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뭘까?

에세이: 옵티미즘 Optimizm

by 가브리엘의오보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있나?”


직업은 먹고 살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것. 직업 없이 살려면 가진 돈이 많아야 하는데 돈이 없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직업 없이 매일 24 시간을 무엇을 하며 보낼 생각인가? 3일이나 유지할까 싶다.


그러고 보니 직업 활동을 하는 것까지 8살 이후로 계속 움직여 왔다. “학교 가야 돼”부터 “회사 가야 돼”까지. “학교 가고 싶어”라든가 “회사 가고 싶어”는 아니었다. 그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나 하면 그렇지도 않다. 지금까지 최선을 다 한 것은 맞지만, ‘하고 싶은 일’이라든가 ‘좋아하는 일’을 했다는 기억은 없다. 더구나 ‘하고 싶은 일’이나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욕망도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이나 ‘좋아하는 일’을 못해서 결핍을 느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분야면 되겠네’ 이었다.


직업은 살기 위해 해야 하니까 진행하는 일상이다. 그 안에 나의 삶은 없다. 현재의 직업, 아니 회사는 한 달 동안 견딜 수 있는 금액을 수고비로 준다. 물론 내가 필요한 만큼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받은 금액에 맞추는 것이지만. 이 금액을 내가 변경할 수 없다. 그리고 딱히 얼마를 받고 싶다는 액수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를 해야 하니 세후 급여 수령액은 ~ 정도 있어야 돼’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매년 물가 상승률에 따라 오르는 연봉. 협상을 위해 준비할 것도 없이 인사팀에서 인트라넷으로 배포한 동의서에 서명만 하면 끝. 전년도 회사 실적이 좋으면 성과급 나누어 받고, 안 좋으면 연봉 동결로 그치길 바랐다. 매월 신용카드 할부로 고정액이 들어가고 스마트폰 요금과 인터넷 요금, 전기세를 늦지 않게 납부해야 ‘connected life’를 잃지 않으니까. 그래서 세후 월 수령액이 줄면 안 되는 거다.


대학 졸업 후 지금까지 하루의 1/2 이상을 차지한 직업을 빼고, 쪽잠이든 푹 잠이든 잠시간을 빼면 평일 평균 5 ~ 6 시간이 남는다. 그 시간 안에 출퇴근하고 식사하고 친구 만나니 뭔가를 할 시간은 부족하기 마련이다. 친구 만나는 대신 독서하고, 바빠서 점심 건너뛰고 카페에서 음악 듣고. 뭐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다. 그나마 일 하는 12시간 중 마감에 걸린 것이 없는 날이면 6~7 시에 퇴근해 마트도 가고 요리도 해 본다. 평소엔 온라인 주문을 하고 늦게 퇴근해 냉장고에 식재료 쑤셔 넣고 자는데. 그래도 텀블러 가지고 다니며 퇴근할 때 카페에서 커피 담아 오니 온기 있는 10분을 즐길 때도 있긴 하다.


주말은 오전 11시까지 잔다. 그래야 나도 살고, 뒤집어진 피부도 돌아오지 않을까 싶어서. 철야 아니면 술, 간간히 일찍 와도 잠들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출근하지 않는 주말이나 공휴일에 늦잠을 잔다. 오전 11시쯤 눈을 뜨고 스마트 폰 찾아 날씨랑 뉴스 좀 보고. SNS 업데이트 된 거 확인하고, 알림 마크 찍힌 앱에 들어가 공지사항을 본다. 그럼 오후 12시 30분. 일어나 1시간 30분을 침대에서 삐대고 ‘휴일이라 좋다’고 만족한다. 귀찮으니 점심은 배달시킨다. 전자레인지에 데워 그나마 뜨겁게 식사를 한다. 식사할 때 스마트 패드로 TV 프로그램을 틀거나 지난번에 보던 VOD를 튼다. 가족 간의 대화는 귀찮게 하지 않으면 될 정도. 그리고 이미 그들은 집을 나섰다. 무슨 볼 일이 있겠지. 덕분에 난 혼자 늦잠 잘 수 있는 것이고, 고맙게도 그들은 나를 이해하는지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외출했다.


