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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조용히 Jan 30. 2024

스물여덟에 결혼한다고 했다

28세 새댁, 29세 초보엄마

“나 결혼해!”

“뭐라고~~~?! 너 남자친구 있었어?!”

연애에 하나도 관심 없던 내가 폭탄선언을 했다. 친구들은 ‘얘를 어떻게 말리지’ 란 표정으로 걱정스러운 눈길을 주고받았다.

“만난 지 얼마나 됐는데?”

“한 7개월?”

“뭐어~~?!”

그렇다. 나는 12월에 만나 다음 해 3월, 만난 지 1년 3개월 만에 결혼했다.

스물여덟 살에.


내 나름의 가치관을 정립한 뒤로부턴 모든 삶의 순간순간이 남편감을 찾아 헤매는 여정이었다.

이 사람이 내 사람일까? 저 사람이 내 사람일까? 혼자 상상을 하며 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애쓰는 대학시절이었다.

한 번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싶다고 결정하니, 시간이 아까웠다.

‘나도 아이를 최대한 젊을 때 낳고 싶은데…’

절친한 친구 둘이 아이엄마가 될 때까지 진정한 사랑도 찾지 못한 내가 너무 늦은 것 같았다.


그러던 와중 대학 졸업반을 앞두고 진로 결정을 해야 할 때가 됐다.

‘나는 과연 워킹맘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매 달 하는 월경이 짜증 나고 싫지만, 항상 내가 태어난 이유를 상기시켜 주는 알람 같았다.

‘나는 결국 아이를 낳기 위해 매 순간 준비하고 있구나’

이대로 태어났으니, 나라는 인간의 사용설명서에 맞게 한번 작동해보고 싶었다.

과연, 그러려면 모두가 하는 것처럼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이 내게 맞는 진로인지?

경쟁적이고 이기적인 면이 있는 나는, 대기업에 입사하면 그 커리어가 너무 아까워서 놓기 싫을 것 같았다. 직장생활을 경험해보지도 않고서 속단한, 20대의 철없이 짧은 생각이었지만 그때는 진지했다. 취업준비를 회피하는 변명이 아니라 진심으로, 결혼과 육아를 위해 미리 커리어 연장을 단념하는 것이 그 당시에는 무척 쉬웠다.

‘이럴 바엔 애초에 육아와 병행 가능한 직업을 선택하는 게 맞겠어!’


그러던 중 나는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던 기독교대안학교 교사직에서 생각보다 큰 보람을 느끼게 되는데…


“아빠, 저 그냥 그 학교 교사로 일할까 봐요.”

“뭐라고? 은행 준비 안 하고?!”

평생을 은행에서 일해온 자부심으로 가득찬 아빠에게 이 얼마나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을까? 그때는 그런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내 생각정리가 끝나니 혼자 홀가분해져서는 말이다. 아빠는 열심히 공부시킨 딸, 그래도 번듯한 직장 들어갔다고 자랑하고 싶으셨을 텐데.

“너 결혼 빨리 하고 싶다며~ 학교가 그 산속에 있는데, 남자를 어떻게 만나서 결혼하려고 그래~”

그 당시의 나는 콧웃음을 치며 당돌하게 반박했다.

“아빠! 결혼 내가 해요? 직장이 시켜줘요? 내 짝 만나는 건 하나님이 해주실 거잖아요.

전 제가 필요하다는 곳으로 갈 거예요.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고요! “

너무 확신 가득하게 말하는 나를 보며 아빠는 할 말을 잃고 쩝- “그래 네 말이 맞다”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참 겁도 없었고, 다른 사람 시선도 생각하지 않았다. 열정 하나로 당장 내가 필요한 곳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이 넘쳤다.

산속에 둘러싸인 작은 학교, 그 안에서 교사대접받으며 세상에서 가장 착한 아이들과 매일 열심히 공부하고 놀고 성경말씀 외우고 지냈다.

우물 안이었더라도 그 개구리는 참 기쁨과 평화를 누리며 3년을 일했다.

누군가는 보잘것없는 환경과 연봉에 코웃음을 쳤을 수 있지만, 나에게는 그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풍요로운 시간이었다.

사회의 경쟁구도에서 완전히 벗어나 진짜 누리고 살아야 할 감정들을 누리며 지냈다.

아마 원래 경쟁적이고 이기적인 내 성격이 하나님 보시기에 많이 모났었으리라.

그 시간 동안 모난 돌은 많이 부드러워졌다.


지금 돌아보면, 너무 신기하게도 정말 내 믿음대로 모든 것이 이뤄졌다.

행복하게 3년 젊음을 불태워 학교에 헌신하고, 운명처럼 남편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속전속결로 결혼과 임신과 출산까지 하며

지금 세상 무엇 부럽지 않은 단단한 가정을 이루웠으니.

그건 내가 세상의 기준을 따르지 않고 순전한 마음의 열정을 하나님 앞에 보였던 덕분이라고 확신한다.


남편과는 만난 지 5개월 만에 상견례를 하고, 1년이 좀 넘어서 결혼식을 올렸다.

만난 지 100일도 되지 않았는데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엄마~! 내 남자친구 언제 만나 줄 거예요? 빨리 보여주고 싶은데!”

허구한 날 엄마 아빠를 쫓아다니며 내 남자친구 얼굴 좀 보라고 설득했다.

부모님은 이제껏 연애에 관심도 없던 애가 갑자기 무슨 이상한 사람이라도 만났을까 봐 심란했다고.

“아니 무슨 100일도 안 만나보고… 100일은 지나고 말해라”

만난 지 90일부터 날짜를 세도 아무리 시간이 안 가 답답하던 나는 결국 100일을 못 채우고 부모님께 남자친구를 소개하던 불도저였다.


일은 속전속결로 진행되고, 결혼까지 가는 과정이 너무 빨라 겁이 날 때면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만약 이게 하나님 뜻이 아니라면 언제든 바로 멈춰주세요. 이렇게 순적할 수가 있나요?

만약 하나님 뜻이 맞다면 지금처럼 순탄하게 잘 흘러가게 해 주세요.‘

정말 하나님 뜻이 맞았는지 흐르는 강물에 나뭇잎 하나 둥둥 떠가듯이 결혼을 하고, 바로 두 달 후에 아이가 생기고,

임신한 채 신혼을 즐기고, 결혼 1주년 기념일에는 신생아를 안고 사진을 찍었다.

눈 뜨고 나니 애엄마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그래, 여기까진 좋았다. 믿음과 사랑이 가득했던 나의 20대는 이렇게 마무리되는 줄 알았다.

바라고 바라오 던 사랑을 찾아 결혼과 임신과 출산까지 해내고 나니 기쁨이 충만했다.

이제 아기도 생겼으니, 행복할 일만 남은 줄 알았다. 지금보다 더 행복하리라.


그러나 너무 빠른 속도로 달리다 보니, 중요한 걸 잊었다.

내 몫을 단단히 챙기지 못했던 것이다.

아기가 태어나고, 나의 모든 것이 변했다.


거울 속에는 뚱뚱한 몸으로, 신생아를 달고 있는, 무경력 무직 20대 후반 여성이
가족과 친구들과 멀리 떨어진 채 혼자 아이를 돌보고 있었고,
창문 밖은 코로나로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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