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나는 죽을 때 뭘 남길까_가치관이야기
“그래서, 진짜 엄마가 꿈이었다고?”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묻는 친구의 말에 웃으며 대답한다.
엄마가 되고 싶어서 지금까지 살았다니까!
흑흑…헝헝….
모두가 잠든 밤, 베란다에 놓인 쌀포대에 기대 눈물 콧물을 흘리는 초등학생이 있었다.
깜깜한 밤하늘에 홀로 빛나는 달을 보며 서럽게 우는데 어찌나 진지한지.
그렇게 엉엉 우는 이유는 단 하나,
’나 왜 살아야 돼…?‘에 대한 답을 알고 싶어서였다.
죽음이 이해되지 않던 초등학생은 매일 고민했다.
도대체,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말이, 맞는 거야?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주인공이 어디 있냔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 존재가 한없이 무력하게 느껴지며 하나님을 탓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죽게 할 거면 사람을 왜 만드셨나요?‘
신은 잔인하고 제멋대로여서, 베르나르베르베르 소설 속 외계인의 애완 인간처럼 그저 놀려질 뿐이라고 생각하니 이 인생이 얼마나 허망한지!
아빠 책장에서 꺼내온 두꺼운 철학책을 갖고 다니며 신나게 노는 친구들을 속으로 ‘뭐가 저리 좋니’ 코웃음 치는 초등학생 시절을 보냈더랬다.
하지만 거만함도 잠시.
중2 때 엄마가 갑작스러운 병으로 쓰러지시고 말았다.
1년 동안 엄마가 병상에 누워있다는 사실은 사춘기 중학생에게 큰 충격이 아닐 리 없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때, 남은 것은 교회에서 배운 기도뿐이었다.
나약한 인간이 고난을 만났을 때, 인생을 비관하는 투덜 쟁이는 자존심을 버리고 비로소 신의 도움을 간구하게 되는 것이다.
슬픔에 가득 찬 사춘기 소녀가 기도할 때 만난 것은 ‘사랑’이었다.
매주 귀가 간지럽게 들었던 성경의 가르침이 이해 가기 시작하면서 나의 인생관이 바뀌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 무엇이 남아야
한평생 잘 살다 잘 가는 걸까?
동화책에서 읽은 말에 따르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책장에 빼곡히 꽂힌 위인전들은 고요하다.
이름을 남긴들 그리워하며 불러줄 ‘사람’이 없다면 소용없지 않을까?
내가 사람이라면, 내 다음 사람까지 잇고 가는 게 나의 몫 아닐까?
나의 존재부터가 누군가의 사랑을 통해 시작되었고, 내가 죽고 나서도 유일하게 남을 것은 나로 인해 존재하게 된 사람일 텐데.
그렇다면 내 한평생은 사랑을 해서 자식을 낳고 함께 사랑하다 가면 그걸로 족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 중3 때였다.
“그래, 일단은 결혼해서 애를 낳아봐야 알 것 같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