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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J Jun 03. 2023

홀로 섬살이 [12주 차]

유월의 열기 속에서

호텔에서 지낸 첫 주를 빼고, 열한 주째 이 현란한 유흥가의 중심에 지낸다.

익숙해질 만한데도 아직 이 골목에서 보내는 금, 토 밤은 혼란하다.


여름이 다가오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오면 더운 공기가 훅 피부에 달라붙는다.

그래서 햇빛에 데워진 실내 공기가 좀 순환되라고 줄곧 창을 열고 지내는데

가게 음악 소리와 술에 취한 사람들의 왁자지껄 떠드는 목소리가 그대로 건물 벽을 타고 올라온다.


언제부턴가 늦은 저녁에 차 없는 거리에서 색소폰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버스킹을 하나 보다.

한 곡이 끝나면 또 다른 곡이 시작되고, 곡과 곡 사이에 사람들의 환호성도 들린다.

다행이다, 관객이 많아서.

앙코르도 외친다, 열기가 대단한데?



주중에 행사 중계가 있어서 내 프로그램이 결방됐다.

역할 분담이 돼있었고 사전에 배정받은 내 역할은 사회자나 통역사 이름 확인해서 자막과 일치하는지

보고하는 것이나 진행자에게 몇 분 남았는지 스케치북에 적어 알려주는 것 정도로, FD가 할 만할 역할이었다.

아직 경험이 적은 내게는 생방송에서 그리 비중 있는 역할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면서 다른 역할을 하는 선배들을 뒤에서 바라봤다.

각자 위치에서 정신없이 생방송을 해내는 그들을 보며,

10년, 20년 뒤에 내 모습도 저럴까, 이 업계에 남아 베테랑 소리를 들으며 주축이 돼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세계에서 새로운 모험을 하며 힘겹게 헤매고 있을까, 지금까지의 나처럼.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왠지 모든 게 아득해진다.

몇십 년씩 그리 오래 살고 싶지도 않으면서, 서른 언저리에서 모든 게 늦었다고 조바심이 드는 건 뭘까.



주말 근무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운동을 하고 싶었다.

다섯 시가 넘었는데도 좀 걸으려니까 햇살이 너무 뜨거웠다.

일단 집으로 왔다.


냉장고를 뒤져 이것저것 남은 음식들을 데워 먹고,

나른해지기 전에 집을 나섰다.

아직 해는 뜨거웠다.

반팔 옷을 입어서 팔 절반만 빨갛게 탈 것 같았다.


쇼핑몰을 한 바퀴 돌고 새로운 길을 찾아 걷고 걸었다.

골목골목 걷다 보니 필로티 구조의 빌라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창을 열어둔 집에서는 빨래를 널어놨는지 섬유유연제 냄새가 났다.

그런 걸로 여기도 사람이 사는구나, 안심하는 내가 애처로웠다.

이렇게 골목마다 집이 많은데, 나는 왜 이쯤에서 집 하나 못 구했을까.

주변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열 군데 이상 전화를 돌렸지만 매물이 없다고 했다.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지난주 찍어온 걸 아직 가편집도 못 끝냈는데 내일 새로운 촬영이 있다.

일요일이지만 일할 수 있을 때 하려 한다.

무엇보다 출연자의 일정을 맞춰야 하기에.


촬영 전날 밤은 늘 초조하고 잠이 안 온다.

그렇다고 새로운 뭔가를 준비하는 건 아니지만 마음은 복잡하다.

인터뷰 질문 정도는 정리, 또 정리를 하고 가는 게 좋을 것이다.


막상 실전에선 잘할 거면서 사전에 걱정을 많이 하는 나는,

말버릇처럼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되뇌곤 했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든 된다."고 해주던 사람이 이젠 곁에 없으니

나는 홀로 이 부담을 버티고 또 버틴다.

그러다 울음이 솟구치기도, 짜증이 나버리기도 한다.

답답한 마음이 속에서 이렇게 치미느니 뻥하고 목구멍 밖으로 터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씻고 빨래를 돌려놓고도 열이 가시지 않아서

페루산 냉동 애플망고 조각을 꺼내와 녹여 먹었다.

상큼한 것, 시원한 것 잘 깨물어먹던 그가 생각났다.

아니, 내가 주는 건 다 "아~ 맛있다!" 하고 잘 먹던 그를 생각했다.

마음이 복잡한 토요일 밤이 저문다.


내일 촬영이 순조롭게 진행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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