오후 3시쯤 되니 집에 있기가 좀 지겹다. 심심하기도 하고. 스크린에 점령된 하루에 전자책을 더하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공공 도서관에 놀러나 가 볼까? 집에서 천천히 걸으면 걷기도 되는 3 킬로미터 밖에 있지만. 돈 내고 운동도 하는데 이런 현명한 방법을 내가 포기할 리 없다. 하체가 뿌듯해진다. 운동을 하지 않은 티가 팍팍 난다. 늦잠을 자고 오후 3시까지 침대에서 뒹굴 때는 이런 생각이 안 들었는데. 내 발로 걷기 시작하니 결핍이 아니라 부족한 점이 하나 둘 나타난다. '그래도 걷잖아’ 라고 생각하며 도서관으로 간다. 도로 위 차량 매연을 피해 산책로를 이용한다. 산책로에는 나이 드신 분들도 젊은 사람들도 꽤 걷는다. 모두 건강에 신경 쓰고 있구나.


도서관에도 사람들은 많았다. 1층 어린이 자료실에는 아이의 손을 잡은 엄마들이 많았다. 부모님과 함께 온 아이도 있었다. 자료실에 마련된 독서방에 앉을 자리는 없었고 서가 통로마다 책을 함께 살펴보는 아이와 엄마들이 있다. 아직도 아이는 엄마의 몫인가? 사실 나도 지금 혼자 왔지만. 다음 주말엔 함께 올까? 2층은 소설과 에세이, 르포르타주가 중심이고 3층은 잡지와 신문, 과학, 역사, 요리, 건강, 철학이 비치되어 있다. 스마트폰에서 도서관 앱을 클릭 한다. 관심도서 목록으로 이동한다. 평소 업무나 개인적 관심이 가는 도서를 앱에서 찾아 등록해 둔 리스트다. 이번 주에도 4권정도 등록을 했다. 최신 등록 도서부터 대출 가능 여부를 살핀다. 5권정도 대출이 가능했다. 도서 위치를 더듬어 그 5권을 대여한다. 그리고 바로 앱으로 돌아가 반납을 1주일 연장한다. 보고 싶은 책은 많은데, 시간은 부족하니까. 5권 중 몇 권이나 만족할 만큼(필요한 챕터만 보는 책도 있다) 볼 수 있을까? 올해 들어 5권 대여하면 1권도 못 보고 반납한 기억이 여러 번 됨을 떠올린다. 백팩도 가지고 있지 않아서 두께가 서로 다른 5권은 양손에 나누어 들고 집으로 향한다.


돌아가는 길에 생각해 본다. 오늘 저녁은 뭘 먹지? 평일에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집에서 먹는 저녁(많지는 않지만)은 주로 배달 음식으로 먹었는데. 주말이고 하니 외식을 할까? 아니면 오래간만에 칼을 잡아 볼까? 도구는 틈틈이 사다 두어서 1시간이면 밥, 국, 찌게 혹은 일품요리를 할 수 있다. 냉장고에 뭐가 있었지? 집에 가서 냉장고 열어 봐야겠다.


냉장고에서 먹고 싶은 식재료를 찾는 것도 일이다. 검은 봉투, 하얀 봉투 할 것 없이 마트에서 장 본 대로 넣어 두었다. 주말이나 공휴일, 혹은 일찍 오는 사람이 냉장고 정리를 하긴 한다. 이번 주는 모두 바빴으니 온라인 주문을 수령한 대로 넣어 두었나 보다. 일단 전기밥솥에 밥을 안쳤다. 식기 건조대의 그릇 물기가 다 말랐다. 찬장에 넣어 정리한다. 가장 간단한 것은 일품 요리 하나 두고 밑반찬 1~2개 꺼내면 된다. 돼지고기 앞다리 살이 있다. 꺼내고 김치도 꺼낸다. 두부는 없고 양파는 있다. 대파도 있고 마늘도 몇 톨 남아 있다. 식용유 꺼내고 김치는 한 입 크기로 자른다. 식용유를 1 큰 술 냄비에 넣고 돼지고기, 김치, 빤 마늘을 넣고 볶는다. 자작하게 국물 넣고 양파 넣고 바글바글 끓으면 대파로 마무리. 고춧가루 약간 넣어 색을 좀 보정 한다. 밑반찬은 아이용 달걀조림과 우엉조림이 있으니 꺼내면 되겠다. 오래간만에 갖는 가족 저녁 식사다. 물론 설거지도 내가 한다. 가사는 분담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면 되는 일.


