분이 클 경우 전문가의 손길을 다시 빈다. 이 부분에서 필자는 미니멀리즘의 적용 방법이 변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새로운 미니멀리즘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영역을 상기해 보자. 회사는 이익 추구 조직이다. 회사는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 방법을 고민하여 시장에 나서고 잘못된 부분은 고치고 다음 계획에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적용한다. 여기서 필자가 주목한 부분은 ‘목표를 수립하고 달성 방법을 고민한다’라는 부분이다. 미니멀리즘 적용, 혹은 생활 개선 방법론 적용에 자신이 원하는 목표가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생활 모습’을 수립하고 이를 달성할 방법을 찾는 것이 맞지 않을까?


‘무엇을 줄일까’가 아니라 ‘본질이 무엇인가, 즉 나에게 맞는 생활은 무엇일까’라고 자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나의 본질은 무엇이고 이에 최적화된 일상 설계는 무엇인가? 노력하여 최적화된 일상을 어떻게 유지 발전시킬 것인가에 주목하는 것이 우리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마음이 편할 것이라 생각한다. 


‘옆집 우등생의 장점을 하는 학부모’가 될 것인가 ‘우리 아이의 장점을 발견하고 이를 살릴 부모’가 될 것인가의 문제이다.


버리고 구매하는 것에서 가성비가 기준이 되는 것도 다시 생각해 봤다. 실상은 ‘가격 대비 성능’이 아니라 가심비, 즉, ‘가격 대비 만족’이 아닐까? ‘이 가격에 이정도 맛이면 살 만해’, ‘이정도 외관이면 만족하니 살 만해’, ‘이정도 기능이면 문제를 해결해주니 살 만해’ 등등.


우리는 적게 사고 적게 보유하는 대신에, ‘품질’을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비싸고 유명한 상품’이 아니라 ‘품질이 보장된 명품’을 구입해 동향에 흔들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마치 주인처럼 물건을 하대하고 그들을 착취하다가 어떤 이유로 그들을 갈아 치우는 것이 아니라, 소유한 물건을 관리하고 수리하며 내 손에 맞게 육성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를 위해 기술을 배우는 충족한 삶을 사는 것이 더 나은 삶이 아닐까? 힘들게 번 돈을 주고 구입한 물건이니 만큼 애정을 가지고 대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타인의 기준으로 제시된 삶이 아니라 ‘내 삶에 최적화된 최고 품질의 물품’을 적절한 개수로 보유 관리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줄이는 ‘미니멀리즘’이 아니라 최적화한 삶의 방식을 가지는 것이 더 행복해지는 방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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