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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한림 Jul 10. 2020

#6. 위대한 나무는 자신이 자랄 곳을 선택한다.

대표적인 아프리카 작가 치누아 아체베의 소설에 나오는 말이다. 여기서 '위대한 나무'는 어떤 나무일까. 자신에게 최고의 영양 상태를 제공해줄 수 있는 토지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지닌 나무, 자신의 성장을 계획하는 나무, 어디까지 본인이 성장할지 가늠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나무일 것이다. 위대한 나무가 반드시 큰 나무, 오래 사는 나무, 많은 나뭇가지를 뻗어나가는 나무는 아닐 것이다. 각자의 정의에 달렸지만, 나에게 위대한 나무란 ‘상대와의 적절한 경쟁 속에서 스스로의 성장에 집중할 줄 아는 나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7년이 지나면 사람의 모든 조직은 재생산된다. 생물학적으로 연속적이지만 아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의 나는 그다지 의욕적이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저 하루를 무탈하게, 침착하게 살아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미래보다는 꾸준한 하루, 성실한 오늘이 목표였다.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고등학교 교육과정과 같이 맹목적으로 입시를 바라봐야 하는 시점에서 괜찮은 전략이었다. 부지런하지만 게으르게 공부했고 결과도 그저 꾸준히 나왔다. 그러나 꿈이 딱히 없었고, 인생에 형용사가 없었다. 십대는 좀 더 다양한 형용사를 품어도 좋은 시기였던 것 같은데, 당시의 나는 내가 지금 당장 하고 있는 동사를 이뤄내기에 급급했다. 


고3 때 8개월 간 나의 수학 질문을 받아준 과외 선생이 있었다. 그의 카톡 프로필은 스누피 사진이니까 스누피라고 해보자. 스누피와 일주일에 한 번 2시간씩 수학 질문 과외를 했다. 그러나 웬만하면 2시간의 질문 거리가 일주일 만에 나올 리가 없었기 때문에 주된 시간은 인생 얘기로 꾸려졌다. 스누피는 비전이 확실한 사람이었다. 4수의 시간을 보낸 뒤 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에, 그가 당시 다니고 있던 학과는 그의 확실한 자아성취를 위한 학과였다. 궁극적으로 그의 앞에는 향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계획이 있었다. 40대가 되면 최종적으로 겸임교수 부임을 하는 플랜이었다. 나는 한 번도 그 정도의 계획성과 그것을 실제로 이행할 것 같은 실천력, 추진력을 지닌 이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의 향후 미래 플랜을 듣는 게 즐거웠다. 당시 스누피 나이가 26살이었는데, 지금까지 내 주변에 그런 대학생은 없는 것을 봐서는 그가 어쨌든 비범한 것은 사실이다. 


스누피와의 8개월 간 내가 배운 것은 결국 그 계획성, 야망, 자신감 같은 거였다. 수학 성적은 끝내 그에게 과외를 받기 전과 동일한 수능 등급이었다. 물론 그는 좋은 선생님이었지만 나에게 남긴 흔적은 성적보다는 장기적으로 남는 인생관이었다. 대학생이 되고 난 이후에 난 그 정도의 계획성과 실천력을 갖추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의 말을 인용하며 살고 있다. 해도 안 해도 후회가 있는데 안 한 후회가 더 크다거나, 사랑은 의리라거나, 인생 배터리 100%에서 이제 겨우 20~30% 쓴 건데 그 사이에 1% 낭비 했다고 해서 호들갑 떨 일은 아니라거나. 가장 마음에 드는 말은 20대에 경험하고 보고 느낀 것들로 30대 이후의 삶을 경영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나무는 땅에 박혀 있지만 인간은 자유롭게 이동할 수가 있다. 나무는 단 한 번의 기회로 자신의 성장을 결정할 수 있겠지만, 인간은 자신의 두 발로 매번 변화하는 자신에 맞춰 성장을 조절할 수 있을 것이다. 스누피는 37살에 결혼하겠다던 플랜을 바꿔 32살이 되는 내년에 결혼을 한다. 기존 계획보다 5년이나 앞선 계획이지만 전반적인 그의 목표나 하고자 하는 일은 바뀌지 않았다. 스누피는 이러한 자신의 비전을 지지해주는 여성이기 때문에 결혼한다고 했다. 나를 만났던 26살에서 5년이 지난 31살의 변화한 자신에 맞춰, 그러한 중대 결정을 내린 것도 스누피 자신이었다. 


고3의 나에게는 스누피가 내 성장을 도와준 사람이었다. 성실함만 지녔던 내게 끊임 없이 목표와가능성에 대해서 말해주던 스누피. 그는 수능 보기 두 달 전에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 있다면 따로 연락하라며 과외를 그만두었다. 그는 어쩌면 자신이 내게 제시할 수 있던 성장에 한계가 왔다고 이미 느꼈던 것 같다. 수능을 치고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스누피와 정기적으로 만남을 갖지만 그는 더 이상 나의 성장에 있어서 절대적인 인물은 아니다. 19살의 나와는 다른 사람인 현재의 나에게는 또 다른 선한 영향력을 행사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사람, 환경이 필요하다. 그 길에 있어서 스스로의 재량이 감당할 수 없는 기회가 온다면 미련 없이 놔주고, 적절한 기회는 겁 없이 도전하는, 그런 야망과 용기가 계속해서 나를 위대한 나무로 향하게 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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