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없는 죄인
대학병원 소아응급실
돌 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축 늘어진 채로 엄마에게 폭싹 안겨있다.
그런 아이의 등을 매만지며 걱정스럽게 쓸어내리는 할머니,
미간이 안쓰러움으로 잔뜩 쪼그라들었다.
그들의 곁에 서서 제자리 동동 맴도는 아빠까지
아픈 아이 하나에 어른 셋이 심난하다.
노 씨 성에 옅은 갈색 피부를 가진 아이,
언뜻 보기에 한국인 외향의 아빠,
그리고 아이가 똑 닮은 엄마와
그 엄마가 또 많이 닮은 외국인 외할머니.
언제 그들의 차례가 될까 초조하게 기다리면서도
응급실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가 날 때마다
숨듯이 고개를 돌린다.
새벽 1시,
소아응급실 대기실의 공기는 무겁고 적막했다.
드디어 아이의 이름이 불리고
벌떡 일어나 우르르 들어가는 그들에게
"보호자는 두 분만 들어오실게요."
라고 간호사가 건조하게 얘기했다.
아이의 엄마와 할머니가 연신 허리를 숙이며
열린 자동문으로 쨍한 형광불빛 속을 걸어 들어갔다.
뭘 아는지 조용하던 아이가 갑자기 가열차게 울기 시작한다.
날카로운 아이의 울음소리가 묵직한 공기를 가르며 대기실을 꽉 채웠다.
그러는 동안
좀 전에 막 들어온 9살 여자아이가 느른하게 반쯤 누워있다가
순간 몸을 일으켜 구토를 했고
그런 아이의 입에 재빠르게 비닐봉지를 대어주던 엄마,
두꺼운 패딩을 입고 허둥대던 아빠는 얼른 가방에서 물티슈를 뒤적여 꺼냈다.
응급실의 자동문은 열린 채 다시 닫히지 않았다.
간호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
“그러니까 아이가 콧물 가래 말고 다른 증상은 없다는 거죠?
열은 지금 안 나네요?”
"아파서.. 계속 울어. 자꾸 울어요."
"언제부터 이랬다고요? 금요일 저녁.. 이틀 됐네요?
어제 동네 소아과에서 지어준 약 먹고도 나아지질 않아서 오셨다고요?"
“밥을.. 우유.. 잘 못 먹어..”
"잘 못먹어요? 얼마나 먹었어요, 오늘?"
"쪼끔.. 쪼끔만.."
엄지와 검지를 비비며 조금이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입술이 바싹바싹 마른다.
키가 작은 간호사 곁으로
그녀보다 머리가 하나 더 있는 남자의사가 불쑥 나타났다.
한참 잠을 못 잔 듯 보이는 모습,
풀썩이는 곱슬머리를 한 움큼 집어 이마 위로 쥐어뜯듯 넘기며
한숨을 크게 고른다.
"그러니까 그 조금이라는 게..
되게 애매한 말이에요, 그죠?"
의사는 천천히 또박또박,
단어 단어 눌러가며 얘기했다.
나는 [애매]라는 단어를 할머니께서 알아들으실까
긴장이 되었다.
"… 뭐.. 무슨 말인지 몰라요."
아이의 할머니는 곧 울음이 터져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이셨다.
돋보기안경 너머로 커다란 두 눈이 그렁그렁.
"할머님, 평소 먹는 양을 100이라고 쳤을 때
얼마만큼을 먹었다는 거예요? 뭐 70? 50?"
"쪼끔.. 쪼끔…"
엄마 품에 안긴 노 씨 성의 남자아이는
끊이지 않고 대차게 울었다.
마치 자신이 이렇게 열심히 울면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거 같았다.
그 울음소리에 할머니와 의사의 짤막한 대화마저도 자주 멈춰져야 했다.
남자 의사는 빈 눈으로 차트를 멍하니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일단요 할머니임.
애가 이렇게 기운이 뻗친다는 거는
응급실 올 정도는 아니라는 거예요.
지금 뭐 열도 없잖아요?"
"밥을.. 우유 안 먹어요.."
남자의사는 차트를 탁 내려놓았다.
두 눈을 감은 상태에서 눈꺼풀을 열지 않고 크게 뜬다.
"뭐.. 번역기라도 있으세요? 번역기.. 핸드폰에 그런 거 없으세요?
... 예, 엑스레이라도 일단 찍어보시죠 그럼.
네, 일단 나가 계세요."
다시 대기실로 걸어 나오는 엄마와 할머니,
터덜터덜 신발을 끌며
할머니께서는 대기실 의자에 천천히 앉으셨다.
아이 엄마에게도 어서 앉으라고 손사래를 치신다.
하지만 엄마는 우는 아이를 달래며 쉼 없이 통통 걸음을 맴돈다.
"김태은? 김태은 들어오세요."
나는 스프링처럼 얼른 일어나
한 팔에는 가방과 패딩 등을 걸고
다른 팔로는 남편에게 안긴 태은이의 등을 토닥이며
자동문의 경계를 너머 간호사와 의사에게 똑바로 걸어갔다,
면접관들의 마음에 들 취준생의 각오로.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사소의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