김치찌개 냄새가 짙으니 창을 활짝 열고 환기를 한다. 바닥을 닦고 식탁도 닦았다. 가족 먼저 샤워를 하고 나도 한다. 빌린 책 중에 한 권을 골라 잠자리로 간다. 예능 프로그램 앞에 가족들이 앉아 히히 거리지만 난 책이나 볼란다. 생각보다 필요한 정도가 많지 않은 업무 관련 도서. 스마트폰으로 온라인 서점을 검색해 소개문과 목차를 다시 살펴본다. 예상과는 달랐다. 회사 옆에 서점이 있었는데 잠시 읽어보았다면 400 페이지 넘는 책을 들고 3 킬로미터를 걸어오지 않았을 텐데.


책은 수면등 옆에 놓는다. 아직 예능은 진행 중. 가족들 등에 탄천을 걷고 있던 사람들,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에 온 부모들이 떠오른다. 집에 큰 문제는 없다. 회사 일도 그런 대로 해내고 있다. 실적이 오르지 않아 고민이긴 하다. 내일은 일요일. 그리고 월요일. 그리고 팀장 얼굴. 상무님 얼굴. 요즘 부쩍 두 분이 활기 차셔서 그런지 일이 점점 많아지는 느낌이다. 새로 들어온 후배들에게 일을 나누기 망설여진다. 업무 진행 중에 일이 추가된다. 12 시간은 회사나 고객사에 있을 거라고 체념 하고 있다. 왕복 6 킬로미터를 잘 걷지 못한 내 다리. 쑤신다. 올해 초에는 지난 해 산 자기개발서 신간에 예전에 산 책도 다시 꺼내 1년 계획을 다시 세웠는데. 올해 목표가 뭐 이었더라?


연초에 계획도 세우고 각오도 다지는데 작심 3일이 아니라 올해는 출근 첫 날부터 계획은 깨졌고 이제는 잊어 생각도 안 난다. 가방에 비싼 플래너가 들어 있어서 펼쳐보면 생각나겠지만, 뭐. 매년 4~5 만원을 주고 플래너를 사서 계획이나 목표 페이지만 채우고 나머지 페이지는 거의 쓰지 않는다. 이런 내가 계획을 세우고 4~5 만원을 투자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이렇게 하겠다’하면 이렇게 됐다고 결론을 맺고 싶다. 치고 들어오는 많은 일들이 없으면 가능할까? 막을 수는 있나? 그냥 흘러가며 생활하는 거에 익숙해지고 그게 편하니 그대로 유지하는 건가. 이대로 좋은가?


내가 본 수십 권의 자기 개발 서적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주도적으로 살라’일 것이다. 그런데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있긴 한가? 팀장이나 상무님께 대들 수도 없지 않나? 맞벌이해서, 먹고 아이들 교육비에 부모님 생활비까지 내는데. 전세 대출도 있고 공과금도 있다. 그러니 함부로 까 볼 수도 없다. 그런 성격도 아니고. 이렇게 편하게 침대에 누워 예능에 푸푸거리는 가족들의 뒷모습을 보는 인생도 나쁘지는 않다. 그런데 왜 난 매년 ‘올해의 목표’를 세우나? 결핍을 느끼는 부분이 있나? 그게 뭐 였지? 있으니까 채워보려고, 채울 수 있게 계획과 목표를 세울 텐데. 큰 목표에 좌절하고 작게 목표를 줄이지만 이도 지키지 못한다. 내가 큰 회사에서 일 하는데 의지도 없고 추진력도 없는 인간은 아닌데. 더 나아진 모습이 분에 넘치는 모습도 아니다. 조금 시간 여유를 갖고 중요한 것에 손을 대고 싶다. 이것이 매년 세우는 내 목표의 요약이다. 그게 그렇게 큰 욕심인가?


모르겠다. 오래간만에 걸어 뿌듯한 다리 때문인지 졸린다. 내일은 일요일이니 내일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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