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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 Sep 10. 2022

키스신에 눈길을 뗄 수 없었던 <도깨비> 시청

명작 드라마 <도깨비>를 보고 나서

설 연휴가 끝나고는 삼촌이 고기 점심을 사주셨다. 그리고 나는 설 연휴 때 쉬고 난 뒤로 세 번째 운동 수업을 갔다. 첫 수업에 비해서는 차츰 나아지고 있다고 느꼈다.


트레이너 쌤과 대화도 때때로 했다. 그 쌤의 나이가 최소 32살은 된다는 것이랑 외국인 여자친구가 생길 뻔한 이야기 등에 대해 얘기했던 것 같다. 아,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운동하는 자세는 여전히 너무 민망하다. 막 다리를 벌리고 운동하는 자세는 할 때마다 뭔가 부끄럽다. 적응이 되어 가는 부분도 있는데 그건 적응을 하기보다는 부끄러움을 못 느끼는 척하는 데에 가까운 것 같다.


최근에는 이런저런 책과 드라마를 많이 접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최근에 읽은 <호밀밭의 파수꾼>은 아무리 생각해도 혁명인 것 같았다. 늪으로 점점 빠져드는 것만 같은 심리 묘사에 감탄이 나왔다. 그런 명작을 내가 언젠가 써보고 싶었는데 그렇게 잘 쓴 명작이 이미 있었다니. 주인공의 지질함에 짜증은 나면서도 그의 말투가 너무 중독성 있다고 느꼈다. 또 뭔가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듯한데도 손을 놓지 않게 되는 전개도 인상적이었다. 굉장히 대충 쓴 느낌인데 파고들면 들 수록 다양한 상징들과 해석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은 미쳤다. <위대한 개츠비> 다음으로 좋았다. 차마 그보다 좋다고는 말 못 하겠으니...


그리고 엄마의 추천으로 <도깨비>를 다 보았다. 그 또한 굉장한 명작이었는데, 뭐라고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보고 나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엄마가 내가 느끼는 바를 감상문으로라도 써두라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사람들이 내가 뭔가를 보고 느낀 점을 감상문으로 써보라고 하는 게 좀 싫다.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주인공의 말을 빌리자면, 그건 그야말로 좀 '위선적인 (phony)' 느낌이라서 그렇다. 애초에 뭘 보고서 꼭 말로 형용할 수 있을 만한 느낌을 받아야 하는 건가? 마음속에 느껴지는 울림은 대개 말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사실 대다수의 작품을 봤을 때에 나는 대개 멍해진다. 마치 '에밀레종'이라고 불리는 성덕 대왕 신종이 내 마음속에서 뎅 -- 뎅 --- 울리는 것 같은 상태가 된다.


어쩌면 감상평을 써보라는 건 그런 말로 형용이 되지 않는 기분을 말이라는 블록 단위를 통해 건설해 보라는 조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하면 그 과정에서 의미는 다소 왜곡될지라도, 기록해 두지 않으면 어디론가 흩어져 버릴지 모를 그 감각을 어떻게든 붙잡아 둘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감상평을 통해 내가 느낀 마음을 다시 복원할 수 있을지도...... 그렇게 생각해 보면 내가 무언가를 보고 난 뒤에 그 느낌을 기록으로 남겨둔다는 건 좋은 일 같다. 기록과 실체 사이에 어쩔 수 없이 간극이 존재한다고 해서 말이다.


