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것 찾기 놀이
토이저러스
“이거?”
장난감 코너는 유독 미로 같다.
어른 키를 훌쩍 넘는 매대 가득 자리를 채운 장난감들,
레고섹션 옆으로 보드게임, 그 옆으로는 기차놀이 도로놀이가 즐비하고
맞은편으로는 학습지와 슬라임,
다시 그 옆 칸으로 공룡과 마블 히어로, 포켓몬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거 할 거야, 이거?”
목소리의 근원지를 따라가 보니 공룡 섹션 앞,
초록과 검정 스트라이프 티셔츠에
검정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아우터를 어깨에 반쯤 걸친 남자아이가 꼿꼿하게 서서
공룡 피규어가 잔뜩 들어있는 플라스틱 통을 손에 들고 서있다.
다섯 살쯤 되었을까,
그런 아이를 내려다보며 조금은 황당하다는 듯
아이의 할아버지가 연신 되물었다.
“이게 얼만데? 어? 아이구.
안돼 안돼. 안돼 비싸, 도로 내려놔.”
아이는 품 안에 공룡장난감 케이스를 꼭 끌어안고
고집스럽게 바닥을 응시하고 있다.
“어디 있었어, 이거. 어?
아니 이만사천 원이나 하는 걸 산다고?”
할아버지는 아이 품에서 공룡장난감 케이스를 뺏어 한 손에 잡고
흔들어 보이시며 맞은편 섹션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신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 걸음이다.
아이는 덩그러니 혼자 서서
말없이 할아버지의 뒤통수를 바라본다.
“이만사천 원이여! 어?
무슨 이깟게 이만사천 원이나 하냐?
안 되지? 안돼.”
맞은편 섹션으로 건너가 일러바치듯 언성을 높이신다.
아이의 할머니와 엄마가 그런 할아버지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공룡? 그런 거 또 사? 집에 많잖아!”
“아니 그러게 말이여. 많은데 이런 거..
이만사천 원씩이나 주고 뭘 또 사?”
“아유, 내려놔, 내려놔. 이리 와봐.”
할머니도 할아버지 만만찮게 목소리가 쩌렁쩌렁,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공룡케이스의 가격을 알게 되었다.
아이는 혹시나 하는 희망으로 할머니를 물끄러미 보더니
틀렸구나 싶은지 얼른 뒤를 돌아 옆 섹션으로 달아나버렸다.
할머니는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이리 오라고, 이리 와보라고
허공에 열심히 손짓을 하시며 학습지 섹션으로 부지런히 걸어가셨다.
‘첫 한글 떼기’
‘재미있는 수학’
알록달록한 학습지들이
장난감처럼 진열되어 있다.
느릿느릿 따라온 엄마가 할머니 곁에 멀찍이 섰다.
할머니는 대뜸 책을 하나 들어
뒤집어 보고 뭐라 뭐라 혼잣말을 하시더니
다시 내려놓는다.
다른 책을 또 들어보고 살피신다.
“이건 어때? 이런 거 하지 않니, 인제?
이런 거 하라 그래, 응?
맨 공룡이니 그런 거 좀 그만 사라.”
아이의 엄마는 멍하니 서서 긍정도 부정도 않은 채
빈 눈으로 할머니가 들이대시는 학습지를 한 번 본다.
대꾸도 없는 며느리에게 이 책 저 책 들어 보이시는 할머니 곁을 지나
“얘 어디 갔냐?”
하시며 할아버지가 불편한 걸음으로 손자를 찾으러
다른 섹션으로 사라진다.
아이는 어른들 시야를 기가 막히게 피해 가며
할아버지를 따돌리는 거쯤이야 일도 아닌 듯
리을자를 그리며 장난감들 사이를 휘젓는다.
아이가 옆 칸으로 사라지면
두어 걸음쯤 뒤에 할아버지가 나타나시며
“여기도 없네?”
하시곤 옆 칸으로 가신다.
아이와 할아버지가 숨바꼭질을 하는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면서 나는
이 모습을 천장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할머니와 엄마는 한 동안 학습지 코너 앞에 서서
책들을 하나씩 들어 올렸다가
가격표를 확인하고
다시 내려놓기를 반복한다.
“이건 좀 낫네.. 아유 이건 너무 비싸다.”
아이의 엄마는 시어머니 옆에 서서
쇼핑백도 없이
아이의 과자 봉지와
일회용 종이컵 꾸러미를 양손에 쥔 채
한 자리를 맴돌고 있다.
대충 묶어 헝클어진 머리,
집에서 입을법한 원피스 위에 코트만 덜렁 걸친 모습.
아무래도 좋으니 대충 마무리하고 집에 가고 싶어하는 마음이
정답처럼 전해졌다.
혼자서 신나게 장난감 코너를 구석구석 구경하던 아이는
언제 붙잡혔는지 할아버지 품에 안겨
엄마와 할머니가 계신 곳으로 돌아왔다.
할아버지의 목을 한 팔로 감싼 채
심드렁한 얼굴로 할머니가 들이미는 학습지를 내려다본다.
“아이고아이고. 좀 내리자.”
할아버지가 힘겨운 한숨을 쉬시며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으셨다.
세 명의 어른이
아이를 가운데 두고 선다.
“수학해볼래? 응? 이거 이거 숫자놀이.
아니면 한글 써볼까?
야야, 이건 점 잇기야.
얘 연필 쥐고 이거 점 잇기 하냐?
그림 그리는 것도 있다. 그림 재미있겠지?”
할머니는 아이 엄마에게 끈질기게 질문을 던지며
아이 앞에 이 책 저 책 표지를 들어 보여주셨다.
아이는
아무 말도 않고
아무것도 집지 않았다.
잠바를 어깨에 반쯤 걸친 채
할아버지 손을 끌고
다시 진열대 사이를 돌아다닌다.
그런 아이의 뒤통수에 대고 할머니는
“가자 이제, 고만 가. 할머니 간다, 갈거야. 안녕.”
하셨다.
아이는 뒤돌아볼 척도 않고
다시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변신로봇 앞에 서서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고개를 들어 황홀하게 로봇들을 찬찬히 보는 아이에게
“뭘 그렇게 굳이 사려고 그러냐. 어? 비싼데.”
할아버지께서 핀잔을 주신다.
아이는 정수리로 쏟아지는
할아버지의 볼 멘 소리를 조용히 받아내고는
다시 걸음을 옮긴다.
과묵한 것이 엄마를 참 많이 닮은 거 같았다.
그러고보니 저 아이와 엄마는
한번도 목소리를 내지 않았네.
이 와중에
내 아이도 아직
아무것도 고르지 못한 채
아빠와 함께 토미카 진열대 앞에 서있다.
“너 이거 있잖아, 태은아.”
태은이가 고른 작은 토미카 경찰차를
다시 진열대 제자리에 놓으며 남편이 말했다.
"있는 거 자꾸 사지 마, 응?"
아이는 고개를 쑥 빼며
경찰차를 한 번 쓱 보고
어깨를 으쓱, 했다.
“어 알겠어 아빠! 다른 거 골라볼게!”
하더니
모퉁이를 돌아
레고 쪽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리고는 먼저 와서 있던
과묵한 아이 옆에 섰다.
두 아이가 나란히 서서 레고를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그 뒤로 나의 남편과 아이 할아버지는 뒷짐을 지고 서있었다.
#사소의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