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인 줄 알았는데 상관이셨다.

곡조를 타고 흐르던 내공

by FONDOF

인스파이어 호텔 내 스타벅스








호텔 내 카페에는 출입문이 없다.

커다란 문이 양 쪽으로 두 개는 있어야 할 자리는 통으로 뚫려있어

오가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유입되기에 최적화된 개방감,

태은이는 오전 10시부터 진행되는 한 시간짜리 쿠킹클래스에 들어갔고

나는 남편과 잠시간 생긴 여유를 누리고자 스타벅스에 왔다.

각양각색의 메뉴들을 둘러만 봐도 눈이 즐겁다.

역시 아메리카노나 마실까, 아니야 라테?

메뉴가 아무리 다양해도 결국엔 마시던 것만 마시게 된다.

이런 부분에 조차 습관의 관성을 받는다는 게 왠지 분해서

오늘은 완전히 새로운 걸 주문해 본다, 핑크 레모네이드.


세지 않은 탄산 버블이 한 줄기 포로록 올라오는

예쁜 색깔의 음료를 받아 드니 기분이 좋아진다.

남편은 노트북을, 나는 아이패드를 테이블에 올려두고

각자의 화면에 집중하는 이 토막 시간의 여유가 감사하다.



우리가 앉은자리 옆으로

돌 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와 엄마가 보인다.

테이블 위로 널브러진 티슈와 구겨진 비닐포장지가

그들이 머문 시간을 가늠케 해 주었다.

맨발에 털 크록스, 후드 달린 검정 원피스 차림으로 화장기 없는 얼굴에

감은 지 조금 되어 보이는 머리카락 밑으로 검은 테 안경을 썼다.

핸드폰을 들여다볼 때 불빛이 얼굴 밑에서 올라와 두 턱이 더욱 도드라지게 보인다.


유아복을 좀 사다 보면 알게 되는 차이인데

실내복 카테고리가 있고

그와는 또 다른 라운지 웨어라는 카테고리가 있다.

소위 호캉스나 공항 등에서 입히기 좋은,

편하면서도 후줄근하지 않고 고급져 보이는 느낌.

아이는 바로 그 라운지 웨어 카테고리에서 산듯한 옷을 입고 있다.

연한 갈색 스트라이프에 손목과 발목에 짱짱한 시보리 처리가 들어간

톡톡한 감의 셋업을 입히고 그에 어울리는 베이지색 캡모자도 씌워주었다.


"맛있어? 한 입 더 먹어.
아니 아니 물 한입 먹어 목 막혀~"
"이거!"
"응, 이거 다 잘 먹고 약 먹자 우리?"
"약! 아니야!"
"아니 약 먹어야 해. 응, 먹어야 해~
아니 지금 말고 이거 더 먹고 응응 또 먹어."


분명 단 둘이 오진 않았을 텐데

아이의 아빠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아이 입에 빵을 잘라 넣어주며

벌려둔 휴지 등 쓰레기를 모으고

한 번씩 흘러내린 안경도 추켜올리느라

엄마는 정신이 없다.


"아니, 얼굴은 때리면 안 되지!
엄마한테도 근데 존경심을 좀 가져줘."

뭔가 뜻대로 되지 않자 짜증이 났는지

아이는 엄마의 얼굴을 한 번 할퀴는 시늉을 한다.

화를 내는 대신 존경심이라는 어려운 단어를 가져달라 말하는 엄마,

엄마 옆에 서서 빵을 받아먹던 아이는 이제 배가 부른 지

짤뚱한 다리를 구부려 앉더니 바닥으로 내려온다.


"걸어갈래? 그럼 엄마가 쓰레기 버리고 올게!
기다려줄래? 기다릴 수 있어?
아니면 유모차 타고 같이 갈래? 같이 갈래?
그럼 유모차 탈 거야?
탈 수 있어?"


제가 좀 보고 있을게요, 다녀오세요.

라고 하고 싶은 내 마음의 마그마가 입을 뚫고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고.



"알았어, 그러면 이준아. 이거 뚜껑 좀 닫아줄래?
도와줘. 엄마 같이 해.
잘했어 잘했어.
빨대도 까줘, 까주세요~
아니야 잘할 수 있어."


카펫 바닥을 밟으며 벌써 저만치 가려는 아이를

간신히 뚜껑과 빨대로 유인하며 엄마는 아이를 곁에서 놓지 않는다.

그러면서 한쪽 눈으로는 동시에 핸드폰을 바삐 만지더니

한쪽 귀에 대고 어깨를 올려 아빠와 통화를 한다.


"가자 가자! 빨리 가자아, 빨리 아빠테 가자~"
"가아아아!"

기다림의 한계가 온 아이가 단말마를 지른다.

"알았어 알았어! 미안해 미안해! 가자 가자!"
"엄마! 멀티!"
"멀티? 말티?"
"머어피!"
"멀피? 멀피가 뭐야?"
"엄마! 말피이!"
"아, 말피? 말피가 뭐야? 이준아! 아휴 바지 좀 올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감도 안 잡히는 아이의 옹알거림을

전부 응수해 주며 바지를 추켜올려주는데

"웨루웨루웨루웨루레루레!"

개구진 눈빛으로 엄마를 보며 까불어대는 아이를 보니

딱 조만할 때의 태은이 생각에

웃음이 삐져나와 아랫입술에 힘을 주었다.



"쉬잇! 조용히 해.
유모차 타자 이제."
"아니야! 안 해! 안 해!"
"아니야 할 수 있어.
해보고 안되면 말어.
같이 해볼까?
읏쌰, 엄마가 앉혀줄게."

엄마는 아이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들어 올리려 하지만

아이는 연체동물처럼 몸을 쭉 펴고 그대로 스르르 빠져나간다.


"아... 그래 그럼 걸어가.. 잠깐잠깐만!
기다려주세요~ 기다려주세요~
이거 가져가야 해요~"

말에 묘한 곡조를 섞어 타령하듯 얘기하는 그녀,

쓰레기 한바탕 널린 테이블을 야무진 손재간으로 정리하고는

한 손에는 접시, 한 손으로는 유모차를 끌며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때 보았다.

유모차에 걸린 가방 그리고

진분홍색 뱃지,

낯익은 저 뱃지...응?


심지어 임산부시다...!



퇴식구에 접시를 내려놓고 오른쪽으로 돌아서는 그녀의 배가

벌써 만삭이다.


출구를 나서 그녀와 아이가 천천히 걸어나가는 모습이

안보일 때까지 바라보다가

고개를 떨구며 입을 닫았다.











#사소의곁

금요일 연재