그리고 <도깨비> 13화까지만 봤을 때에만 해도 대체 무슨 느낌이 있어야 하는 건가 싶었는데, 논란이 된 마지막 화를 보니까 어떤 기분을 느껴야 할지 확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많은 시청자 분들이 결말을 욕했다고 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결말이 이 드라마 자체를 쓴 이유이자 목적이자 주제 의식의 핵심 같았기 때문이다. 그게 진정으로 작가가 쓰고 싶었던 것 내지는 정말로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도깨비>를 보고 나니 인간의 삶이 참 광활한 우주에서는 겨우 티끌 같이 작아 보일 거라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무한하게 팽창하는 이 우주 속에서 우리의 유한한 삶이 그저 사소한 티끌처럼 느껴졌다. 인간에게 삶은 정말이지 전부나 다름없는 것 같은데, 이는 진짜 이 넓은 세상의 지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겠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삶이란 유한해서 행복한 것 같다. 우리는 불멸을 꿈꾸지만, '도깨비'를 보니 영생이 축복이 아닌 저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도깨비' 캐릭터를 처음 봤을 때에는 그가 굉장히 장난 많이 치고 유치한 느낌이라 싫었는데, 보면 볼수록 그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딱한 사정이 안쓰럽게 느껴지고 그 절절한 사랑이 느껴져서 마음이 짠해졌다.


그리고 공유랑 이동욱 님이 잘생기셨다. 공유님은 원래 잘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이동욱 배우님은 사실 쌍꺼풀이 진한 편이라 그렇게 생긴 사람들은 조금 느끼해 보여서 별로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영상으로 보니까 오... 괜찮았다. 이동욱 님이 더 잘생겼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의 심정이 그제야 조금 더 이해가 갔다. 아, 그리고 여자 배우 분들도 다 되게 예쁘시다. 그중에서도 김고은 님은 뭔가 독특한 방식으로 예쁘시다. 공유 님도 뭔가 독특한 방식으로 잘생기신 얼굴 같기도 한데, 근데 아무튼 막 또 잘생겼고... 하여튼 그렇다.


그리고 도깨비랑 도깨비 신부가 껴안는 장면이나 키스하는 장면을 보면 되게 부러우면서도 염장이 돋고 그랬다. 남성 분이랑 스킨십을 하는 게 어떤 느낌일지 계속 생각하게 만들었다. 공유 님처럼 그렇게 체격이 큰 남성 분이랑 껴안으면 느낌이 너무 좋을 듯했다. 그리고 키스는... 우와, 키스는 진짜... 말이 안 나왔다. 그 광경이 어쩐지 무척 신기하고 낯설어 보여서 왠지 모르게 그 짧은 장면을 계속 몰입해서 보게 되었다. 몇 번이고 계속 돌려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런 키스신을 촬영하는 배우 분들은 어떨지도 자꾸 생각하게 되었다. 그 키스를 하는 느낌이 막 너무 궁금하고 그랬다.


이게 아이러니했던 이유는 내가 키스는 물론이고 그 너머의 영역, 즉, 미성년자들에게는 금기시된 어른들의 은밀한 세계에 대해서도 많이 '안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도 키스가 뭘 하는지를 모를 리는 없었다. <건축학개론>이라는 영화에서 '납득이'의 유명한 키스 강좌도 들었다. 키스란 '혀를 비비고, 비비고, X나게 비비는' 것이 아니던가! 그렇지만 그 혀를 어떻게 하면 된다는 걸 아무리 매체들을 통해 듣고 인터넷을 통해 보더라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내게 있어서 키스를 비롯한 농도 진한 스킨십은 너무나도 궁금하고, 해보고 싶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머나먼 영역이었다.


그런 호기심 외에도 <도깨비>를 보고 내 주변 사람들도 사실 전생으로 연결된 것이 아닐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나는 드라마를 보면서 진지하게 내 전생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혹시 내가 이번 생에 내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들과 지독하게 엮이게 된 것은 내가 전생에 그 사람들에게 어떤 나쁜 짓을 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가 지어낸 상상 속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나한테도 어쩐지 그런 몇 번의 생을 넘나드는 서사가 있었으면 했다.


드라마의 결말을 보고서는 마음이 석연치 않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뜻깊은 결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말에 대한 내 생각은 마치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흔들렸다. <도깨비> 같은 명작을 보고 감상평을 이 정도로밖에 못 쓰나 싶은 슬픈 마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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