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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조용히 Jan 16. 2024

외국어고등학교에서 전업주부를 외치다

엄마를 꿈꾸던 외고생, 꿈을 이뤘는데..?

2008년, 한 외국어고등학교 교실 안.

갓 바뀌어 거리를 돌아다니면 시선을 잡아끌 만큼 화려한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새 책걸상에 앉아 눈을 반짝인다.

교실을 가득 채운 자부심만큼이나 화려한 장래희망들이 나오는 <내 꿈 발표하기> 시간에 한 소녀가 당차게 외친다.

“제 꿈은 현모양처입니다!”


와하하- 친구들의 신기해하는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담임선생님이 어떤 표정이셨을지 이제는 조금 궁금하지만, 쿵쿵 뛰는 심장소리만 들린다.

‘역시, 내 꿈은 특별해!’

남들과 다른 꿈에 보이는 흥미로운 반응이 뿌듯해 씩 웃는 내 표정과 그 시절 내 마음속 열정만 기억나던 나의 17세.


-

그리고 시간은 어느덧 2024년 새해, 나는 고등학교 동창들과의 신년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흥얼거리며 핸들을 잡고 서울 중심에서 한적한 경기도 외곽으로 달리고 달린다.

백미러로 흘끗- 반듯하고 예쁜 아이의 잠든 얼굴을 보며 씩 웃지만, 이내 뭔가 착잡한 표정이다.

‘우리 집으로 가는 길은 막히지도 않고 쌩쌩 잘도 가는구나.‘

경쟁이 덜한 곳, 모두가 원하지는 않는 곳. 붐비지 않고 편안한 게 꼭 내 인생 같다.


되돌아보는 동창회 친구들의 이야기.

“그때 너 기억나? 꿈이 현모양처라고 해서 난 진짜 놀랐잖아~”

“맞아 진짜 진심일까 궁금했는데 정말이었어!”

“너는 꿈을 이뤘네, 이렇게 큰 아이도 있고”

하하하

최대한 여유로운 표정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럼, 꿈을 이뤘지!
내가 엄마가 되다니.


호기심어린 눈으로 엄마가 된 나를 바라보는 친구들에게 어떠한 사명감을 느낀다.

우리 또래는 지금 혼란스럽다. 2000년대 특목고 열풍을 뚫고 주어진 퀘스트를 완료하니 갑자기 어른이 된 아이들.

“학생은 공부만 하면 돼” 래서 진짜 공부만 했고,

“네가 쉬는 사이 적군의 책장은 넘어가고 있다”길래,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했다.

“대학이 바뀌면 배우자가 바뀐다 “ 래서 일단 대학만 가면 되는 줄 알았다.

부모님의 물심양면 지원이 당연했고, 받는 것에 익숙했고, 협력보단 경쟁에서 이기는 법이 몸에 뱄다.

이렇게 살았는데 갑자기 혼기가 찼다고 ‘부모’가 될 수 있는 건지, 나를 보며 친구들도 궁금해하는 것이리라.


선의의 격려와 덕담을 주고받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아이를 예뻐하다, 이내 서른 초반 동창회 대화는 회사와 커리어 고민으로 이어진다.

그렇다, 내가 내 꿈을 이루는 동안 친구들도 각자의 꿈을 이뤘다. 어디 가서 명함이 부끄럽지 않을 동창들의 빛나는 눈동자가 멋지다.

내가 건너뛴 그 삶이 궁금해 나도 대화에 끼고 싶지만, 슬슬 어른들의 대화가 지루해지는 네 살 아들이 치대기 시작한다.

장난감을 변신시켜 주며 젤리를 먹이며 필살기 유튜브도 틀어줘 보며 최대한 대화에 귀를 기울여보지만 여기까지가 내 한계. 이내 아이의 낮잠시간에 맞춰 먼저 일어나 집으로 향하고 마는 것이다.


-

지금 내 인생에 후회도, 부끄러움도 없다!

확신에 가득 차 선택한 길이고, 자랑스럽다!

그런데… 아쉽다.

왜 아쉬울까? 잘 나가는 고등학교까진 같이 다녔는데, 지금 모습은 많이 달라서?

‘아니야, 그건 내 입시 결과가 마땅찮아 벌어진 차이인걸.’

친구들도 내 인생이 궁금할 거다. 나도 내 인생이 궁금하다. 나 녀석의 인생이 과연 어떻게 흘러가려나?

스물여덟에 결혼해 스물아홉에 아기를 낳고, 꿈이라고 외쳐대던 전업주부를 외고 나온 머리로 하면서, 진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건가?


행복 안 하지 않다. 무척 행복하다.

그런데, 조금 민망하다. 내 것이 없어서, 내 무언가 보여줄 게 없어서.

그렇다, 사실은 나도 두려운 거다. 물심양면으로 자식에게 헌신한 뒤 뭐가 남지 않아 초라한, 옛 드라마에 나온 부모의 모습을 닮아갈까 봐.

내가 상상한 ‘엄마가 된 나’는 이것보단 좀 더 멋진 모습이었는데, 왜 아직 멈춰있는 걸까?

육아와 가정이 자리 잡고 나니 이제는 왜소해진 내 커리어가 눈에 들어온다.


“<우리 집>에 도착했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종료됩니다”

하아- 한숨을 내쉬고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댄다. 산도 보이고 풀도 보이는 작은 신도시 우리 집. 신축 아파트라 주차장도 잘 돼있고 주변도 한적하고 깔끔해 한 마디로 ‘애 키우기 좋은 집’.

띠띠띠띠- 20킬로 아들을 둘러업고 가까스로 번호키를 누른다. 서울 도심 신혼집보단 평수 넓고, 고요한 우리 집. 풀썩 침대에 아이를 눕히고 머리를 쓸어 넘겨 이마에 뽀뽀한다.


아들아, 이제는 엄마도

뭔가 해내야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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